본문 바로가기

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내 나이 마흔 하나, 암에 걸리다

 

 

내 나이 마흔 하나, 암에 걸리다

 

2012년 3월 30일(금요일), 사무실

 

“안녕하세요? 김천령님 되시죠? 여기 병원인데요. 지난번 조직검사 결과가 예상보다 빨리 나왔어요. 내일 병원에 오실 수 있겠지요.”

 

벌써 한 달 남짓, 달수로는 3개월이나 되었다. 그때가 3월 30일 오후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간호사의 목소리는 늘 대하는 직장인들의 말투보다는 조금은 친절했지만 덤덤했다.

 

통화하는 내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전화를 주시하고 있던 직장 동료들이 ‘조직검사’라는 말에 다소 놀란 눈치였다. 그러면서도 이내 별 일 아니라는 듯 서류를 뒤지고 컴퓨터 자판을 부지런히 치기 시작했다.

 

2012년 3월 31일(토요일) 오전, 병원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습니다. 위암입니다.”

 

모니터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의사가 말했다. 간호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아주 잠시. 그 짧은 침묵이 무서웠다. 잠시 후 의사는 병에 대해 설명했고 이내 담담해진 나는 큰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병원 측에서 준 내시경 CD, 필름, 각종 진료기록을 챙겨들고 차에 올랐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정신없이 오가는데 이상하리만치 귀에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처럼.... 지구가 돌아가는 그 소리만 귀에 ‘쎄~쎄’ 들리는 듯했다.

 

다리에서 보이는 진주성 서장대는 회색빛의 구름에 짓눌려 있었다. 온통 잿빛 가운데에 빨간 불빛만 선명했다. 신호는 길었다. 순간 잿빛을 뚫고 햇빛이 차창에 날카롭게 부딪혔다. 라디오에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눈앞에 물기가 어리는 듯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2012년 3월 31일(토요일) 오후, 집

 

“암이래, 허허.”

“뭐? 농담하지 말고.”

“그래, 농담이다. 놀랐지?”

 

아내는 영덕에서 온 대게를 찌고 있었다. 너무 바빠 영덕에 가는 대신 대게를 주문했던 것이다. 김이 풀풀 나는 대게는 세 마리. 몹시 붉었다. 다리를 찢고 머리통을 갈랐다. 그러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12년 4월 1일(일요일) 오전, 집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갔다. ‘○○병원’이라고 적힌 서류 봉투가 눈에 띄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류 봉투 안에 든 내용물을 꺼내 보았다. 봉투 안에는 내시경 CD, 필름, 각종 진료기록 등이 있었다. 그제야 생각났다. 나는 어제 병원에 갔었고 거기에서 ‘암’이라는 말을 의사에게 들었다는 사실이....

 

 

“딸, 우리 산책 갈까.”

 

평소에는 갖은 핑계를 대고 가기 싫어하던 딸애가 아내의 눈치를 살피더니 순순히 따라 나선다. 집 앞 공원을 산책하는 내내 딸애는 무슨 특명이라도 받은 듯 재잘거렸다. 사진을 찍자는 말에도 망설임 없다. 이상하다. 밤새 한잠을 못 잔 아내에게 무슨 말을 들었을까.

 

“아빠, 죽는 거는 아니지?”

 

앞서 가던 아홉 살 딸아이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햇빛이 나뭇잎을 때렸다. 순간 가슴 한쪽이 아파왔다. “수술하면 금방 낫는데요. 우하하~” 내가 들어도 웃음은 슬펐다.

 

2012년 4월 1일(일요일) 오후, 집

 

“여보, 전화 좀 해보지 그래.”

 

아내가 말하지 않았다면 그냥 멍하니 있었을 것이다. 건강검진을 받던 작은 병원에서 각종 검진기록들은 챙겨 왔는데 막상 암에 걸리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박 교수께 전화를 걸었다. 평소 남에게 부탁 같은 걸 못하는 나의 성미를 알고 있는 아내가 몇 번이고 채근을 했다. “김 선생님, 걱정하지 마시고 내일 아침 바로 병원으로 와요. 내가 다 처리해 놓을 테니.” 박 교수님의 목소리는 씩씩했다. 늘 그랬듯이.

 

새로운 여행을 떠나다

 

다음날(2일) 아침 나는 병원에 갔고 박 교수의 도움으로 진료를 받게 되었다. 하루 종일 병원 구석구석을 돌며 검사를 받아야 했다. 내시경과 CT까지 마치고나자 의사가 말했다. “결과는 목요일쯤 나옵니다. 그동안 정리하고 오세요.”

 

4월 3일. 다시 사무실로 나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면서 일을 했다. 4일 오후, 한동안 먼 여행을 떠날 것 같다면서 사무실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4월 5일.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역시나, 였다. 의사는 내가 매년 건강검진을 해서 불행을 막았다며 불행 중 다행이라고 했다. 조기 위암. 정확한 건 수술을 해봐야 알겠지만 위암 1~2기쯤으로 보인다고 했다.

 

 

 

4월 9일. 입원을 했다. 처음에는 17일 이후가 되어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행인지 10일에 수술예약을 했던 어느 분이 연기를 했다. 하루 종일 주사 맞고, 다시 검사, 관장을 해 저녁에는 녹초가 되어 침대에 쓰러졌다. 수술하기 전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4월 10일. 오전 8시에 마취를 한 나는 오후 4시에 깨어났다. 수술 시간은 여섯 시간, 위의 3분의 2를 잘라냈다. 아팠다.

 

4월 18일. 퇴원. 이틀 전부터 의사는 퇴원해도 좋다고 했는데 결과가 이 날 나와서 퇴원을 늦추었다. 의사가 말했다. “이렇게 회복이 빠른 환자는 처음입니다. 건강 체질인가 봐요.” 나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왜 난 암에 걸렸을까.”

 

4월 19일. 처음으로 운동을 했다. 허리에 복대를 하고 엉거주춤 한 발자국씩 걸었다. 참, 폼 안 난다.

 

4월 26일. 다시 병원에 갔다. 몸무게가 6kg이 빠졌다. 의사는 경과가 좋다며 밥을 조금씩 먹어 보라고 했다.

 

4월 27일. 수술 후 처음으로 밥을 먹었다. 감동이었다. 밥이 이렇게 단 줄은 몰랐다. 배가 아팠다. 한 숟가락, 아니 반 숟가락 먹는데 5분 이상이 걸렸다. 슬로우 푸드인가, 젠장.

 

‘인간들이 죽음을 잊고 사는 게 놀랍고 놀라운 일’이라고 부처는 말했다. 처음으로 나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았다. 수술 후 생활과 습관이 많이 바뀌었다. 여태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방식의 여행을 나는 시작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나는 기록하기로 했다. 그것을 굳이 말하자면 ‘나의 암 여행기’쯤으로 될 듯하다.

 

※ 아직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수는 없군요. 조금씩 늘어나겠지요. 본의 아니게 병에 걸려 강의, 출판, 답사, 투어 등을 연기하고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관련된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양해를 구합니다. 정상적인 활동은 6월 이후에 가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