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삼대(三代)가 쑥을 캐다
시골집에는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돌안골'이라는 이웃마을에 살고 있던 할아버지가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판 우물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일러 '들터'라고 했습니다. 들 가운데에 터를 잡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금도 큰집, 우리 집, 작은집 세 집이 나란히 있습니다. 물론 할아버지 생전에는 한 집이었다가 분가를 해서 세 집으로 되었지요.
큰집과 우리 집 사이에 있는 이 우물에는 아주 소중한 추억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얼음장같이 차가워서 마을 사람들도 물을 길러 종종 오가곤 했었지요. 여름에는 등물을 하기도 하고, 수박이나 김치를 우물에 둥둥 띄워놓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기억은 생생한데, 우물은 예전의 물맛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젠 큰집과 작은집에는 마을 상수도가 들어섰고 어머니만 우물을 수도로 연결하여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물을 관리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기적으로 우물 청소를 해야 되는데 팔순이 넘은 노모가 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자식들이 시골에 가면 늘 우물 청소를 먼저 합니다. 이날도 우물을 청소하고 있는데 아내와 딸애가 쑥을 캐러 간다고 하였습니다. 마침 우물 청소가 끝나가는 터라 나도 따라나섰습니다. 무릎이 좋지 않은 어머니(81)도 볕이 좋다며 지팡이를 짚고 몸을 일으켰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봄날에 어머니와 아내, 딸아이는 사이좋게 집 앞 텃밭으로 나갔습니다. 예전에는 논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채마밭으로 바꾸었습니다. 논두렁 양지바른 곳에 난 쑥은 제법 한 뼘이나 되어 보였습니다.
아홉 살 딸은 이미 신이 나 있었습니다. 칼을 쓸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즐거워했습니다. 요즈음 음식 썰기에 유독 관심이 많습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조심조심 쑥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참, 봄볕도 따스했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할머니와 손녀가 알콩달콩 이야기하며 쑥을 캐는 모습이 퍽이나 다정해 보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렇게 한 삼십여 분 흘렀을까요. 이따금 앞산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만 나른한 봄날 오후의 정적을 깨뜨릴 뿐, 모든 것이 봄볕에 스르르 잠이 들어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소쿠리에 한 끼 정도의 쑥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어머니와 아내는 옷에 묻은 흙을 털어냈습니다. 살며시 땅을 비집고 봄 마중을 나온 새싹들로 들은 온통 초록빛입니다. 팔순이 넘은 노모에게 활짝 웃으라고 했습니다. “자가(저 아이가), 와 저라노.” 하더니 봄 색시처럼 수줍게 웃었습니다.
봄날은 그렇게 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봄내음 가득한 쑥국이 저녁 식탁에 올랐습니다.
아내가 차린 소박한 밥상과 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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