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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나를 놀라게 한 블로거들의 뜬금없는 방문

 

나를 놀라게 한 블로거들의 뜬금없는 방문

 

5월 5일 어린이날, 인근에 있는 다솔사를 갔다. 아홉 살인 딸은 어린이날 절에 가는 어린이는 자기밖에 없을 거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 앞 교대에서 오전에 열린 어린이 행사에 아내가 딸애를 데리고 다녀왔다는 사실이었다. 아내의 배려와 파스타의 유혹에 꼬인 딸의 순진함에 나는 첫 나들이를 할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의 나들이였다. 차를 타고 나오기는 간만이다. 입원할 때만 해도 쌀쌀함이 남아 있었는데, 차창 너머로는 이미 초여름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참으로 아름답다는, 너무나 선명한 연둣빛을 머금은 신록에 눈과 마음이 따습고 즐거워졌다.

 

산사까지는 멀었다. 평소 같으면 한달음에 갔을 거리였지만 쉬엄쉬엄 가다 보니 절로 가는 길이 제법 길었다. 바쁜 일도 없으니 그저 느긋하게 걸었다. 수십 번은 왔을 다솔사, 승방 깊은 쪽마루에 나와 아내, 딸애가 나란히 걸터앉아 따스한 봄볕을 쬐고 있었다. 촘촘한 햇빛을 비집고 산뜻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몇 차례 볼을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그때였다. 전화기가 울렸다.

 

                                 ▲ 다솔사 솔숲

 

“천령님, 지금 집에 계신가요?”

낯익은 목소리였다. 벨이 울리자 나온 이름이 아는 이와 비슷해 나는 무심코 “예, 형님.” 이라고 답을 하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경남도민일보 김훤주 기자였다.

 

지금 문산에 왔다며, 시간이 되면 잠시 만나고 싶다고, 했다. 문산에는 무슨 볼 일이 있어 왔느냐고, 지금은 인근 다솔사에서 산책 중이라고 했다. 언제쯤 집에 돌아오느냐고 그가 되물었고 이제 막 도착해서 한참을 지나야 될 것 같다고 하자 집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순간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블로그에 암에 걸렸다는 글을 올리자마자 문자와 카카오 톡, 전화를 받느라고 하루를 정신없이 보냈었다. 몇 번의 고민 끝에 글을 올렸는데, 그 글로 오히려 없던 병이 생길 정도였다. ‘개그콘서트 풀하우스’의 그것처럼 ‘제발, 그만 좀 하세요’, 라고 외치고 싶었다. ㅎㅎ

 

김훤주님도 아마 그 글을 보았을 것이고...병문안을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주소를 대라고 하니 난감할 수밖에. 전화기에서 몇 번 옥신각신 끝에 그가 다솔사로 오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말쑥한 차림을 한 김훤주님 뒤로 실비단안개님, 달그리메님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이쿠. 반가움에 손을 덥석 잡았다. 그들의 눈빛에서 반가움과 안타까움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내가 조금이라도 눈치가 빨랐다면 그들이 문산에 볼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부러 여기까지 온 사실을 알아챘을 것인데...하여튼 눈치가 밥통이다. 창원, 마산, 진해에서 이곳 깊은 산사까지 왔으니....

 

다솔사의 풍광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한마디 툭 던졌다. “조선시대라면 제가 어떻게 되었겠지요.” 모두들 씁쓸하게 웃었다. 봄날 산사는 고요했고 햇빛에 번득이는 잎조차 한가했다. 한참 담소를 나눈 끝에 그들을 배웅했다.

 

오늘은 토요일, 게다가 어린이날, 황금 같은 시간을 그들에게서 빼앗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너무나 고마웠다. 그들의 차가 모퉁이 너머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한참을 서 있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무엇이 서서히 올라오는 듯했다.

 

 

 

▒ 김훤주님, 실비단안개님, 달그리메님과 여행자는 경블공(경남블로그공동체) 회원입니다. 그들을 알게 된 것은 블로그에서였고, 블로거로 만나 지역 모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다들 열심히 활동하는데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여행자만 소홀히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블로거라는 인연만으로 소식을 듣고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온 이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안부와 정성을 보내주신 김주완님, 선비님, 크리스탈님, 이윤기님 등 경블공 블로거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와 일면식도 없으면서 댓글로 위로를 남겨주신 많은 분들, 블로거분들 등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제부터는 ‘페북’을 통해 소식을 아신 분들이 안부를 묻더군요. SNS의 위력은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 ‘화타’ 보다도 뛰어난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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