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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빵 터진 딸아이의 기발한 어버이날 선물

 

 

 

터진 딸아이의 기발한 어버이날 선물

 

올해 아홉 살, 하루 종일 딸아이는 바빴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문구점에 가야 한다며 뛰어가더니 아내한테 전화해서 봉투 두 장만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이때만 해도 이 두 장의 봉투가 뭘 의미하는 지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저녁 식사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버이날이라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문이 꽉 닫힌 딸아이의 방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짜~안’ 잠시 후 방문이 열리더니 아이가 카네이션 두 송이를 조심스럽게 들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카네이션에는 예쁜 카드가 매달려 있었고요.

 

 

편지도 남겼더군요. 흐뭇하더군요. 건데 여기서 끝이 아니더군요.

 

"자, 지금부터 이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약간은 쑥스러운 듯 딸아이는 천장을 향해 손을 쭉 뻗으며 소리쳤습니다.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리도 방방 뛰나 싶었습니다.

 

놀랍게도 '제비뽑기'였습니다.

 

 

"엄마 아빠, 뽑고 싶은 것 뽑으세요. 그러면 내가 쪽지에 적힌 걸 선물로 줄 테니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하는 표정을 짓자 딸아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빨리 뽑으라고 재촉했습니다.

 

 

 

제비를 뽑아 쪽지를 열어 본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보라색 볼펜' 에구, 이게 뭐야.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어른답지 않게 서운한 마음이 일더군요. 저는 내심 아이가 평소에 쿠폰으로 잘 주는 '1일 안마 이용권, 1일 심부름 이용권' 대충 이런 것들을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딸랑 볼펜 한 자루를 주다니요. ㅉㅉ

 

그래도 딸아이에게는 '짱'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위선적인 눈빛을 보냈습니다. 딸아이는 아내와 제 얼굴에 잠시 비췄던 실망을 읽었던 것 같은데 어쩐지 배시시 웃기만 했습니다.

 

"기대하시라~흐흐. 이번에는 대~박 이벤트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건데 먼저 제비를 뽑은 아내가 갑자기 쓰러질 듯 웃어젖힙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저도 얼른 쪽지를 열어 보았더니 글쎄 '이 만 천 원, 당첨' 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웃었을 뿐입니다. '이 만 천 원'이 뭘 의미할까, 하면서 말입니다.

 

 

잠시 후 아이는 봉투를 꺼내어 아내와 저에게 하나씩 주었습니다. 봉투를 열어 보니 정말 '만 원짜리 두 장과 천 원 지폐 한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아내는 '2만 5천원' 이 당첨되었습니다.

 

"휴~ 다행이다. 아빠는 돈이 많으니까 이 만 천 원이 되어서 다행이고, 엄마는 돈이 별로 없으니까 이 만 오천 원이 되어서 기분 좋고."

아이는 나름 만족하며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건데 돈을 왜 주었을까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어, 처음엔 선물을 사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아빠는 책을 좋아하니까 책 사 보라고 돈을 준 거고, 엄마는 옷 사 입으라고 준 거야. 그리고 엊그제 TV를 보니까 어른들은 선물 중에 돈을 제일 좋아한대."

그제야 딸아이가 봉투 두 장을 아내에게 가지고 오라고 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정말 이거 엄마 아빠가 쓰도 되는 거야?” 아내와 저는 딸아이에게 몇 번이나 물었습니다. 아이가 돈을 준다는 게 내심 편치 않으면서도 선물을 사기까지 오래 고민을 한 아이의 고충도 이해해야 했습니다. 아빠가 무슨 책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고 몰래 선물하고 싶어 물어보기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돈은 가치중립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있기에 우리 부부는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딸아이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어젯밤, 아내가 딸아이의 일기장을 보았더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에게 선물을 주었다. 무척 좋아했다. 건데 선물은 비밀이다. 부끄럽기 때문이다.’ ‘정말 감동적인 선물이었어. 우린 아주 행복해.’, 라고 아내가 답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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