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소나무에 장미꽃이 피었어요!
"아빠, 소나무에 장미꽃이 피었어!"
함양 운곡리.
마을을 느긋하게 돌고 오는데 폐교에 먼저 와 있던 딸아이가 대뜸 말했다.
"어디?"
"아이 참, 여기 봐."
건데 이놈, 요즈음 툭하면 반말이다.
"아빠가 너 친구냐?"
"치! 친구 맞잖아. 맨날 날 놀리면서...."
"지아야, 아빠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아내가 결국 한마디 거들었다.
"아빠, 이거 진짜 장미꽃 같지 않아용?"
이 녀석, 높임말 쓰는 본새가 더 어색하다.
‘그래, 다른 어른한테는 존댓말을 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아이가 가리킨 곳을 보다 나도 모르게
"어, 진짜 꽃이네. 어디서 난 거야."
"어, 저기 소나무 아래에 있는 걸 가지고 왔지용.
소나무에서 장미꽃이 떨어진 걸 나뭇가지에 꽂아서 땅에다 심었지용."
억지 춘향이가 ‘용’자 높임말을 쓰니 참 가관이다.
"아빠, 건데 이게 뭐야용. 꼭 장미꽃 같애용"
"야 이놈아! 그냥 반말해라. 솔방울이지 뭐니?"
"아, 그럼 솔방울꽃이네용."
이번에는 콧소리까지 넣어 말한다.
"예끼, 이 녀석!"
아이와 신경전을 하다 가까이 다가가 보고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아이가 '장미꽃'이라고 했는데 영락없이 그 생김새가 꼭 장미꽃이다.
"아빠, 이거 가지고 가면 안 될까용."
"어, 가지고 가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도 보게 여기에 두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지아에게 고마워할 것 같은데."
"그러지 뭐. 장미꽃아! 안녕."
고얀 녀석, 다시 반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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