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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여덟 살 딸아이의 선물, 감동 먹은 이유



여덟 살 딸아이의 선물, 감동 먹은 이유
-수상한 딸애의 행동, 감동의 시작이었다

며칠 전부터 딸아이가 수상했다. 자기 방에서 피아노를 치다가도 나의 기척이 나면 황급히 피아노를 그만 치는 것이었다. 종종 집에서 피아노를 연습하는 편이라 별로 개의치 않았는데 눈치를 살피는 딸애의 모습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지난 토요일에는 나만 쏙 빼놓고 쇼핑을 보러 간다고 아내와 둘이서 집을 나갔다. 한참 후에 들어오더니 잽싸게 자기 방으로 무언가를 들고 들어갔다.

"당신 생일 선물이야." 아이가 방에 들어간 사이 아내가 귀띔을 해주었다. 잠시 후 아이는 방에서 나오더니 묘한 웃음을 지었다.

어제(16일) 아침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자기 방으로 직행하더니 커다란 선물 하나를 들고 나왔다. "아빠, 생일 축하해! 우~" 쇼핑백에 담긴 선물은 빨간 리본이 화려했다.


뭘까? 궁금해서 물어 보았지만 아이는 아빠가 열어보라고만 한다. 엽서도 한 장 있었다. 사실 선물보다 딸아이가 정성스럽게 쓴 엽서가 더 고마웠다. 비록 노래 가사를 적은 것에 불과하지만 고민 끝에 선택한 글이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처음으로 선물을 받은 것이라 두근거렸다. 편지나 간단한 선물을 받은 적은 가끔 있었지만 이렇게 작정하고 주는 선물은 처음인 듯하다. 포장을 풀고 열어보았더니 선물은 예상 밖이었다. 속옷이었다.

나중에 아내로부터 들은 이야기이지만 아이는 선물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아빠는 지갑도 있고, 가방도, 신발도, 옷도, 넥타이도 다 있어 사줄 게 없다." 고민하던 아이가 잔뜩 시름에 잠겨 있자 아내가 속옷을 제안했다고 한다.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아빠 속옷도 많은데? 왜 속옷을 샀지" "내가 사준 속옷은 없잖아." 그러면서 제일 좋은 것으로 샀으며 자기 용돈의 절반을 썼다고 자랑했다. 면이 무척 부드럽다며 만져보라고 난리다. 무슨 아줌마도 아니고...


고맙다며 뽀뽀를 해주고 출근하려는데 아이가 "아빠, 저녁을 기대하세요." 라고 소리친다. 선물만 해도 과분한데 저녁에 또 무언가를 준비한 모양이다.

퇴근 후 집 앞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가 자기 방으로 손을 잡아끈다. "아빠, 생일 축하 노래 불러 줄게." 그러더니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려고 하니 피아노 연주가 자꾸 엉망이 된다. 몇 번 시도하던 아이는 결국 "에이, 이게 아닌데. 아빠 이럴까 싶어서 피아노 연주는 미리 녹음해 놓았거든. 녹음한 걸 틀고 노래 불러도 되지." 라고 물어본다. 나야 무슨 상관인가. 기분만 좋을 뿐이다.


그래서 직접 연주해서 녹음한 '생일축하노래'와 '사랑'이라는 피아노곡을 틀고 아이가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다 부른 후 이번에는 피아노로 다시 두 곳을 연주했다. 연주를 직접 들려주고 싶다면서. 아내의 이야기로는 며칠 전부터 아빠 몰래 틈틈이 연습했다고 한다. 유치원 때 배웠던 곡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걱정을 하면서 말이다.

오래

오래 추억하고 싶어서 촬영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아빠 생일이니 마음대로 하세요." 한다. 기분 좋게 다시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를 쳐서 촬영을 했다.

자연스러웠던 처음과는 달리 촬영이라 무척 쑥스러워하면서도 기분 좋게 응해 주었다.

아빠를 기쁘게 해주려고 노력했던 아이의 마음이 그 어떤 선물보다 고맙고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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