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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따뜻한 운동회, 아빠 우리 1등 했어!

 

 

따뜻한 운동회, 아빠 우리 1등 했어!

 

 

“아빠, 운동회 올 거지.”

“...”

“아빠는 아파서 힘들 것 같은데.... 오래 서 있기가 힘들잖아.”

머뭇거리는 나를 보자 아내가 거들었다.

“학교가 바로 집 앞인데, 아빠 운동가면서 잠시 들르면 되지 않을까?”

딴에는 속이 상했던 모양이다. 딸애가 다니는 학교는 집 앞 공원에 운동갈 때 늘 지나칠 정도로 가까이 있다.(집에서 30m 거리에 있다)

 

 

 

9시 30분, 나의 하루 일과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오전 운동을 위해 집을 나섰다. 문을 열자마자 행사를 알리는 마이크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이윽고 ‘와~’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왁자지껄한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잠시 학교에 들르기로 했다.

 

무리 중 한 아이가 손을 흔든다. 딸애였다. 설마 했던 아빠가 오자 기분이 좋은지 폴짝폴짝 뛰기까지 한다. ‘오기 잘했군.’ 딸애가 운동회에 오라고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2학년 이어달리기 반대표선수(?)로 뽑혔기 때문이다.

 

며칠 전이었다.

“아빠, 오늘 운동회 연습했는데 2학년에서 우리 팀이 일등 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어달리기 반대표로 뽑혔다고 얘기했었는데...벌써 시간이....

“그럼, 지아는 몇 등 했는데.”

“아니, 아빠 우리 팀이 일등 했다니까.”

“그러니까 너네 팀이 1등 했는데, 그중에서 너는 몇 등 했느냐고?”

“아이고, 참으로 답답합니다요. 아빠, 이어달리기는 내가 일등 하는 게 아니고 그 뭐야, 모두 합쳐서 등수로 매기거든요.”

나는 팀보다는 딸애가 몇 등으로 들어왔느냐가 궁금했고 딸애는 아빠가 이어달리기라는 경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답답했던 모양이다.

 

잠시 후 아내가 딸애 방에서 나오더니 배를 잡으며 웃었다.

“여보 지아가 뭐라고 하는 줄 알아.”

“...”

“아빠는 학교를 다녔으면서 이어달리기도 잘 모르는가 봐, 그러는 거 있지. 흐흐흐”

괘씸했다. 아픈 내가 참아야지. 아내의 말로는 딸애가 같이 뛴 친구들 중에서 제일 먼저 들어왔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가 1등 한 것은 아니고 자기 팀이 1등 했다고 했다.

 

 

                 1등으로 달리는 딸아이

 

드디어 이어달리기 경기가 시작되었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뉜 이어달리기 선수는 한번에 4명씩 모두 10여 개 조가 이어서 달리게 되어 있었다. 딸애는 여섯 번째 주자였다. 바통을 이어 받은 딸애가 1등으로 달렸다. 건데 다음 남자 아이가 조금 느려 2등으로 쳐졌다. 다음 선수도, 그 다음 선수도 계속 2등, 이미 나도 초조해졌다. 이때 마지막 바통을 받은 아이가 번개 같이 달리기 시작하더니 결승점을 얼마 앞두고 앞질렀다. 나는 길길이 날뛰었고 이내 허리 통증을 느끼고 복대를 꽉 졸라야 했다.

 

 

 

땀에 흠뻑 젖은 딸애가 얼굴 가득 웃음을 뛰며 달려왔다.

“아빠, 봤지. 우리 1등 했어.”

“그래, 너네 1등 했더라. 와, 우리 지아도 1등, 아니 제일 먼저 달리더군.” 딸애의 눈치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순간 ‘와~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쪽을 봐라보니 청군 150점, 백군 85점이었다. 역전이다. 딸애는 다시 펄쩍 뛰었다.

 

 

                  청군 150점, 백군 85점. 역전이다

 

참, 이상했다. 이어달리기. 대개 자기 등수가 중요한 법인데, 어린 딸애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속한 팀이 1등 했다는 것, 그것이 곧 자기의 등수-자신이 실제 달린 등수와는 상관없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 선생님이 그렇게 이야기했을 것이고 아이들은 이어달리기에서 뭐가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세운 후 다시 뛰는 아이

 

더군다나 오늘 본 한 장면은 너무나 인상 깊었다. ‘이어달리기’ 앞에 4학년 ‘맨손달리기’가 있었다. 여학생 4명이 뛰었는데 엇비슷하게 달리던 두 명 중 한 명이 넘어졌다. 내가 분명히 본 건 이 아이가 다른 친구에게 걸려서 넘어진 게 아니라 자기 발이 꼬이면서 넘어진 것이었다. 건데 앞에 뛰던 아이가 갑자기 멈추더니 황급히 돌아와서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세우는 게 아닌가. 순간 뭉클했다. 아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넘어진 친구를 돕는 사이, 선생님 두 분이 급히 뛰어와 넘어진 아이를 데리고 나가자 그제야 아이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1등도 할 수 있었던 그 아이는 물론 3등을 했다.

 

아내가 왔다. 오래 서 있기가 힘들어 딸아이에게 먼저 간다고 하고 공원으로 갔다. 운동을 하는 내내 ‘내’가 아니라 ‘우리’가 1등 했다는 딸아이의 말과 자신의 등수를 위해 달리는 대신 넘어진 친구를 도운 아이가 계속 떠올랐다. 그동안 내가 너무 속되게 살아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