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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황강변의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함벽루'

황강변의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함벽루'
- 처마의 물이 황강에 떨어지는 아름다운 누각



합천 들머리에서 한 눈에 들어오는 누각이 함벽루涵碧樓이다.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했던 대야성의 흔적은 간 데 없고 햇살 넘치는 황강만이 누루 앞을 감돌며 유장히 흐른다.


대야성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산기슭에 황강 정양호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함벽루는 지어졌다. 이 누루는 예부터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유명하였다.


푸르름에 젖어 흐르는 황강, 곱디 고운 은빛 모래, 바람마저 잔잔한 강물과 더불어 쉬어가는 곳에 당대의 명유들은 넋을 잃었으리라.

                                 우암 송시열이 석벽에 새긴 '함벽루'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우암 송시열 등 기라성 같은 조선시대 최고의 명유들이 이곳을 다녀가며 글을 남겼다. 누각 내부에는 이들의 글이 아직도 걸려 있어 옛 선비들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우암은 누각 뒤 석벽에 '함벽루'라는 글발을 새겼다. 깊고 힘찬 그의 글씨가 백제와 신라를 넘어 고려와 조선을 흘러 온 강물만큼이나 유구하게 느껴진다.

                           누각 내부 현판의 남명 조식, 퇴계 이황의 글

함벽루는 설경이 아름답다. 어릴 때만 하여도 고향인 합천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요즈음은 눈이 거의 오지 않아 좀처러 함벽루의 설경을 볼 수 없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만든다고 한들 자연이 주는 미에 비견할 수 있겠는가.


함벽루는 고려 충숙왕 8년인 1321년에 합주(합천의 당시 이름) 지주사(중추원 소속의 정3품 벼슬) 김영돈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사실을 기문으로 적은 이는 안진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구조인 팔작지붕의 2층 목조기와집이다. 예전에는 누각 처마의 물이 황강으로 바로 떨어지도록 배치된 점이 유명하였다 하나 지금은 강변 산책로가 있어 예의 그 풍류를 즐길 수는 없다.

                                          강 건너에서 본 함벽루

비오는 날, 누루에 앉아 처마의 빗방울이 강물에 그려내는 움직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다.


옛 누루에는 세 가지 맛이 있다.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맛과 정자에 올라 내려다보는 맛, 누각 내부에 걸려 있는 옛 묵객들의 글을 읽는 맛이 그것이다. 나는 이 기본적인 것을 옛 정자의 '삼미三味'라 한다. 여기서 달을 완상하던, 정자에 걸터 앉아 시를 읊던 개인의 취향에 따라 맛을 가미하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