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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비 내리면 무진장 좋은 무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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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송루

함안은 옛 여섯 가야 중 이름도 예쁜  아라가야의 땅이다.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아 물이 거꾸로 흐르는 '남고북저'의 땅이다. 왕조시대에는 이러한 지형으로 배역의 땅으로 간주되기도 했으나 실은 많은 선비와 충신들을 배출한 고장이다. 여느 군의 읍소재지가 군 본래의 이름을 갖는 것과는 달리 함안군의 읍소재지는 가야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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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읍에서 함안면 가는 67번 지방도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장관이다. 직선도로가 끝나고 길이 휘어져 가는 지점에 무진정이 있다. 도로변에서 보면 연못가로 수십 그루의 왕버들이 심어져 있고 연못 가운데에 예쁜 정자가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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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정無盡亭'.  무진 조삼 선생이 후진양성과 여생을 보내기 위하여 명종 22년인 1567년에 건립하였다. 정자 이름은 자신의 호를 따라 무진정이라 명명하였다. 함안에서 최초로 세워진 정자인 무진정은 반월형으로 주위를 돌로 쌓고 수중에는 각기 모양이 다른 섬을 만들었다. 지금의 건물은 1929년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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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삼 선생은 생육신의 한사람인 어계 조려의 손자이다. 어계 선생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해 고향인 함안에 내려와 평생 은둔하며 살았다. 어계선생의 고택과 채미정, 서산서원은 인근의 군북면 원북리에 있다. 우리나라에 서원을 처음 세운 주세붕도 이곳 함안 사람이다.

어계 선생과 채미정 보러 가기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1036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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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정 마루에 걸터 앉으면 '동정문動靜門' 으로 들어오는 연못 풍경이 차분한 듯 여유롭다. 무진정의 출입문인 동정문이 문이 아니라 창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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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한 켠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는 무진정은 사방의 문을 들어올린 채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가운데에 마루방이 하나 있다. 정자를 바라보는 맛도 시원하지만 정자에 걸터 앉으면 주변 경치가 한 눈에 시원스레 들어온다. 연산홍이 나리는 빗속에 붉음을 토하고 오랜된 이끼는 무상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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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문을 통하여 연못가로 내려서면 다리를 건너 '영송루迎送樓'로 이어진다. 연못가에 심은 수십 그루의 왕버들이 호위하는 연당의 섬에 세워진 정자다. 조삼선생의 덕을 기려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다. 무진정을 찾는 이들은 이곳에서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왕버들나무를 보며 세상의 시름을 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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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더 굵어지기 시작하였다. 영송루에는 마을 사람 두 분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연못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큰 소리로 외친다. "이왕 찍을 거 우리 잘 나오게 찍어 주소." 그러마하고 고기 많이 잡으라고 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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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갑절이나 힘들다. 렌즈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큰 우산은 필수이고, 빛이 없으니 삼각대도 필수다. 한 손에 우산들고 다른 손에는 삼각대와 카메라를 들고 이동한다. 몇 시간이 흘러가고 우산을 들었던 손가락은 급기야 까딱거릴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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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도 흠뻑 젖고 바짓가랑이도 흙투성이지만 여행자는 행복했다. 비가 오니 이곳을 찾는 이는 나와 낚시꾼 둘, 나올 즈음에 만난 부부 한 쌍이 전부였다. 연못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떨어지는 빗방울.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간혹 부는 바람에 흩날리는 푸른 나뭇잎들. 모든 게 고즈넉하고 조촐하고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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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듯 안개가 나리는 속에/ 안개 같은 비가 나리는 속에'
영송루에 앉아 백석의 시를 읇조린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중략/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후략'

한시라도 읊조리면 좋으련만..... 문득 떠오르는 시가 백석의 '안동'과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다. 비 오는 날 아니면 바람 부는 날 내가 가장 즐겨 읽는 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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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정은 경남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에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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