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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풍류와 멋

거북바위와 늦봄 호젓한 산책-수승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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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심상치 않다.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를 피해 벌써부터 시원한 계곡을 찾게 된다.
덕유산 골째기에서 시작한 위천渭川, 굽이굽이 계곡물이 바위와 부딪히며 곳곳에 절경을 만들어 낸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남강 , 황강 등의 낙동강 지류를 만들어내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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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하면 무주 구천동을 떠올리지만, 그에 못지 않은 곳이 이른바 '안의삼동'이다.
농월정으로 대표되는 화림동, 용추폭포로 유명한 심진동, 바로 이곳 수승대로 이름난 원학동을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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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름난 계곡들이 많다 보니 그에 걸맞는 정자와 누대 또한 즐비하다.
함양의 정자와 거창의 정자를 합치면 영남의 정자가 다 망라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대와 정자가 많다는 것은 그것을 향유할 계층들이 그만큼 두텁다는 얘기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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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학동 계곡에 버젓이 자리잡은 선경이 바로 '수승대'이다.
이제는 국민관광지가 되어 여름이면 피서객으로 붐비는 이곳은 원래는 소요와 산책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위천의 물을 막아 아이들이 물장구질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보를 건너면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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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한 줌 내리들기 힘든 이 계곡 숲길은 산책코스로 으뜸이다.
원래 거창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라고 한다. 신라가 강성하여 백제의 국력이 기울어지자
신라로 갔던 사신들이 고초를 겪거나아예 돌아오지 못하는 일도 더러 일어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신라로 보내는 사신을 위로하는 잔치를 이곳에서 열어 근심으로 사신을 보냈다하여 '수송대'라 불렀다고 한다.
살아서 돌아올지도 모르는 백제 사신은 이 계곡에서 마지막 산책을 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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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사실 여부를 떠나 이곳 수승대를 더욱 애절하고도 역사성 깊은 곳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한 때는 백제 땅이었을 이곳의 아픔과 원한이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을 법하다.
신화와 설화가 때론 상상의 허구로 치부되어 버리지만 그것마저 없다면 인간의 삶들이 얼마나 각박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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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의 솔숲이 조금 아쉽다 여겨질 때 '요수정'에 다다른다.
바위 암반 위에 날렵한 맵시를 뽐내고 있는 이 정자는
겨울에도 자연을 완상할 수 있도록 가운데에 방이 놓여져 있다.
계곡 물소리가 지척에서 들리고 솔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으니 가히 선경이 따로 없다.
더위는 제 풀에 꺽여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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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수정은 거창 신씨 집안의 한 사람인 요수 신권 선생이 세운 정자이다.
그 때 세운 정자는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리고 지금의 정자는 1805년에 다시 세웠다.
요수 선생은 일찌감치 벼슬길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면서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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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 벼랑의 시 퇴계 선생의 시와 수승대의 연유에 대해 적혀 있다.

거북을 닮은 바위를 '암구대'라 부르고 계곡의 물을 막아 연못을 만들어 '구연'이라 하였다.
거북바위 건너편에 정자를 짓고는 '요수정'이라 하고 동네 이름을 '구연동'으로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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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속에 빠져 학문에만 정진하던 요수 선생에게 기쁜 소식이 왔다.
이곳에서 십리 아래 영송마을에 유람차 왔던 퇴계 이황이 방문하겠다는 전갈을 보낸 것이다.
이른 봄날 요수정에서 주안상을 마련하고 들뜬 마음으로 마냥 기다리던 요수 선생에게
급히 왕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퇴계의 시 한통만 날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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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한 마음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퇴계의 양해의 시에 요수선생도 시로써 화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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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암구대) 옛날 장마가 심하던 날 윗마을인 북상의 거북이가 떠내려오자 이곳의 거북이가 싸워 이기었다.
떠내려온 거북이가 죽어 지금의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수승搜勝'이라 대 이름 새로 바꾸니
봄 맞은 경치는 더욱 좋으리라.
먼 숲 꽃망울은 터져 오르는데
그늘진 골짜기엔 봄눈이 희끗희끗.
좋은 경치 좋은 사람 찾지를 못해
가슴속에 회포만 쌓이는구려.
뒷날 한 동이 술을 안고 가
큰 붓 잡아 구름 벼랑에 시를 쓰리라.
                                                                        --------- 퇴계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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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거북바위의 구름 벼랑에는 퇴계의 시가 적혀 있고
 '수송대'가 수승대'로 불린 연유가 바위벽에 새겨져 있다.
희끗희끗 날리는 봄눈에도 반가운 이를 하염엾이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을 요수 선생은
 그 서운함 마음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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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 위  암구대 위에는 엣날 이 고장의 선비들이 시회를 여는 등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다.

자연은 온갖 빛을 더해가는데
대의 이름 아름답게 지어주시니
좋은 날 맞아서 술동이 앞에 두고
구름 같은 근심은 붓으로 묻읍시다.
깊은 마음 귀한 가르침 보배로운데
서로 떨어져 그리움만 한스러우니
속세에 흔들리며 좇지 못하고
홀로 벼랑가 늙은 소나무에 기대봅니다.
                                                          -------요수 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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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이면 서운할 법도 하겠지만 오히려 그리움을 붓으로 묻어 둔다.
두 사람이 직접 만나지는 못했을지라도 오랜 만남을 해온 이들보다 그 정은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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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수정 거북바위 맞은 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거북바위 뒤편으론 '구연서원'이 있다. 커다란 바위 위에 천연덕스럽게 앉은 관수루가 눈에 띈다.
서원 자체는 평범하지만 바위 위에 누각을 지은 이의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다.
'관아재 조영석' , 세조와 광해군, 숙종의 어진을 그린사대부 화가 조영석이 안음(지금의 함양군 안의)현감으로
있던 1740년에 지은 누각이라고 한다. 역시나 당대의 화가다운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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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서원과 관수루

강 언덕에 가득한 꽃 술동이에 가득한 술
소맷자락 이어질 듯 흥에 취한 사람들
저무는 봄빛 밟고 자네 떠난다니
가는 봄의 아쉬움, 그대 보내는 시름에 비길까

갈천 임훈(1500~1584)

여름 오기 전 벗과 함께 수승대를 거닐며 근심을 떨쳐 버리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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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jong5629)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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