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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어머니의 우물

 

 

 

 

 

어머니의 우물-김천령의 시간여행1

 

시골집 마당에는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돌안골’이라는 이웃마을에 살았던 할아버지가 들에서 찬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이곳에 우물을 파고 집을 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머니의 기억으론, 돌아가신 고모님이 77세 소띠인데, 지금의 집으로 이사 와서 태어났으니 우물을 판 건 그 즈음인 80년 전의 일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곳간 뒤 함지박만 한 작은 새미였는데, 뒤에 우물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넓게 팠다고 합니다. 둘째 형이 태어나던 해라고 어머니는 기억했습니다. 우물을 증개축한 것이 54년이 된 셈입니다.

 

큰집과 우리 집(할아버지 생전에는 한집이었습니다만) 사이에 있는 우물을 크게 늘린 데에는 동네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물이 귀한 시절이라 마을 우물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개울가에 솟는 약간은 비위생적인 샘물로 동네사람들이 대부분의 식수를 충당했다고 합니다.

 

그것마저도 부족해 하루 수십 명의 동네사람들이 우리 집에 들러 물을 퍼가면서 샘이 금세 말라버리자 할아버지는 물이 더 많이 나오는 아래쪽에 우물을 넓게 팠다고 합니다. 동네사람들이 우물을 점점 많이 사용하자 우물 주위로 담을 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물이 마당에 있으니 방안까지 훤히 보였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동네사람들에게 우물을 사용하지 못하겐 할 수 없으니까요.

 

 

이 우물은 신기하게도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 물이 미지근했고, 여름에는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습니다. 할아버지가 이 신묘한 물에 반해 우물을 판 게 충분히 이해가 되지요. 여름이면 우물에는 늘 수박이며, 열무며, 오이 등이 둥둥 떠 있곤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마을에 상수도가 들어오자 동네사람들이 하나둘 발길을 끊더니 물을 길어 먹던 작은집에도 우물까지 관을 연결해 수도를 넣었고, 얼마 전에는 큰집마저 상수도를 연결하는 바람에 이 우물은 고스란히 어머니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다행인 건 부엌까지 수도관으로 연결해 노모가 사용하기에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근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우물을 어머니 혼자 사용하면서 청소가 곤란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사용하는 이들이 많아 물이 깨끗했는데 어머니 혼자 사용하니 물이 고이면서 여러 가지 수생식물들이 자라고 물이 예전만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우물물을 퍼내고 청소를 해야 물이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팔순 둘인 노모가 청소하기에는 우물이 너무 벅찹니다. 마을 상수도를 넣자고 해도, 1년에 한 번 마을에서 공동으로 상수도시설 청소를 하는데 늙어서 참석을 못하니 마을에 피해를 줄 수 없다며 지금의 우물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아마 속마음은 시집와서 눈물과 아픔으로 평생을 써온 우물이 썩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가 없어서겠지요. 하는 수 없이 자식들은 시골에 갈 때마다 제일 먼저 우물을 파고 배수로를 청소하곤 합니다.

 

지난 주 시골에 가서 우물물을 퍼냈습니다. 이 우물은 아마 어머니와 같이 그 수명을 다할 것입니다. 어머니가 오래오래 살아야 이 우물도 살아있겠지요. 아침에 문득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여전히 우물이 맑다 하였습니다. 오늘따라 당신의 우물이 무척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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