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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고택에 있는 기이한 구조물 알고 봤더니




고택에 있는 기이한 구조물 알고 봤더니
-경남 고성 전주 최씨 학림리 종택

고성 학동마을 최영덕 씨 고가 옆에는 전주 최씨 학림리 종택이 있다. 최영덕 씨 고가는 문화재자료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어 마을을 방문하는 이들이 대부분 찾고 있지만, 안내문 하나 없는 이 고택(경남 민속문화재 제22호)은 의외로 찾는 이가 적은 편이다.

종부와 사랑채

학림리 종택은 이곳 학동에 처음 입향한 최형태 공의 종택이다. 안내문 하나 없는 고택이지만 오랜 연륜이 물씬 풍기는 옛집이다. 대문은 잠겨 있었다. 헛기침으로 주인을 부르니 종부가 고리를 풀고 들어오라며 큰소리를 친다. 아무리 해도 고리가 풀리지 않자 종부가 부러 와서 열어주신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깥마당이 제법 넓다. 예전에 행랑채가 있었을 자리는 각종 채소를 가꾸는 채마밭으로 변해 있었다. 종부에 의하면 한때 건물이 9채나 되었으나 관리를 못해 몇 채를 허물었다고 한다. 一자 구조인 사랑채는 정면 5칸이다. 이곳 마을의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판석과 흙으로 축담을 쌓았다.

한때 건물이 9채나 되었으나 관리를 못해 몇 채를 허물었다고 한다.

집터는 상당이 넓은 편이었다. 이웃한 매사고택(최영덕 씨 고가)의 사랑채가 다소 답답한 반면 이곳 사랑채는 건물이 헐린 탓도 있겠지만 눈이 시원하다. 돌담에 퍼질러 앉은 누런 호박이 가을이 왔음을 질펀하게 알린다. 사랑채 곁을 돌아 안채로 향했다.

야트막한 야산에 푸른 대숲을 배경으로 자리한 안채와 가묘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동안 숱한 옛집들을 보아 왔지만 이처럼 파격적인 집은 처음이었다. 야트막한 야산을 등지고 푸른 대숲을 배경으로 한 고택은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그 안온함을 단숨에 깨버리는 게 2벌로 된 높은 축담과 마치 피라미드를 연상케 하는 가묘의 위치 설정이었다.

2벌의 높은 석축 위에 자리한 안채

비록 슬레이트를 이어 옛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는 점이 아쉬웠지만 돌로 층층 쌓은 독특한 이 집의 구조는 매력덩어리였다. 마당에 박석을 깔아 편리함을 준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곳은 옆에 있는 매사고택과는 달리 층계도 잘 다듬은 화강석을 쓰지 않고 조금 두꺼운 자연스럽게 생긴 박석을 사용했다. 슬레이트 지붕이 아닌 기와나 초가로 지붕을 이었다면 이 건물의 자연스러움은 극에 다다랐을 것이다.

안채 앞 축담에 있는 이 특이한 구조물은 닭장이었다.

안채를 눈여겨보던 중 특이한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2벌 대인 축담의 아래층 기단석축 위에 사방으로 벽을 두르고 봉창처럼 나무로 얼기설기 통창을 낸 구조물이었다. 지붕은 넓은 판석으로 덮었다. 무엇일까. 얼핏 보면 무슨 작은 창고 같기도 한 이 구조물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알 길이 없었다.

깨를 손질하고 있는 종부

깨를 털고 있는 종부에게 물어 보았다. "할매요, 저것이 뭡니까?" "척 보면 모르겠나?" 잠시 뜸을 들이신다. "하긴 사람들이 참 궁금해 하더라고." 그 다음 이어진 할머니의 말에 여행자는 "네에?"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닭장이라. 닭장. 예전에는 산에서 짐승들이 많이 내려와 안채 축담 앞에다 닭장을 만들었던 거라요." 그제야 여행자는 무릎을 탁 쳤다. 그야말로 옛 사람들의 지혜가 번득이는 대목이다.

넓고 평평한 판석으로 지붕을 인 닭장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말씀을 하시는 할머니는 전주 최씨 종부인 박종혜 할머니다. 할머니는 산청군 신등면에서 시집왔다고 한다. 신등면 소재지인 단계마을은 예부터 반촌이었다. 단계마을은 진양 유씨가 먼저 자리 잡았는데 안동 권씨가 사위로 들어오고, 후에 안동 권씨의 외손인 순천 박씨가 들어오면서 세 성씨가 반촌을 이룬 고장이다. 여행자의 할머니도 친정이 단계마을이고 안동 권씨이다. 단계마을 역시 돌담길이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고, 고택 예닐곱 채가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돌로만 층층 쌓은 높은 단 위에 가묘가 있다.

안채 뒤의 가묘로 갔다. 돌로만 층층 쌓은 높은 단 위에 가묘는 자리하고 있었다. 그 높은 위치로 인해 가묘의 자리는 더욱 신성해 보인다. 가묘를 오르는 층계뿐만 아니라 가묘가 있는 높은 석축도 흙을 섞지 않고 돌로만 쌓아 간결하면서 위엄을 주었다.

가묘에서 내려다본 매사고택과 학림리 종택

가묘에 오르니 꽤나 시야가 높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 종택에서 분가한 매사고택(최영덕 씨 고가)이 있다. 입향조인 최형태 공의 5세손인 최필간 공이 이 집에서 분가를 한 후, 그의 손자인 매사 최태순 공이 확장 개축한 것이 매사고택이다. 제법 높은 담장이 두 집을 가르고 있으나 두 집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곳에 가묘가 있어, 원래 두 집안은 한 조상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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