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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80년 된 5성급여관에서의 하룻밤 어때요

 

 

 

 

80년 된 5성급여관에서의 하룻밤 어때요.

- 소설 <태백산맥>의 남도여관, 벌교 보성여관

 

꼬막으로 든든히 배를 채운 여행자. 제법 느긋하게 태백산맥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했다. 잘 단장된 거리는 시골의 소읍치곤 제법 근사하게 느껴지지만 거리 곳곳에서 옛 벌교의 흔적을 읽을 수 있어 섣불리 눈을 흘길 일은 아니었다.

 

2012년 2월 벌교을 갔을 때 한창 공사중이었던 보성여관

 

작년 2월에 왔을 때에는 남도여관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뿌연 먼지가 가득 낀 창틀 너머로 뚱땅뚱땅 요란한 소리가 쉼 없이 들렸었고 아이는 그 소리의 정체가 궁금해 바짝 창으로 뛰어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만 해도 이미 외관은 얼추 제 모습을 갖춘 상태였고 실내 공사만 남겨두고 마무리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말끔히 새로 단장한 보성여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라고 적힌 푯말 아래로 검은 바탕에 하얗게 새긴 ‘보성여관’이란 글씨가 선명하다. 용자 살 모양을 한 출입문은 묘한 추억을 불러 일으켜 문을 여는데 잠시 주춤거렸다.

 

1층 카페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카페. 예전에 쓰던, 꽤나 익숙하고 정겨운 교과서와 책들이 입구 선반 한곳에 모여 있다. 선반 너머론 제법 안온하게 보이는 작은 방이 조명 아래 제법 따뜻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창 쪽으로 낸 긴 탁자에는 허리가 둥근 의자 대여섯 개가 열 지어 있어 느긋하게 등을 기대어 창밖 풍경을 보며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겠다. 여기서 하룻밤을 잔 이들은 다음날 아침식사를 이 앙증맞은 카페에서 먹는 호사를 누리게 될 것이다.

 

1층 카페

 

‘보성여관’, 원래 이름보다 남도여관으로 더 알려져 있다. 검은 판자벽에 함석지붕을 인 전형적인 일본식 2층 건물인 보성여관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중심거리로 ‘본정통’이라 불렸던 벌교의 중심거리에 있다.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면서 실제 상호인 보성여관보다는 ‘남도여관’으로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1층 카페

 

소설 속에서 경찰토벌대장 임만수와 그 대원들이 숙소로 썼던 곳이 바로 남도여관이다. 벌교․보성지구 사령관 심재모가 임만수를 꾸짖으며 남도여관에 주둔하고 있는 토벌대를 당장 남국민학교로 집합시키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소설 속에 나온다. “... 그런데, 네놈들은 속죄의 기간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더구나 다시 권력조직에 포함되고 말았으니 모두가 네놈처럼 안하무인의 짓을 하는 것이야. 여관잠을 자고 여관밥을 먹다니, 네놈은 그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영창감이야!” “그가 벌교에 열흘 정도 머무는 동안 벌교의 지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보성의 지주들까지 남도여관의 뒷문을 드나들었다”는 구절이 나올 정도로 벌교에선 알아주는 여관이었다. 당시에는 별 다섯 개 5성급호텔이었다. 여관 뒤편에 있는 벌교초등학교는 빨치산의 인민재판 처형장이었다.

 

1층 소극장

 

카페를 나와 전시공간을 둘러보고 있는데, 안내를 자청하는 이가 나타났다. 남도를 닮은 예쁘장한 아가씨였다. 명함에는 다소 생소한 ‘문화유산국민신탁 보성여관’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녀는 김성춘 매니저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원래 이런저런 설명을 듣는 것을 귀찮아하는 성미라 전시장은 그냥 설명 없이 관람하기로 하고 곧장 숙박동이 궁금해 그리로 가자고 했다.

 

1층 소극장

 

1층 전시공간

 

이동을 하는 잠시의 짬이나마 그녀는 설명을 했고 나는 잠자코 듣기 시작했다. 보성여관은 1935년 건립됐고 한옥의 특징과 일식이 혼합된 양식이란다. 2층짜리 일식 목조 1동과 한식 벽돌조 1동으로 구성됐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남도여관으로 등장했고 해방 후에도 여관으로 운영되다가 1988년부터 상가 등으로 사용되다 2004년 12월에 근대사적·생활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등록문화재(제132호)로 지정됐다. 2008년 문화재청이 사들여 문화유산국민신탁을 관리단체로 지정하고 2009년 말부터 2년여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2012년 6월 7일에 재개관했다고 한다.

 

1층 전시공간

 

1층 전시공간

 

그제야 명함에 적힌 ‘문화유산국민신탁’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1층은 보성여관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공간과 소극장, 카페로 정기문화행사를 열고, 2층은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으로 꾸며져 세미나, 발표장 등으로 활용된다. 한옥은 숙박 체험 장소로 조성돼 얼마 전부터 손님을 받고 있단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툇마루에는 소반 하나가 단아하게 놓여 있다. 소반 위에는 누군가 무심이 꽂아둔 꽃병이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싸릿대로 엮었을 법한 채반에는 고구마를 썰어 널어 말리고 있었다.

 

 

 

단풍나무·동백나무가 있는 소박한 정원과 낡은 툇마루를 사이에 두고 방들이 들어찬 뒤채, 일본 전통 가옥 ‘마츠야’의 특징인 계단 딸린 2층에는 4칸짜리 다다미방이 들어서 있었다. 건물 사이의 중정에는 석류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조정래 작가가 어릴 적에도 있었다고 하니 오랜 시간 여관과 함께 살아온 나무인 셈이다.

 

 

숙박동 내부

 

김성춘 매니저는 먼저 1층 숙박동을 안내했다. 숙박동에는 모두 7개의 온돌방이 있는데, 가격은 1박 2일에 8만 원에서 15만 원까지 있었다. 8만 원짜리 방은 공동화장실, 공동샤워실, 다용도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10만 원, 12만 원짜리 방은 화장실이 별도로 있으며 15만 원짜리 방은 화장실과 별도의 작은 방(마루), 간단히 요리 할 수 있는 주방시설이 되어 있었다. 공간은 퍽이나 아늑했으며 일본 특유의 다다미방과 편백 향이 짙게 났다.

 

숙박동 내부

 

숙박동 내부

 

2층으로 올라갔다. 다다미방인 2층은 긴 복도로 연결된 4칸의 꽤 너른 방이 있다. 죽 드러누우면 50명은 너끈히 잘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인데 각종 세미나장이나 발표장으로 활용될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으로 대관할 예정이란다.

 

2층 다다미방

 

2층 다다미방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1월 14일부터 입장료 1000원을 받는단다. 여행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12일, 불과 이틀을 앞두고 방문한 것이 행운이 되었다. ‘태백산맥 문학의 길’에 있는 이 일본식 옛집은 남도 근대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화려했을 보성여관의 질펀한 풍경이 앞서 지나가고 그 뒤를 보성과 벌교 지주들의 회합하는 장면이, 연이어 빨치산 토벌대의 군홧발 소리가 점점 가까이 울리는 듯하다.

 

 

보성여관은 태백산맥문학관도 가깝고, 벌교 홍교, 김범우의 집, 부용교, 중도제방, 무당 소화의 집 등이 있어 ‘태백산맥 문학의 길’을 찾는 이들에게 훌륭한 문학기행지로 손꼽히는데 손색이 없겠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오른쪽 '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