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던 차를 돌리게 했던 시골가게 이색간판
광양시 월파마을 박순덕 할머니의 변샌슈퍼
지난 2일 광양시 블로그 기자단 발족식이 있었다. 시민과 소통하며 행복한 도시를 만들자는 취지에 발족한 광양시 블로그 기자단은 아울러 광양시의 문화관광을 블로그를 통해 알릴 계획이다. 여행자는 이날 블로그 글쓰기와 사진, 인터뷰에 대한 강의를 했다.
강의에는 블로그 기자단 10여 명과 시청 관계자 10여 명이 참석했다. 2시간여의 강의를 마치고 이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 후 그냥 돌아가기가 아쉬워 광양을 대표하는 백운산으로 향했다.
백운산에는 그 유명한 옥룡사지와 천연기념물 동백나무숲, 도선국사가 산책했다는 ‘도선국사 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늦가을 폐사지를 호젓하게 거닐다 돌아오는 길에 어느 마을에서 특이한 간판을 발견했다.
‘변샌슈퍼’.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다. 얼마쯤 달리다 도저히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차를 돌렸다. 가게 앞에는 오토바이 한 대와 오가는 동네 사람들이 앉아서 쉬었을 법한 평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가게 옆 공터에 주차를 하고 “계세요” 하고 주인을 찾았다.
가게 깊숙한 곳에서 할머니 한 분이 카메라를 든 여행자를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가게 이름이 왜 변샌슈퍼인 지를 물었다.
“변샌, 그거 우리 할아버지 성이라요.”
거기까지는 알 듯한데 성에다 '샌'을 왜 붙였는지 짐작이 되지 않아 재차 물었다.
“우리가 사람들을 부를 때 김 씨, 박 씨, 변 씨 라고들 하지라. 그거 하고 매한가지요. 김 샌, 박 샌, 변 샌이라고 부르는 거지요.”
마침 가게에 손님 한 분이 와서 막걸리를 찾았다.
“이 분이 우리 가게 이름이 신기해서 부러 찾아 왔다요.”
동네 할머니도 이런 일을 몇 번 겪었다는 듯 여행자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가게 안에는 식탁 두서너 개와 주방 시설이 있었다. 식사는 안 되고 손님들이 들러 간단히 술을 마시곤 한단다.
“간판은 한 15년 정도 되었을 거요.”
간판이 꽤 오래되었을 것으로 짐작했는데 의외였다.
“당시 다른 데 쓰던 중고를 가져와서 다시 달은 거지요. 실제론 더 오래되었겠지.”
사진을 부탁하자 박순덕(65) 할머니는 손을 내저으면서도 가게 앞에 섰다.
“이 간판이 재미있는지 얼마 전에는 광주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대여섯 명 몰려와서 가게에서 술도 한 잔 하고 사진도 찍어갔어요. 이런 간판 처음 본다며....”
“할머니, 경상도 함양읍에 가면 유명한 어탕국수집이 있는데 그 집 이름이 '조샌집'입니다. 여기하고 똑같이 주인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조샌’이라 부르더군요.”
이번에는 할머니가 놀란 표정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옛날 대개 선비를 부르던 '생원님'을 줄여 '샌님'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높임말인 '님'을 빼고 성에 '샌'을 붙여 불렀던 게 아닌가 싶다. '변샌님', '조샌님' 대신 편하게 '변샌’, ‘조샌’으로 말이다 . 한편으론 일본어의 영향 같기도 하다. 선생님을 일본어로 ‘샌세이(센세이)’라 하는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성에다가 호칭을 붙여 사용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무래도 전자 쪽이 유력한 듯하다
“저기 길 건너 집은 봉사활동 와서 벽화를 그린 거지요. 여기가 월파 마을이라. 주소로는 우산리 4구고....”
가게 평상에 앉으니 쭉 뻗은 도로 끝으로 백운산의 장대한 능선이 펼쳐졌다. 지금은 할아버지를 여의고 딸과 함께 살고 있다는 할머니는 온 김에 당산나무도 보고 가라며 늦가을을 아쉬워했다. 그러고 보니 가게 옆 문패에는 박순덕 할머니와 딸의 이름이 오롯이 달려 있었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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