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건축미의 극치, 세계유산 종묘에 숨은 몇 가지 종묘,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건 어찌 보면 옛사람들의 선견지명 때문이 아닐까? 한 나라의 도읍지로서 큰 물줄기인 한강과 악산인 북한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그 너른 터에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천만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음이랴. 그 숨 막히는 빽빽한 콘크리트 숲에서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건 왕과 신의 공간인 고궁과 종묘, 왕릉이 있기에 가능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종묘 돌담길
종묘 앞 공원은 강추위에도 무리를 지은 노인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다. 시골여행자에겐 퍽이나 낯선 이 풍경은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았다.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이동녕의 집터를 알리는 표석은 공원 구석으로 밀려나 있고 신간회 회장을 지냈던 월남 이상재 선생의 동상이 시린 하늘을 뚫고 우뚝 서 있다.
종묘공원 월남 이상재 선생 동상
야트막한 구릉이 사방으로 종묘를 둘러싸도록 해서 둘레에 담을 두르고 하마비를 세워 격식을 갖췄으니 이곳이 신성한 곳임은 척 봐도 틀림없겠다. 또한 건물 양끝에서 직각으로 월랑을 만들어 제례 때 비와 눈을 피할 수 있게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마비
종묘 앞을 지나거나 종묘에 드나들면서 '이곳에 이르러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온 말에서 내려라'는 글귀를 돌에 새겼다.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어 세웠다가 훗날 돌로 만든 하마비를 세웠다.
세계유산 종묘
문화해설사와 동행해야 종묘 일대를 둘러볼 수가 있다. 다만 매주 토요일은 해설사 없이 자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다. 제일 먼저 이곳이 세계유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나타났다. 1995년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2001년에는 종묘제례 및 종묘 제례악이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됐다.
신로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는 국가 최고의 사당이다. 1395년 태조가 한양을 새 나라의 도읍으로 정한 후에 지었다. '궁궐의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주례에 따라 경복궁의 왼쪽에 지었다. 종묘의 외대문을 들어서면 정전과 영녕전으로 이어지는 신로가 단연 눈에 띈다. 세 가닥 길에는 넓고 거친 박석이 깔려 있는데 약간 높은 가운데 길은 혼령과 제사 예물이 오가는 신향로이고, 오른쪽은 왕이 다니는 어로, 왼쪽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다.
지당(연못)
먼저 향대청으로 향했다. 향대청 앞으로는 사각형의 연못이 하나 있는데 그 가운데에 둥근 섬이 있고 향나무 한 그루가 심겨 있다. 종묘에는 모두 세 곳의 연못이 있는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사상을 나타낸 것이겠다. 특이한 건 대개 소나무가 심겨 있는 반면 이곳에는 향나무가 있다는 것이다.
향대청 일원
대청은 종묘제례를 위한 일종의 준비실인 셈이다. 동남쪽으로는 망묘루가 있고, 그 뒤쪽으로 공민왕 신당이 있다. 조선 왕조 최고의 사당에 고려의 왕을 모셨다는 점이 특이한데, 전하는 이야기로는 종묘를 창건할 때 공민왕의 영정이 바람에 실려 종묘 경내로 떨어져서 중신들이 회의 끝에 그 영정을 이곳에 봉안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향대청 바깥뜰에는 오얏나무 한 그루가 있어 이곳이 이씨 왕조의 사당임을 유독 드러내는 듯하다.
재궁의 어재실
왕과 세자가 제를 올리기 위해 심신을 정결히 하던 곳인 재궁은 왕이 머물던 어재실, 세사가 머물던 세자재실, 어목욕청이 있다. 왕과 세자가 재궁 정문으로 들어와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바르게 한 후, 서협문으로 나와서 정전과 영녕전의 동문으로 들어가 제례를 올렸다.
재궁의 어재실과 세자재실
재궁의 서협문을 나오면 제법 깊숙한 길이 정전으로 이어진다.
재궁에서 정전으로
전사청 일원, 앞의 네모난 단이 천막단이고 뒤의 작은 단이 성생위, 오른쪽 문 뒤가 제정(우물)이다
정전으로 들어서기 전 오른쪽 구석으로 전사청이 보인다. 전사청은 제례를 치를 때 음식을 마련하는 곳으로, 평소에는 제사에 사용하는 집기를 보관했다. 건물 앞으로 크고 작은 네모난 단이 눈에 띄는데 ‘찬막단’과 ‘성생위’다. ‘찬막단’은 제사에 바칠 날음식을 미리 검사하던 곳으로 천막을 치고 휘장을 둘러 청결하게 했다. ‘성생위’는 제물인 소․ 양․돼지를 검사하는 곳으로 제물을 올려도 좋다고 판정이 난 후에야 잡아서 썼다고 한다.
정전의 박석과 천막 등을 고정하던 쇠고리
정전에 들어서는 순간, 그 엄숙함에 숨소리마저 멈추게 된다. 정전은 역대 왕과 왕비가 승하한 후 삼년상을 치른 다음에 그 신주를 옮겨와 모신 곳이다. 정전의 신실은 처음에는 7칸에서 시작되었다가 모두 19칸으로 증축되어 조선을 건국한 태조와 역대 왕 중에서 특히 공덕이 큰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모셨다.
정전은 가로 109m, 세로 69m의 장대한 월대 위에 장엄하게 지어졌다.
정전의 신실은 처음에는 7칸에서 시작되었다가 모두 19칸으로 증축되어 조선을 건국한 태조와 역대 왕 중에서 특히 공덕이 큰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모셨다
길이 109m, 세로 69m의 장대한 월대와 정전의 품위와 장중함은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숭고하다는 것, 장중하다는 것, 엄숙하다는 것, 그 어떤 미사어구를 갖다 붙인다 한들 정전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정전
정전의 월대와 신실
정전과 영녕전 앞에 넓게 펼쳐져 있는 월대는 ‘묘정’이라고도 한다. 월대는 다시 3벌의 계단을 사이로 상월대와 하월대로 나뉘는데, 계단 또한 조상신을 위한 태계, 제관이 오르는 동계, 망료례를 행하기 위해 내려 올 때 사용하는 서계가 있다. 계단 소맷돌에 있는 구름무늬를 유심히 보면 이곳이 천상의 공감임을 알 수 있다. 정전 맞은편에 있는 칠사당과 공신당도 꼭 살필 일이다.
영녕전
정전과 영녕전의 동문 밖에는 특별하게 만든 네모난 대가 있는데 이를 '판위'라 한다. 왕과 세자가 제례를 할 때 잠시 멈추어 예를 갖추는 자리로 왕의 자리는 '전하판위', 세자의 자리는 '세자판위'라 한다.
영녕전
영녕전은 1421년(세종3)에 정종의 신주를 정전에 모시며 신실이 부족하자 새로 지은 별묘다. 신주를 정전에서 옮겨 왔다는 뜻으로 '조묘'라고도 한다. 정전보다 규모가 작은 16칸으로 태조의 4대 조상을 비롯하여 모두 34위의 신주를 모셨다.
영녕전의 부알판위(오른쪽 단)와 태조의 4대조를 모신 가운데 4칸
정전과 영녕전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부알판위'다. 남문에서 정전으로 들어가는 신로 중간쯤에 있는데, 전돌로 만든 사각형이다. 부알판위는 삼년상을 치른 왕이나 왕비의 신주를 궁궐에서 종묘로 옮겨 모시는 부묘제를 할 때 신주를 놓던 곳이다. 앞서 정전에 봉안된 태조와 그 아래 모든 왕과 왕비의 신주들에게 고하는 일종의 신고식을 치르던 곳이다. 영년전의 부알판위는 정전에서 신주를 옮기는 조천의식을 하던 판위다.
영녕전은 정전보다 규모가 작은 16칸으로 태조의 4대 조상을 비롯하여 모두 34위의 신주를 모셨다.
신주를 모신 신실 출입문은 각 칸마다 두 짝씩 달렸다. 근데 자세히 보면 한쪽 문짝이 약간 뒤틀려 틈새가 벌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고의적인데 아래 문턱 한 쪽에 삼각형 모양의 기다란 나무를 대어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도록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 틈새로 조상의 혼이 드나들게 한 상징적인 장치이면서 동시에 공기가 내부로 유입되게 하여 습기가 차지 않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굳게 닫힌 신실을 보고 있자니 문득 두 여인이 떠오른다. 장희빈과 숙빈 최씨다. 왕의 여자이면서 왕을 낳은 어머니더라도 왕비가 아니라면 종묘의 신위에 올라갈 수는 없었다. 결국 영조는 어머니를 숙빈묘라는 사당을 따로 지어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종묘는 인간의 따뜻한 기운 대신 절제된 엄숙함만 가득한 신의 공간으로 남은 것이다.
영녕전의 신실 출입문
☞ 종묘는 정해진 시간에 문화해설사를 따라 관람을 할 수 있다. 단, 토요일은 문화해설사 동행 없이 자유로이 관람할 수 있다. 매주 화요일은 휴관이다. 관람시간은 9시부터 18시(10월~2월은 17시30분)까지이며 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해야 한다. 입장료는 1000원.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오른쪽 '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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