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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일본식 근대유산에서 먹는 곰탕 한 그릇, 기가 막히네!

 

 

 

 

일본식 근대유산에서 먹는 곰탕 한 그릇, 기가 막히네!

  - 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의 선학곰탕

 

여좌천에서 내수면환경생태공원을 지나 본격적으로 진해 시내를 걷기로 했다. 벚꽃이 진해의 대명사로 된지 오래지만 그 벚꽃으로 인해 진해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다. 벚꽃 너머에 있을 진해의 참모습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진해역 삼거리로 다시 나와 중원로터리를 향해 걸었다. 이곳에선 진해우체국을 비롯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진해의 근대유산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중원로터리 일대의 근대유산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오늘은 먼저 이곳에서 본 색다른 곳을 소개하겠다.

 

 

곰탕집이다. 무슨 맛집이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 진해의 음식점을 소개할 때 이곳도 더러 포함된다. 근데 그냥 식도락가들에게 알려진 음식점으로만 보기에는 이 곰탕집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그 의문은 긴 회색 콘크리트 담장 안에 있는 식당 건물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식당 건물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로 당시 진해 해군통제부의 병원장이 살던 사택이었다. 게다가 근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곰탕전문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ㄱ’자형의 평면에 돌출된 주 현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목조건물은 한눈에 봐도 오랜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묻어 있다. 식당은 의외로 조용했다. 손님이 꽤나 많을 것으로 짐작했는데 너무 조용해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안에서 "어서 오세요." 하며 초로의 주인 할머니가 나왔다.

 

 

삐꺽거리는 복도를 따라 여닫이문을 여니 깔끔한 실내다. 주인이 집을 살뜰히 보살피고 있다는 걸 엿볼 수 있었다. 벽면에는 갖은 장식들이 있었는데 모두 오래된 느낌이다. 구조는 여전히 일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 목조 집의 실내는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은 양식으로, 주거공간은 일식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이 집의 메뉴는 단출하다. 곰탕, 된장, 수육, 안거미가 전부다. '토시살'로도 불리는 안거미는 육향과 감칠맛이 좋기로 알려져 있다. 가격은 곰탕 8000원, 된장 2인분 이상 6000원, 수육 대 2만 3000원․소 1만 8000원, 안거미 1만 5000원이다.

 

 

우리는 간단히 곰탕을 주문했다. 이윽고 무채, 파래무침, 쑥갓무침, 숙주나물, 깍두기, 김치, 고추 등 예닐곱 가지의 반찬이 나오더니 뿌연 곰탕이 이어 나왔다. 반찬은 정갈한 편이었고 맛 또한 일행들은 만족하는 표정.

 

 

잘 우려낸 곰탕과 부드러운 육질의 고기, 맛깔스런 반찬 등 맛도 맛이지만 실은 오래된 집이 주는 그 분위기에 곰탕의 맛이 더욱 깊게 느껴지기도 했다.

 

 

식사를 일찌감치 끝내고 집안 곳곳을 구경했다. 뒤로도 나무 복도가 나 있었는데 유리로 된 미닫이 문 너머로 잘 꾸며진 정원이 보인다. 밖으로 나가려다 문득 신발을 반대편에 벗어둔 걸 알고 내부를 더 둘러보고 마당으로 나갈 작정을 했다.

 

 

 

 

실내는 구조뿐만 아니라 진열된 많은 물건들도 오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낡은 전화기, 금방이라도 간드러진 여가수의 목소리가 들릴 듯한 축음기, 쉴 새 없이 추를 흔들고 있는 괘종시계 등 주인이 잘 갈무리한 물건들이 옛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뿜어내고 있었다.

 

 

화장실도 실내에 있었는데, 예전의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듯했다.

 

 

화장실 앞의 세면대는 퍽이나 운치가 있다. 창으로 비치는 밝은 햇빛이 어둑어둑한 실내를 밝히면서 화사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거무튀튀한 목조 건물의 내부에 스며든 밝은 빛은 극장의 영사기가 돌아가듯 오래된 향수를 곳곳에서 불러왔다.

 

 

주인에게 건물에 대해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하며 그저 생긴 대로 관리만 하고 있다고 했다. 다소 무뚝뚝한 말이 오히려 안심이 될 정도로 수더분한 인상을 가진 할머니였다.

 

 

"저기 있잖소."

무관심한 듯 툭 내뱉으며 주인이 가리킨 것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93호 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이라고 적힌 금속 명패였다. 그제야 이 집의 존재를 명확히 확인한 셈이었다.

 

 

건물 밖은 더욱 놀라웠다. 무슨 야외 조각공원처럼 집 마당 곳곳이 잘 꾸며져 있었다.

 

 

 

목조 벽면과 쇠창살 등 건물이 풍겨내는 특유의 질감에다 갖은 수석, 조각, 화분 등의 장식들이 묘한 조화를 이뤘다.

 

 

 

바깥마당이 조각과 장식 위주라면 별채와 본채 사이의 중정 같은 안마당엔 온갖 수목을 심고 괴석을 쌓아 정원으로 꾸며놓았다. 마침 동백이 붉은 꽃잎을 뚝뚝 떨구어 마당에 흐드러지게 널려 있었다. 누군가 두드렸는지 대문 옆 나무에 매달아 놓은 종과 징을 울리기 시작했다.

 

 

 

☞ 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현 선학곰탕)은 등록문화재 제193호로 경남 창원시 진해구 중원로 32번길 22(근화동 16-1, 18번지)에 있다. 현재 소유자는 이정석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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