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깊고 아름다운 하늘 끝 길
-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
전라도 강진을 다녀온 지
벌써 석 달이 다 되어가는군요.
그날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산길을 걸었었지요.
그 옛날 다산이 혜장 선사를 만나러 백련사를 오가던 곳이었습니다.
길은 '하늘 끝 한 모퉁이(天涯一閣)' 천일각에서 시작됩니다. ‘천애(天涯)’는 하늘 끝처럼 먼 곳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당나라 시인 왕발이 친구를 사천의 임지로 떠나보내며 지은 시의 일부가 생각나는군요. ‘해내존지기海內存知己, 천애약비린天涯若比鄰’이라는 두 구절입니다.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친구가 있으니, 하늘 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웃에 있는 듯하네”라는 의미입니다. 천일각은 다산 당시에는 없었던 건물이지요.
다산은 흑산도에 유배된 형님 정약전이 그리울 때면 이 언덕에 서서 강진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스산한 마음을 달랬을 것입니다.
다산초당 동암과 천일각 사이에 난 이 산길은 이제 널따란 길이 되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편히 오갈 수 있는 길이 되었습니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는가 싶으면 어느새 산허리를 감아 오르는 오솔길이 퍽이나 정겹습니다.
야생 차나무며, 시퍼런 편백나무며, 짧지만 참으로 옹골찬 산길입니다. 특히나 길의 끝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동백 숲이야말로 이 길의 백미이지요.
다산이 혜장 선사를 만나러 이 길을 오갔고 혜장 선사도 다산을 만나러 이 길을 다녔겠지요.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 이 길 덕분에 다산은 유배생활의 적적함과 허허로움을 달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길에서 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정계를 은퇴하고 이곳 백련사 뒤 토굴에 살고 있는 손학규 전 의원입니다. 다산이 오가던 이 길에서 그는 또 무엇을 구상하고 있을까요. 은둔인지,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지 그것은 오로지 그와 길의 몫이겠지요.
백련사 못 미쳐 바다로 지은 해월루에 잠시 올라 다산과 혜장 선사를 생각해 봅니다. 벗할 이 하나 없는 궁벽한 바닷가 마을에서 뛰어난 학승 혜장을 만난 다산의 기쁨은 어땠을까요.
두 사람은 수시로 만나 학문을 논하고 시를 지으며 차를 마셨습니다. 혜장 선사가 비 내리는 깊은 밤에 기약도 없이 다산을 찾아오곤 해서 다산은 언제나 밤 깊도록 문을 열어두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이제 봄은 가고 벌써 여름의 가운데이지만 여전히 4월의 그날이 그리운 때입니다. 내년 봄에는 동백꽃 흐드러지게 필 때 한번 다녀오렵니다.
800여 미터밖에 되지 않는 짧은 거리이지만 벗을 찾아가는 행복한 길, 어느 길보다 깊고 아름다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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