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기막힌 퇴근길을 소개합니다
1100원으로 주말 오후 즐기기
11월 초 전라도 여행 이후 심한 감기로 고생을 해서 당분간은 집에만 있기로 했다. 지난 주말 집에서 빈둥거리다 끝내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배낭을 둘러메고 길로 나왔다. 오후하고도 두 시가 넘은 시각이라 가까운 곳을 찾아야 했다. 잠시 생각 끝에 사무실 뒤 가좌산으로 길을 잡았다.
내동마을
평소에 승용차로 출퇴근하던 길을 시내버스로 이동했다. 1100원을 내면 오후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데 문득 행복감이 밀려왔다. 찻길을 버리고 대신 산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사무실 인근 내동마을에서 내려 산에 올랐다. 여기서 출발하여 망진산 정상을 지나 봉수대까지 4.5km 정도를 걷고 다시 봉수대에서 산길을 내려가서 남강을 건너 천수교를 지나 집까지 2.2km 정도를 걸어야 했다.
산길의 시작은 경상대학교 뒤 가좌산에서였다. 야산인데도 불구하고 숲이 울창하고 길의 색이 아주 다양해서 매력적인 산길이다. 아마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학 주위에 둘레길이 생긴 곳이기도 하다. 학교 영문 이름을 따 ‘GNU둘레길’로 불리고 있다.
잎이 다 떨어진 은행나무 군락
걷는 동안 중간 중간 세 갈래, 네 갈래의 갈림길들이 더러 나타난다. 갈림길은 경상대학교와 약골, 봉수대가 있는 망진산, 석류공원, 진양호 물문화관 등 여러 가지 산길로 이어진다.
갈림길이 있다하더라도 길이 헛갈리지는 않는다. 갈라진 길은 다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산책하듯 걸어가니 어느새 멀리 망진산 정상이 보인다. 송신소가 있어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남강과 하동 가는 국도 2번 그리고 옛 경전선 철길
왼쪽의 오솔길을 내려서니 숲 사이로 남강이 보인다. 지금은 폐선이 된 옛 경전선 선로와 하동 가는 2번 국도가 강 옆을 달린다. 멀리 천수교가 보이고 그 너머로 서장대와 진주성 일대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남강과 하동 가는 국도 2번 그리고 옛 경전선 철길, 천수교와 진주성 서장대가 강끝으로 보인다.
평탄하던 길은 망진산 정상이 가까워지자 제법 비탈이다. 곧장 올라가는 이 길에선 여태까지 흘리지 않았던 땀을 조금은 내어주어야 한다.
드디어 송신탑, 하늘을 향해 솟은 철탑이 시리다. 측량을 하기 위한 삼각지점에 해가 비춰 실루엣이다. 이곳저곳에 있는 운동기구에 사람들이 열심이다.
봉수대에서 본 진주시 신안, 평거동 풍경
우리 동네가 보이고 나의 집이 보인다. 진양호에서 흘러내리는 남강이 크게 휘돌아가는 풍경은 가히 압권이다.
봉수대에서 본 진주시 신안, 평거동 풍경
겨울에는 해가 짧아 이 산길로 출퇴근을 할 수 없지만 봄, 여름, 가을에는 가능할 것이다. 이런 기막힌 풍경을 가진 퇴근길, 생각만 해도 행복하지 않은가!
망진산 봉수대
봉수대에 올랐다. 남강 가 망진산 벼랑 끝에 서 있는 봉수대는 조선시대 5개의 직봉노선 가운데 동래 다대포진에서 목멱산(남산)에 이르는 제2노선의 보조노선으로 남해 금산과 사천 안점의 봉수를 받아 진주시 명석면 광제산 봉수대에 이어주는 곳이었다.
민족통일의 염원을 담아 1996년 전국각지에서 채석한 한라산 돌, 지리산 돌, 진주 월아산 돌, 백두산 돌, 독도 돌이 제단에 놓여 있다. 그러나 금강산 돌이 놓일 자리는 비어 있다. 통일이 되면 금강산 돌을 이곳에 놓을 것이라고 한다.
봉수대에서 본 진주시 신안, 평거동 풍경
봉수대에서 본 진주시 신안, 평거동 풍경
진주성 서장대 일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우리 동네...
바람이 거세어졌다. 스카프로 얼굴을 감싸고 서둘렀다. 봉수대 옆 벼랑으로 난 길을 따라 산을 내려왔다. 강 풍경이 아주 멋들어진 길이었다.
망경동 철길이 나타났다. 이제는 옛 진주역이 되어버린 이 건널목 철길엔 기차가 더 이상 다니지 않는다.
남강과 진주성
천수교 아래로 남강이 유유히 흐른다. 촉석루와 서장대, 진주성에 붉은 기운이 감돈다.
촉석루
여기저기 대통령 선거를 알리는 현수막이 어지럽다.
사우나가 보였다. 꽁꽁 언 몸을 녹이려 얼른 들어갔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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