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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길

통영의 아름다운 바닷길, 삼칭이길을 걷다





통영의 아름다운 바닷길, 삼칭이길을 걷다

 

통영에는 해수욕장이 없다? 미항 통영은 도시 어디에서라도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정작 해수욕장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통영을 수십 번 갔음에도 정작 해수욕장을 본 적은 없는 듯했다. 미륵산에 오르거나, 남망산을 산책하고, 강구안을 거닐고, 동피랑을 떠돌다가, 산양일주도로를 드라이브하면서도 바다는 늘 곁에 있었지만 해수욕장은 여태 보질 못했다.


 

아름다운 바다 풍광에 마음과 시선을 빼앗기다 보니 해수욕장이라는 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을까. 마리나 리조트 쪽으로 가다가 자전거 타는 이들을 보았다. 리조트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름도 생소한 ‘삼칭이길’이라 있다고 했다. 삼칭이길은 마리나 리조트에서 출발하거나 고개 너머에 있는 수륙마을에서 출발하면 되는데, 두 곳 다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단다.

 

 

수륙마을로 갔다. 수륙마을. 근데 그 이름이 어째 애잔하면서도 섬뜩하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알고 봤더니 삼도수군통제영 시절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의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한 제사인 수륙제를 지냈던 곳이 마을 이름으로 되었다는 것. 물과 뭍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을 달래는 의식이 행해졌던 것이다. 수륙마을은 바다를 가운데에 두고 지척에 한산도를 마주보고 있다.




수륙마을에 있는 작은 해수욕장이 통영해수욕장이다. 마을 앞으로는 통영해수욕장이라고 적힌 작은 푯말이 있었다. 이곳이 통영에서 본 유일한 해수욕장이었다. 물론 비진도와 욕지도 등 섬에서는 봤지만.

 

 

이곳에서 삼칭이길로 접어들었다. 삼칭이란 또 무슨 뜻일까?

 

 

일단 자전거대여소가 있어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1인용 자전거에서 가족끼리 탈 수도 있는 대형마차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자전거 대여요금은 1인용은 30분에 3000원, 1시간에 5000원, 2인용은 6000원, 10000원이었다. 소형마차는 30분당 9000원, 대형은 12000원, 특대형은 18000원이다. 가격이 비싸다고 여겼는데, 나중에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추가요금을 받지 않았다. 손님이 많지 않을 때에는 주인이 시간에 구애 없이 자전거를 넉넉히 탈 수 있게 인심을 쓰는 것이었다.

 


아직은 겨울 기운이 남아 있는 바다. 굴 따는 할머니와 파래를 뜯는 아주머니. 철썩철썩 파도가 초록의 갯바위에 부딪히는 바다 풍경이 한가롭기만 하다. 한없이 맑고 투명한 바다. 결국 마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 노인 두 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삼칭이라는 말을 몰랐을 것이다. 노인은 길을 따라 죽 가면 삼칭이마을이 있다고 했다. 길 끝이라면 영운리가 아니냐고 되묻자 영운리가 삼칭이마을로 불린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번쩍했다.  

 

 

영운리는 옛날 수군이 주둔했던 삼천진이 있던 곳이다. 삼천진은 원래 삼천포(지금의 사천시)에 있다가 1619년에 이곳 통영 영운리로 옮겨왔는데 그 삼천이란 말이 삼칭이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한참을 걸으니 바다 풍경은 점점 깊어지고 해안 길의 비경은 계속되었다. 어찌해서 이 길을 이제야 왔는지, 후회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중에 자전거 대여소로 돌아갔을 때 주인 할머니에게 물었더니 길이 생긴 지가 10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1년에 통영을 수어 번 왔다갔음에도 이 안쪽의 길까지는 들어와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순간 절망했다.

 

 

해안길이 놓여있음에도 태풍에 몇 번이나 파손되었다고 했다. 그러면 다시 복구하고…. 미륵산에 산행 온 사람들이 자투리 시간에 이곳에 많이 들른단다.


 


해안 길은 제법 길었다. 두 노인이 시키는 대로 한참을 갔을 때 하늘로 불쑥 솟은 거대한 바위와 바다 가운데로 그보다 작은 바위 하나가 보였다. 마치 버섯같이 생겼다.

"이곳에선 ㅈ바위"라고 부르는데 마을에 가서는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그랬다간 볼때기 얻어맞습니다."

"왜, ㅈ바위라 부르죠."

"생긴 거 보면 알 겁니다."

앞서 만난 노인의 말을 떠올리다 웃음이 절로 터졌다.


 

복바위를 마주한 해안은 거대한 절벽을 이루고 있다. 절벽 아래에 석불이 하나 있었다. 마침 산불조심 오토바이를 탄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신봉마을 이장을 지냈다는 김봉열(67) 할아버지는 자신의 마을에도 석불이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사는 신봉마을을 걸망개라 한다고 넌지시 귀띔했다.


 

계속 걸었다. 마을이 바로 코앞에 나타나서야 발길을 멈췄다. 한참이나 한산도와 주위 섬들을 둘러봤다. 화도, 상․하죽도, 그리고 한산도가 지척이다. 제승당선착장은 문어포의 길쭉한 지형에 가려 있지만 눈가늠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저편 끝으로 작은 섬이, 아니 암초가 보인다. 돛단여다. 이 해안 길은 한산대첩 길로 불린다. 한산도가 바로 지척이니 그런 것이다. 이운마을에 있는 돛단여라는 바위섬은 괘범도라고도 한다. 여는 조그만 암초를 말한다. 임진왜란 당시 통영과 고성 일대에서 왜군을 물리친 의병장 탁연 장군이 이 바위섬에 큰 돛을 매달고 주위에 작은 배들을 벌려놓아 마치 큰 함선이 진을 친 것으로 적을 속이면서 이순신 장군을 도와 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발길을 돌렸다. 이번에는 산길을 올랐다. 산책로가 잘 놓여 있는 종현산에는 전망데크도 있었다. 이곳에 오르니 바다 건너로 한산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이곳에서 자전거 대신 뛰거나 걸으며 산책과 운동을 하고 있는 통영시민들을 꽤나 만날 수 있었다.

 

 


자전거 대여소로 돌아와서 어묵으로 언 입을 녹였다. 주인 할머니에게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멍게란다. 우렁쉥이라고도 불리는 통영의 멍게. 초록의 바위 너머의 푸른 바다에 붉은 기운이 온통 바다를 채우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