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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길

가을 섬진강을 걷다. 진메마을 가는 길

 

 

가을 섬진강을 걷다. 진메마을 가는 길

 

차의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풍경이 자꾸 차를 붙들어 맨다.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동자바위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는 표지판 앞에서 차를 세웠다. 섬진강 슈퍼를 지나자 작은 공터가 나왔다. 걷기 시작했다.

 

 

강으로 배를 쑥 내민 천담마을에서 강기슭에 숨은 진메마을까지는 자전거 길이 강을 따라 나 있었다. 구담마을에서 천담마을까지 2.92km, 천담마을에서 구담마을까지가 4.24km. 그 옛날 먼지 폴폴 나는 흙길의 서정은 아니더라도 섬진강이 주는 풍경은 충분히 포근했다. 구절초며 갖은 들꽃들이 강 언덕에 피어나고 허리를 넘는 억새와 갈대도 흐드러지게 피어날 자세로 강변 풍경을 더하고 있다.

 

 

이 보드랍고, 따뜻하고, 아득하고, 고요하고, 정적에 가까운 섬진강. 이따금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의 움직임만 감지될 뿐이다. 산 너머로 해가 눕기 시작하면서 얼굴로 내리쬐는 햇빛은 더욱 강해졌다. 열 살 난 딸아이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고 돌아올 때는 반드시 어떤 차라도 세워서 태워주겠노라고 단단히 약속을 하고 나서야 아이는 걸음을 힘차게 딛는 시늉을 했다.

 

 

"아, 이런 곳도 있구나."

 

침묵을 지키던 아내가 무심코 한마디 툭 내뱉는다. 여행자를 따라 전국을 돌아다녔던 아내가 보기에도 이곳은 묘한 곳이었나 보다. 긴 골짜기에 강 한 줄기, 그 옆으로 차 한대 겨우 지나는 길 하나, 아무리 눈여겨봐도 산비탈에 밭 한 뙈기, 강변에 논 한 배미 없는 이런 외진 적막강산이 있단 말인가.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이따금 골짜기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여울목을 쏜살같이 흐르는 물소리가 아니라면 꿈속을 거니는 줄 알겠다. 마치 소리 없는 산골짜기를 아득히 걷는 듯했다. 이백이 이곳을 보았다면 분명 ‘이곳은 별천지라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라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라고 읊었겠다.

 

 

"마을은 대체 언제 나타나는 거냐?"

 

뒤돌아 봐도 걸어온 길이 그다지 길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마을이 보이지 않자 아이의 탄식은 깊어간다. 들꽃을 보며 흥얼거리는 여행자와 먼 산을 보며 하염없이 걷고 있는 아내를 번갈아보던 딸애는 시큰둥해지더니 금방 체념한 듯 뚜벅뚜벅 걷기 시작한다.

 

 

하필 이때 승용차 한 대가 싹 지나간다.

 

"저 봐, 우리도 타고 가면 되었잖아?"

 

아이의 볼멘 목소리가 원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마침 약수터 하나가 나왔다. 목을 축인 아이는 그늘에서 약간의 생기를 찾은 듯했다. 이때를 틈타 노련한 아내가 샘터 옆 시비에 적힌 시를 읽기 시작했다.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여름이었어

나, 그 나무 아래 누워 강물소리를 멀리 들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가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서서 멀리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강물에 눈이 오고 있었어

강물은 깊어졌어

한없이 깊어졌어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다시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있었지

 

그냥

있었어

- 김용택의 <나무>에서

 

 

멀리 강가로 불쑥 솟은 전망대가 보였다. 아이가 뛰어갔다. 그곳에선 산자락이 여태까지 꼭 여민 가슴을 열어 강의 속살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강줄기를 거슬러 눈길을 더듬던 아이의 눈에 드디어 햇빛에 번득이는 마을이 보였던 것이다.

 

 

땅거미가 강가에까지 내려왔다. 길가에 널린 나락들이 발 아래로 밟힌다. 강가 풀숲의 흑염소는 고개조차 들지 않고 풀을 뜯느라 여념 없다. 갓 피어난 억새 사이로 사람 몇이 보였고 해가 떨어져 제법 발이 시릴 강바닥엔 다슬기를 줍는 아낙네 두엇 보였다. 왼쪽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인 마을은 푸근하기 짝이 없고 그 앞으로 섬진강이 골짜기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마을 앞 도로에는 오랜 세월 섬진강을 봐 왔을 당산나무 두 그루가 무성했다.

 

 

길에서 시인의 집이 보였다. 섬진강 물결이 바라보이는 곳에 시인 김용택의 생가가 있다. 섬진강 물결이 속살대는 강마을 진메마을에서 나고 자라 섬진강을 사랑한 시인이 퇴직하기 전인 2008년까지 살았던 집이다.

 

 

4칸짜리 기와집 한 채와 창고로 쓰이는 듯한 아래채 하나, ‘김용택’이라고 적힌 문패가 또렷하다. 섬진강을 늘 곁에 두고 산 시인의 집은 소담했다. 아담한 집 한 채에 작은 마당 하나. 다시 강이 너른 앞마당이 되고 산자락이 바깥담장을 두른 집.

 

 

‘관란헌'이라는 서재는 굳게 닫혀 있다. 서재 앞 쪽마루에 잠시 앉았다. 낮은 담장 너머로 섬진강의 물결이 보일 듯 말 듯하다. ‘관란’은 단지 ‘물결을 본다’라는 의미를 넘어 물의 흐름을 알아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맹자의 구절이다. "물을 보는 데에도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여울목)을 보아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는 것이다. 물은 근원에서 솟아나와 여울을 만나면 반드시 채우고 흘러 밤낮으로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서 바다까지 이른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그의 서재 방문을 잠시 열었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했을 시인의 흔적이 ‘관란헌’에 깊이 배어 있었다.

 

 

'섬진강 시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는 섬진강을 배경으로 많은 작품 활동을 했다. 수백 번은 읊었을 그의 섬진강 시를 모르는 이 누가 있을까?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이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는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

- 김용택의 <섬진강1> 중에서

 

 

섬진강을 닮아서일까. 시인이 없는 빈집을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소박한 시인의 집에서 섬진강 자체가 자신의 핏줄처럼 느껴진다고 했던 그를 다시 읽는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아라

- 김용택의 <봄날>에서

 

 

그래, 봄날이 오면 다시 이곳을 찾아야지. 강을 바라보며 당산나무 아래로 갔다. 마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공터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텃밭 한쪽에는 작은 비석 하나 서 있고 막걸리 한 병이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 "용택이 성님이…."

 

 

멀리서 들어서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중년의 동네 사내가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비석을 세운 내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걸 얼핏 알 수 있었다.

 

월곡 양반, 월곡댁

손발톱 속에 낀 흙

마당에 뿌려져

일곱 자식 밟고 살았네

 

 

"취직 되면 주말마다 술병 들고 진메마을로 달려오라"던 어머니의 약속을 생전에 지키지 못한 막내아들이 취직이 되고 나서 통장 하나를 만들어 속옷 값이며, 술값이며, 겨울외투 값이며, 용돈이며… 돌아가신 어머니께 드려 쌓은 돈으로 부모님이 땀 흘리며 일했던 고추밭 가장자리에 작은 이 빗돌을 세우고 '사랑비'라고 이름 붙였다는 얘기였다. 그 막내아들이 중년의 사내였다.

 

 

산비탈을 내려선 어스름이 순식간에 강을 건넜다. 떠나야했다. 자꾸만 고개를 돌려 마을을 돌아본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느린 걸음을 재촉하는데 ‘포터’ 한 대가 뒤에서 달려왔다. 아이와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손을 번쩍 들었다.

 

 

“우리 딸내미, 오늘 큰 트럭을 다 타보네. 봐, 걷기 잘했지.”

마침 천담마을까지 가는 길이라며 암치마을에 산다는 사내는 두 말 없이 우리를 태워줬다. 짐칸에 탄 우리는 손잡이를 꽉 잡은 채 섬진강을 달렸다. 아이는 연신 ‘야호’ 소리를 내지르더니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한 시간 걸었던 길을 5분 만에 도착했을 때 포터 아저씨는 “잘 가시요이.” 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인사치레로 어디에 사시느냐고 했더니 장암리에는 암치, 진메(장산), 신촌 세 마을이 있는데 자신은 암치마을에 산다고 하며 부랴부랴 떠나느라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모자에 선명히 박힌 ‘명감독’이라는 글자만 보았을 뿐이다. 그래, 내년 봄에 섬진강에 오면 암치마을의 명감독을 꼭 찾아야겠다. 막걸리 한 통 둘러메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