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포천 따라 '대통령의 길'을 걷다
소나무숲길을 따라 약수암으로 내려와 화포천으로 향했다. 들판은 농사철이다. 물을 댄 논에 경운기며, 트랙터며 분주히 오간다. 이따금 백로들이 주위를 맴돌며 날갯짓을 한다. 아니 농사의 기쁨에 겨워 춤을 추는가 보다.
들판의 가장자리를 크게 휘돌아가는 둑길이 있다. ‘북제방길’로도 불리는 둑길은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연애시절 자주 걷던 데이트 코스로 철둑길과 뱀산 아래 논둑길로 이어진다.
땡볕이다. 그래도 바람은 선들선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고 화포천으로 걷는다. 멀리 4량짜리 경전선 무궁화호가 느릿하게 지나가더니 뒤이어 나타난 KTX가 커다란 뱀처럼 뱀산 아래로 순식간에 꼬리를 감춘다.
본산배수장을 지나 경전선 철길 굴다리 밑을 통과하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초록의 화포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은 포장과 비포장길이 반복된다. 흙먼지가 폴폴 나는 흙길이 되레 고맙다. 멀리 편백나무 숲길이 화포천을 향해 초록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화포천은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100대 하천’ 중의 하나다. 21.2km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하천형 습지다.
다양한 물고기와 꽃창포, 버들 같은 습지식물들이 사는 생태의 보고이기도 하다. 쓰레기와 폐수로 황폐했던 이곳이 노무현 대통령이 귀향한 이후 ‘화포천 살리기’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한 무리의 자전거가 지나간다. 아까 봉하마을에서 봤던 화포천 생태여행을 온 노란 자전거다. 15시 30분에 출발한 것이겠지.
“아는 사람이야?”
“음, 당신도 알잖아. 김경수 비서관.”
“아, 저기 제일 뒤에 양복입고 보릿대모자 쓴 사람?”
“그래.”
자전거 무리 중에 제일 뒤에 탄 김경수 비서관이 여행자에게 인사를 먼저 건넨 것을 본 아내의 말이다. 너무나 자연스런 인사에 아내는 아는 사람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엄밀히 말하면 아는 사람이지만 친분은 없다.
근데 이상하다. 적어도 이곳에선 정치인을 만나도 유명인을 마주쳐도 우쭐댈 것도 없고 새롭지도 않다. 사인 받으려 촌스럽게 나불댈 일도 없다. 그저 마주치는 동네사람일 뿐이다. 그도 아니라면 너와 나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인 그저 그런 평범한 존재들일 뿐이다. 지난번 보았던 문재인도, 명계남도, 안희정도, 고 노무현 대통령도 이곳에선 동네사람들이었다.
흙길이다.
화포천은 경전선 철길과 나란히 달린다.
오후의 햇살이 길게 드러눕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습지는 오른쪽 등 뒤로 사라지고 마을의 집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한림정역이 가까워진 것이다.
17시 37분 마산행 경전선 기차를 타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대통령의 길(봉화산숲길)은 노 대통령이 예전에 손님이 오면 함께 거닐었던 길이다. 대통령 묘역에서 시작하여 마애불, 사자바위, 정토원, 호미든관음보살상, 편백나무숲길, 장방리 갈대집, 화포천, 본산배수장, 둑길(북제방길), 약수암, 생태연못을 거쳐 대통령 추모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약 5.3km로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 소요된다. 호미든관음보살상에서 도둑골로 내려오는 길은 2km 정도로 1시간 남짓 걸린다. 5.7km의 화포천 습지길도 있다. 여행자는 이날 봉하마을 입구에서 출발하여 봉화산에 올랐다가 둑길을 따라 화포천을 거쳐 한림정역까지 5km 남짓 걸었다. 느릿느릿 걸어도 두어 시간 남짓 걸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천했던 여행코스 |
"둑길을 걸어서 화포천까지 갔다가 들판을 한 바퀴 돌아오면 한 시간, 마애불을 거쳐서 봉화대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한 시간, 자은골로 걸어서 봉화대-관음보살상을 거쳐 도둑골로 내려오면 두 시간, 계속 걸어가서 재실 앞 낚시터를 거쳐 화포천까지 갔다 오면 두 시간, 화포천을 지나 뱀산을 돌아오면 세 시간, 이렇게 조금씩 욕심을 부리면, 1박 2일을 해도 모자랄 만큼 코스는 풍부합니다." - 2008년 3월 6일 노무현. |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오른쪽 '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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