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3개월, 동네 통닭집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사연
벌써 3개월이 되어가는군요. 몸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끊었던 술과 담배. 처음엔 이 두 가지가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사나, 걱정을 했었습니다. 담배는 예전에도 평소에는 피우지 않다 술 먹을 때에만 피우곤 했었지요. 술은 1주일에 2~3일은 꼭꼭 성실하게 먹었습니다.
허기야 술자리에서만 피웠다는 담배도 따지고 보면 많이 피웠던 셈입니다. 술자리에선 거의 줄담배를 피우다시피 했으니까요. 술자리가 길어지면 반 갑도 피웠습죠.
수술을 하기 전만 해도 술과 담배를 끊으면 뭘 하지,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술 후에는 술·담배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남들이 피우는 담배 냄새가 역겹기까지 했습니다. 간혹 공원에서 담배 피우는 이들을 보면 슬슬 밀려오는 짜증을 꾹 누르고 숨을 꾹 참은 채 쏜살같이 지나가곤 했습니다. 그 사람마저 얄미워 눈을 흘기곤 했으니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르는 법이겠지요.
담배는 쉽게 잊혀 지는데 술은 간혹 TV 등에서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캬!’하고 잔 부딪히는 시늉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딱히 마시고 싶다는 것보다는 술자리의 분위기와 그 시원한 목 넘김이 그리웠습니다.
# 장면 하나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강변을 따라 5km 정도를 걸어서인지 땀이 나고 목이 말랐습니다. 집 앞에 거의 다 와 가는데 고소한 냄새가 나더군요. 통닭집이었습니다. 거기까진 참을 만했습니다. 통닭집 앞을 지나치는데 가게 앞 파라솔에서 남자 둘이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갓 튀긴 통닭과 시원한 생맥주, 그 유명한 500CC, 나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고 있는 맥주잔에 혼이 나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혹 저를 아세요?"
무언가에 홀린 듯 한참이나 뚫어지게 맥주를 바라보고 있는 저에게 사내가 ‘누구지?’, 하는 표정으로 말을 걸더군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혹시 아는 사람인가 해서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소파에 기대니 ‘참, 내가 왜 그랬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만 해도 딱히 마시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더위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의 본능적인 행동에 놀랐습니다. 먹는 욕구는 나이가 들어도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 장면 둘
그런데 더 웃지 못할 상황은 어제 일어났습니다. 산책하고 역시나 그 집 앞을 지나는데 젊은 친구 서너 명이 통닭집 앞 파라솔에 앉으려고 했습니다. 그걸 보고 지난 일이 생각나 블로그에 글이나 올릴까 싶어 자료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으려고 했습니다. 자연스런 사진이 좋을 것 같아 주인에게는 찍고 난 후 양해를 구할 요량으로 사진 먼저 찍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저를 흘겨보았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공손했으나 말투에는 온갖 의구심이 묻어났습니다.
“아, 예~에, 제가 요즈음 술을 못 먹는데 술 마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사진으로 남길까 싶어서요. 미리 말씀 드렸어야 했는데....”
자초지정을 말했더니 대답은 알겠다고 하면서도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진 한 컷을 찍고 집 앞에 거의 다 왔을 때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통닭집 아저씨였습니다. 이번에는 제법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당황한 저는 급 방긋 웃으며 바로 “010-0000-0000”라고 또박또박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고 저의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그제야 그는 안심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반정장차림을 하고 있어 파파라치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단속하는 공무원도 아닌 듯한 것이 아저씨는 나름 의심이 된 모양입니다.
나 참, 술 마시는 모습이 좋아 글을 남기고 사진을 찍으려다 본의 아니게 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산책을 가서 그 집 앞을 지나면 꼭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건데, 아저씨는 왜 그랬을까요?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오른쪽 VIEW ON을 누르시면 금주에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여행 > 또 하나의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석, 고향은 풍성했다! (9) | 2012.10.03 |
---|---|
벼랑에 선 블로거, 하늘의 땅 모산재 풍경을 담다 (33) | 2012.09.18 |
블로그 스킨, 고수님들! 도와주세요 (14) | 2012.08.25 |
자전거 풍경, 이 정도면 멋지지 않나요? (17) | 2012.08.11 |
놀라운 작품으로 변신한 지리산 산간마을 안내도 (10) | 2012.07.02 |
고객 나 몰라라. 방치된 관광안내소의 실태 (12) | 2012.05.29 |
귀차니즘 혹은 참선하는 산사의 개 (3) | 2012.05.25 |
만 원짜리 그림, 표구에만 오만 원 쓴 이유 (12) | 2012.05.11 |
인터넷으로 주문한 제철 꽃게, 기가 막혀! (8) | 2012.05.10 |
빵 터진 딸아이의 기발한 어버이날 선물 (6) | 2012.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