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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자기를 찾아 떠난 '지리산 영원사'

자기를 찾아 떠난 지리산 영원사
- 나를 찾아 암자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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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던 전날 밤이었습니다.
한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로부터 오랫만에 소주 한 잔 하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술을 마시기에는 아직 몸이 내 의지를 벗어나 있었지만
두 번이나 거절할 수 없어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술집에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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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맥주를 마시고 나는 몸살에는 소주가 제일이라며
소주잔을 연거푸 들이키며 어줍잖은 객기를 부려 봅니다.
친구도 맥주를 마다하고 같이 소주를 마셔 줍니다.
십년지기에다 동갑내기인데도 아직 말을 높이는 사이입니다.
어떤 이는 둘이 서먹서먹한 관계가 아닌가 의심도 하지만
실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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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거나해지자 이런 저런 말 끝에 벗이 한마디 하였습니다.

"OO씨, 요즈음 '자기'가 없는 시대 아닙니까?"
......

"그렇지요."
......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내일은 어디로 갈 계획이죠?"

"지리산 암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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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영원사로 가는 내내 전날 나누었던 대화가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나는 누구였던가.

한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바쁜 일상, 두리뭉실한 어쩔 수 없는 관계들, 나도 없고 너도 없는 세상.
그동안 그것은 나의 참모습이 아니라며 애써 지우려 했던 기억들이 스쳐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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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사 가는 길은 찻길이 있지만 좁고 가파른 시멘트길입니다.
차 한대 겨우 지날 정도의 길이 덤불에 싸여 있어
마주오는 차라도 있으면 낭패당하기 십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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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리산 암자 순례 산행길로 이름난 삼정리코스입니다.
도솔암을 왕복하고 영원사,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를 거쳐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도마마을로 하산하여 다시 약수암을 올라 실상사로 이르는 길입니다.

그러나 일곱 개의 사찰을 돌아보기에도 빠듯하여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을 갖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원사에서 삼불사까지의 암자길만 가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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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음정,양정의 세 마을(삼정)에서 절집가는 가파른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영원사 가는 옛 길의 호젓함을 뒤로 하고 시멘트길을 택하는 마음은 착잡합니다.
아이와 아내는 영원사만 순례하고 도마마을에서 기다리기로 하여 어쩔 수 없이 차를 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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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사임을 알리는 큰 바위 표석이 하나 있습니다.
공터에 잠시 서 있노라니 적막 그 자체입니다.
풀 냄새가 가을이 왔음을 느끼게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절마당에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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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면 삼정리 해발 920m.
영원사는 지리산의 넓은 품이 한 눈에 보이는 삼정산 산중턱에 있습니다.
전망좋고 햇빛 넘치는 고요한 땅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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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사는 신라 경문왕 때 영원조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이를 뒷받침할 문헌과 유물도 없을 뿐더러
영원조사는 함양 사람으로 조선 중기의 스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승들의 방명록이라 할 수 있는 조실안록(祖室案錄)'에는
서산, 사명, 청매 스님 등 109명의 고승들이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고 합니다.

100칸이 넘던 대가람은 한국전쟁으로 거의 소실되었다가
 1973년 상무주암에 머물던 김대일스님이 복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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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행적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일일이 따지는 것은 애초 사찰에 온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정성들인 채마밭과 오랜 고목, 밭일하는 스님의 너덜한 모자와 지팡이만
내가 본 전부였습니다.
다람쥐와 산짐승들을 위해 내놓은 마음씨 좋은 보살님의 보시그릇만 오늘따라 유난히 커 보일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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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마당 한 켠에서 묵묵히 공양그릇을 닦고 있는 보살님께 상무주암 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자기를 찾으려는 거창한 마음은 범인인 내게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였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내가 누군인가에 깊이 침잠해보는 산행길이 이제 막 시작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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