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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꽃비 흩날리는 고적한 절집, 화암사

꽃비 흩날리는 고적한 절집, 완주 화암사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산사가 그곳에 있었다.


 
누구나 한번쯤 꿈꾼다. 골을 휘돌아 떨어지는 맑은 물소리와 이따금 들려오는 새소리, 인적 하나 없는 오솔길을 거닐다 천길 벼랑을 넘으면 다시는 세상과 만날 수 없는 곳, 깊은 적막만이 흐르는 산속 절집 대청마루에 하염없이 앉아 햇볕을 쬘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전국의 내노라하는 절집과 암자를 다녀 보았지만 그것은 풍문일 뿐 오직 화암사가 그러했다. 감이 붉게 익어가는 듬성듬성 있는 마을  몇 곳을 지나니 어느덧 깊은 산속이다. 불안불안한 시멘트길은 얼마가지 않아 끝이 났다. 오랜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빈터에 차를 세워 두고 산 속으로 향했다. 절집 앞에 늘 있던 그 흔한 식당도, 무슨 모텔도, 조그마한 가게조차 없는 무심한 절집 입구에 당혹스러웠던 건 오히려 나였다.


화암사 가는 길은 처녀길이다. 시멘트길이 끝나는 곳에서 차를  내리면  곧장 흙길이다. 낙엽이 밟히는 이 길은 단풍이 지면 거의 환상적이리라. 흙길을 얼마간 걷노라면 게곡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예서 부터는 돌길이다. 계곡을 바추 붙어가다 보니 자연스레 너덜돌길이 된다. 돌길이 지겹기도 전에 이번에는 암반길이다. 천길 바위벼랑이 길을 막는가 싶더니 생뚱맞게 철계단이 앞을 가로 막는다.


물이라도 많으면 장중할 폭포가 철계단에 가리어  비쩍 마른 모습이다. 최근 벼랑에 세운 이 철계단으로 절집 가는 길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누군가의 말대로 영혼을 팔아 편리를 산 셈이다. 아직도 철계단 옆으로 벼랑을 타고 넘든 옛 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화암사를 가기 위해서는 이 고비를 넘겨야 하는 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잠시나마 힘든 고행을 거쳐 극락에 이르는 수행길을 편리가 대신해 버렸다.


우화루雨花樓 '꽃비 흩날리는 누각'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졌다. 보물 제662호로 입구에서는 2층이지만 안마당에서 보면 단층이다.

바위벼랑을 넘어서자  갑자기 환해진다. 숲길 내내 어두웠는데, 갑자기 밝은 햇살이 비추었다. 고개를 드니 '우화루雨花樓'가 성문처럼 버티고 있었다. 일주문도 없는 절집에 유일한 통로는 대개 누각 아래를 지나게 마련인데, 무슨 연유인지 누각 아래도 돌을 쌓아 막아 놓았다. 바로 옆의 문간채 옆에 돌계단이 놓여 있고 절집 마당으로 들어서는 문이 있었다.

안마당에서 본 우화루와 적묵당

막혀 있는 우화루 누각 아래와 문간채의 문, 성벽처럼 둘러쳐진 담장들이 주는 폐쇄성은 절집마당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크지 않은 절집 규모에서 우화루 아래를 통해 절마당으로 들어선다면 너무나 휑할 것이다. 작은 규모가 주는 가벼움을 근엄함으로, 답답할 수 있는 폐쇄성을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도록 건물의 전체적인 배치를 통해 극복하였다.

극락전 '極. 樂. 殿' 한 글자씩 띄워 배치한 것이 특이하다. 보물 제663호이다.

'꽃비  흩날리는 누각'  우화루, 그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밖에서  보면 2층의 누각인데 안에서는 단층이다. 아래층의 기둥은 앞쪽에만 세웠다. 붉은 단풍잎이 우화루에 떨어진다면 정말 꽃비가 내리는 듯 하리라.


적묵당 마루에 누군가 배낭을 벗어 놓았다. 오랜 삶의 짐을 이곳에 잠시 벗어두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고운 단층 하나 없는 고졸한 당 마루에 산바람만이 무심하게 한 차례 지나갔다.


극락전 앞의 우물. 장독에서 물이 나온다.

어느 보살님의 경건한 염불 소리에 잠시 마루에 앉았다. 무심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가을 햇볕이 따사롭다.
스님은 간 데 없는 데, 보살님은 끝없이 절을 한다. 절마당에 비장감마저 돈다.


한참을 머물다 극락전을  탑돌이 하듯 돌았다. 부도 한 기가 법당 뒤에 고즈넉히 자리하고 있다.
앙증맞은 굴뚝은 연기를 잏어버린지 오래인 듯 하다.


문을 나와 해우소로 향했다. 뒷간이라 하기에는 민망하지만 가는 길은 청량하다. 말라 버린 계곡이지만 물이 넘치는 날엔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맑으리라. 해우소 옆 돌계단을 오르니 화암사 중창비가 있다. 그 옛날  동쪽 산마루에 원효대가 있었고, 남쪽 고개에 의상암이  있었다 하니 두 분이 수행하던 곳임을 알겠다. 중창비가 있는 자리에서 보니 멀리 산자락이 겹겹이 펼쳐진다.


성처럼 쌓인 돌담을 좀 더 가까이 볼려고 암반 위를 올라가니 산신각이 보인다. 담장에 가려 자세히 볼 수 없어 문간채로 가 보살님께 보기를 청하였다. 허락을 받아 산신각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대개의 절집들이 법당 뒤쪽 외진 곳에 산신각을 두건만 이곳은 스님들의 생활공간인 후원에 장독대와 나란히 있는 게 특이했다.

산신각은 법당 뒤에 대개 위치하지만 이곳에는 스님들의 생활공간인 후원에 장독대와 나란히 있다.

화암사에서 주목할 것은 극락전이다. 극락전의 하앙구조는 백제계 건축 양식의 대표적인 예이다. 일본과 중국의 전통건축에서 보이는 하앙구조가 우리나라에서는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를 빌미로 일본학자들은 하앙구조가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일본으로 직수입되었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다가 1976년에 화암사 극락전의 하앙구조가 학계에 보고되면서 기존의 설을 단박 뒤집을 수 있었다.

극락전의 하앙구조 백제계 건축양식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극락전 앞과 뒤)

하앙은 기둥 위에 중첩된 공포와 서까래 사이에 끼워진 긴 막대 모양의 부재를 말한다. 밖으로 돌출한 하앙의 길이만큼 처마를 길게 뺄 수 있고 거기다 장식을 하여 건물을 돋보이게 한다. 극락전 앞면의 하앙은 한 마리 용으로 형상화한 화려한 기법인 데 비해 뒷면은 아무런 장식 없이 날카로운 삼각형 모양이다.


우화루 옆에 문간채가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절집에 어이해서 문간채가 들어서 있는가는 알 도리 없지만 누각 아래를 지나지 않고 문간채 옆문으로 출입하는 것도 이채롭다. 문턱은 아래로 휘어지고 문미門楣는 위로 굽어 절마당으로 들어서는 통로의 묘미를 준다. 수평재를 쓰지 않고 굽은 나무를 사용하여 드나드는 이들의 편리함과 시각적인 평안함을 준다.

화암사 전경 전체적으로 공간을 차단하면서도 안정감과 평온함을 준다.

절집 주위를 한 번 둘러 보았다. 돌각담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니 절집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아쉬운 것은 차를 세운 빈터에서 왼쪽으로 시멘트 길이 보이더니만 이곳 절집까지 이르는 길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그래도 시멘트길을 애써 무시하고 화암사 가는 옛 길을 선택하면 된다.


'절은 고산현 북쪽 불명산 속에 있다.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며 봉우리들은 비스듬히 잇달아 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이 없어 사람은 물론 소와 말의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이다. 비록 나무하는 아이, 사냥하는 사나이라 할지라도 이르기 어렵다. 골짜기 어귀에 바위벼랑이 있는데 높이가 수십 길에 이른다. 골골의 계곡물이 흘러 내려 여기에 이르면 폭포를 이룬다. 그 바위벼랑이 허리를 감고 가느가란 길이 나 있으니 폭은 겨우 한 자 남짓이다. 이 벼랑을 부여잡고 올라야 비로소 절에 닿는다. 골짜기는 넉넉하여 만 마리 말을 감출 만하고, 바위는 기이하고 나무는 해묵어 늠름하다. 고요하되 깊은 성처럼 잠겨 있으니 참으로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 둔 복된 곳이다.'

15세기의 '화암사중창기'에 묘사된 화암사의 길과 절의 모습이다. 아직도 화암사 가는 길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