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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산 좋고 바람 좋은 천태산 영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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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가는 길은 절로 흥이 난다. 물 좋고 산 좋고 바람마저 좋다면 굳이 절집까지 이르지 않아도 좋다. 영동 천태산 영국사 가는 길이 그러했다. 발에 감기는 흙길의 느낌이 좋을 쯔음 천연덕스런 돌계단이 비탈길을 대신한다. 물소리가 지척에서 들리고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마저 감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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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지루함은 바람에 날려 버리고 세상사의 혼탁함은 흐르는 물에 보내 버리면 그만이다. 전라도 절집가는 길이 계곡으로 난 평온한 길이라면 경상도 절집 가는 길은 산세만큼 조금은 가파르다. 이곳 영국사 가는 길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절집가는 길을 반반 섞어 놓은 듯 하다. 흙길과 돌길, 계곡 암반과 앙증맞은 다리, 평탄한 듯 하면서도 지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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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혼자 앞서 걸어간다. 가벼운 몸놀림이다.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다섯살난 아이에게 한마디씩 응원의 말을 건넨다. "아가야, 파이팅" "아빠, 파띵이 뭐야" "어, 우리 애기 씩씩하다는 말이야" "아"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이 난 아이는 땀을 삐쭉삐죽 흘리며 가파른 계단을 쉼없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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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 은행나무 수령 1,0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어둡고 긴 숲길을 한참 걷다 보니 오르막이 막바지이다. 아이는 가쁜 숨을 내쉬며 "아빠, 좀 쉬었다 가자" "어, 그래" 연신 땀을 훔쳐내는 아이가 기특하다. 아이와 나의 숨소리, 이따금 울어대는 산새소리, 바람소리 외에는 적막 뿐이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다. 이 깊은 계곡에 산중 평지가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수려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넓다란 평지에 영국사는 자리하고 있었다. 다섯살난 아이에겐 결코 쉽지 않은 산길. 완주한 기념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다. 노상 아주머니가 직접 찧었다는 칡즙 한 잔에 땀을 식히고 절집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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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 절마당

여행자를 제일 먼저 맞이한 건 하늘과 땅을 감추고 있는 어마어마한 은행나무였다. 절집은 은행나무에 가려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이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답게 그 나이가 1,000살이 넘었다. 나무 둘레만 하여도 11m가 넘으니 장정 몇이 둘러싸도 안을 수가 없을 정도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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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은 대웅전과 전각 몇 채뿐 소담하다. 화려한 것도 정갈함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찰이다. 소박한 대웅전과 삼층석탑(보물 제533호), 보리수 한 그루가 말없이 있었다. 영국사는 신라 문무왕 8년에 원각국사가 창건하였고 그후 효소왕이 백관들을 이끌고 피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 때에는 국창사라 부르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하여 국난을 극복하자 영국사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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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와 부도

대웅전 옆 한적한 길로 빠지니 짙은 솔숲이 나온다. 누각 아래 원각국사비와 부도 두 기가 다소곳이 앉아 있다. 시간을 잃어버린 옛 흔적들이다. 여기에서 산길을 따라 조금 가니 산 언덕에 어여쁜 부도 한 기가 있었다. 연곡사 동부도의 아름다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우수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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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 부도(보물 제532호)

절집에 가면 흔히 입구에 부도밭이 있다. 그러나 이곳은 붐비기 마련. 절 뒤의 한적한 오솔길을 걷다 만나는 부도만큼 정겨운 것은 없다. 세월의 이끼, 바람과 숲이 만나는 곳에서 하늘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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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탑봉 흔들바위

고갯마루 노상매점에서 오른쪽 산길로 접어든다. 널찍한 암반을 내려서니 삼단폭포라 불리는 용추폭포이다. 계곡물이 말라 폭포의 구실은 하지 못하고 있다. 다리를 건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쯤이면 천태산의 수려한 산세가 한 눈에 보이는 망탑봉에 이르게 된다.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인 망탑봉의 자연암석 위에 삼층석탑 한 기가 당당하게 서 있다. 경주 남산의 용장사터 석탑처럼 서 있는 위치가 호쾌하다. 석탑 옆에는 혼자서도 움직인다는 흔들바위가 있었다. 혼자 안간힘을 썼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힘이 없거나 아니면 안내판이 과장을 한 셈이다. 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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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탑봉 3층석탑(보물제535호)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삼았다. 이곳에서 보는 천태산 풍광은 압권이다.

망탑봉 석탑에서 진주폭포를 거쳐 하산을 하였다. 천태산 등산이 목적이 아니고 영국사만 둘러볼 요량이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길을 걸어 절집에 가는 게 좋다. 영국사 절마당까지 차로 가는 방법도 있으나 이왕이면 걸어가자. 영국사에서 내려오는 길은 올랐던 길이 아닌 고갯마루의 노상매점에서 오른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망탑봉 삼층석탑을 거쳐 진주폭포가 있는 계곡길로 내려가면 최상의 코스이다. 그리 길지 않은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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