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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행

일본어 한마디 못하면서 무조건 떠난 배낭여행

 

 

 

 

일본어 한마디 못하면서 무조건 떠난 배낭여행

- 온 가족이 합쳐도 '스미마셍', 그래도 별 탈 없었다

 

   하늘에서 본 후쿠오카 시내 전경, 후쿠오카는 인구 150만이 넘는 대도시로 규슈의 중심도시이다.

 

“스미마셍”

 

일본에 도착해서 여행을 마칠 때까지 내가 거의 유일하게 구사한 일본말이다. 처음 규슈 여행을 계획한 건 지난 3월쯤이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이던 <지리산 암자 기행>이 끝나는 7월쯤에 일본을 다녀온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 후 아침저녁 아이패드로 일본어 회화를 들었으나 그마저도 건성이었으니, 막상 7월이 되고 여행을 떠나야 했을 때 단 한마디의 일본어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믿은 건 역시 언어가 아니라 막연한 용기였다. 여행 준비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아는 지인의 도움으로 할인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었고, 숙소, 교통 편 등 세부사항은 모두 아내의 몫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믿는 구석이 있는 거도 아닌데, 그냥 떠나면 된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아, 유일하게 여행자라는 생색을 낸 건 아내가 잡은 여행일정에 동선을 확인해 준 것뿐이었다. 실제로 여행 첫날 나는 아무런 지식도, 사전준비도 없이 아내의 손에 끌려 공항으로 갔던 것이다.

 

  하카타역은 규수의 관문으로 대규모 상가 등으로 늘 활기차다.

 

규슈 여행은 일본어를 전혀 몰라도 된다는 풍문은 사실이었다. 길을 묻는다거나 교통편을 물어보는 것 등 일상적인 물음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이해를 못하면 직접 앞장서서 안내하는 일본인들의 친절함 덕분에 언어의 부족에서 오는 여행의 불편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후 2시 55분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 건 출입국사무소를 통과하는 것이었지만 그건 일종의 통과의례여서 긴장감은 있을지언정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후쿠오카 공항역에서 하카타역 가는 승차권을 구입하다. 한글 매뉴얼이 있어 편리하다.

 

문제는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하카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일단 아내는 셔틀버스를 타고 국내선 청사로 이동해서 다시 지하철을 타야 된다고 했다. 셔틀버스를 타는 건 의외로 쉬웠다. 공항 출입문을 빠져나오자마자 승강장이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음. 국내선 청사에 도착했을 때 가이드북을 본 아내가 잠시 멈칫했다. 가이드북에는 셔틀버스의 진행 방향 반대편에 지하철역이 있다고 한 것. 그러나 지하철역은 버스가 멈췄을 때 바로 앞에 있었다.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주위를 살피자 답은 명확해졌다. 도로공사 중이라 버스가 잠시 역주행을 했던 것이다. 마침 다른 한국관광객도 헷갈렸는지 일본인에게 지하철역을 묻고 있어 그의 도움으로 바로 앞 지하철역을 이용하면 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다음은 승차권을 끊는 문제에 봉착했다. 하카타역까지는 두 구간, 요금은 260엔. 한참이나 두리번거린 끝에, 한글 매뉴얼을 발견했다. 이런 횡재가 있나. 단번에 표를 끊는 데 성공, 근데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초등학생 딸의 승차권이 문제였다. 어떻게 끊지? 한참을 헤맨 끝에 130엔 반액권 버튼을 찾는 데 성공했다.

 

드디어 플랫폼으로 갔다. 지하철은 문이 열린 채였고 서서히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근데 하카타로 가는 순방향인지 아니면 역방향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쩔 줄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지하철 안을 향해 소리쳤다.

 

  후쿠오카 공항역과 하카타역은 지하철 두 구간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스미마셍, 하카타 스테이션?”

“예, 갑니다. 어서 타세요.”

 

맙소사! 돌아오는 답이 한국말이다. 어렵게 용기를 내서 질문을 던진 아내가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평소 영어와 담을 쌓고 있던 아내의 용감무쌍함이 이때부터 여행 내내 나타났다. 이렇게 해서 일본 여행의 첫 대중교통 이용은 성공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후쿠오카 공항역이 출발역이자 종착역이었다. 반대편으로 가는 지하철은 없고 오로지 하카타로만 가는 지하철만 있었던 것이다.

 

  '미도리노마도구치'는 티켓 오피스로 한국에서 구입한 교환권을 JR패스로 교환해야 지정석으로 갈 수 있다.

 

하카타역에서 내려 제일 먼저 한국에서 구입한 교환권을 JR(Japan Rail)규슈레일패스로 교환해야 했다. JR규슈레일패스(북규슈)는 3일권이 8,500엔이다. 한국에서 예약한 패스를 현지에서 교환해야 지정석으로 갈 수 있다.

 

미리 알아둔 곳은 ‘미도리노마도구치(티켓오피스)’. 아내는 녹색 간판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셋은 일제히 눈에 녹색 불을 켰다. 다행히 곧장 찾을 수 있었다. 오피스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우린 한참이나 서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서투른 영어로 패스 교환을 애기했더니 지정석 예약은 다른 오피스란다. 이런, 그것도 모르고 한참이나 기다리다니. 하는 수 없이 다시 나와서 또 다른 녹색 간판을 찾아야 했다.

 

  JR규슈레일패스만 있으면 일정 기간 동안 기차를 무한정 탈 수 있다. 북규슈 3일권은 8,500엔이다.

 

다른 오피스의 직원이 먼저 영어로 말을 걸었다. 다시 서툰 영어가 오피스 안을 오갔다. 지정석으로 교환하는 데에는 조금은 높은 난이도의 의사소통이 필요했다. 결국 반은 한국말이 섞인 영어로 3일 동안의 일정과 이동할 역을 설명하는데 성공했다. 이미 지정석이 없는 구마모토에서 아소 구간만 자유석으로 가고, 나머진 모두 지정석을 예약한 것. 이로써 앞으로의 여행은 탄탄대로에 서게 됐다.

 

  '미도리노마도구치'에서 한국에서 구입한 교환권을 JR패스로 교환한 후 이동할 역과 기차의 지정석을 예약해야 한다.

 

우리 셋은 가장 큰 일을 완벽히 했다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엄청난 자신감은 세부 일정까지 챙기는 여유를 가져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구마모토로 가는 신칸센 개찰구를 미리 알아두기로 한 것.

 

그런데 아무리 봐도 중앙에 있는 개찰구에는 신칸센이 안 보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용기백배하여 안내센터를 찾았다. 역시 이번에도 “스미마셍”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근데 여직원은 영어로 말하란다. 그러면서 반대편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내심 의심도 되고 해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타박타박 걸어 나오는데 반대편으로 개찰구가 하나 더 보였다. 그리고 신칸센 확인, 빙고.

 

  하카타역 인근 풍경. 하카타역은 교통의 요충지로 늘 붐빈다.

 

다음 날 기차 타는 곳까지 확인했으니 이제 숙소를 찾으면 된다. 치쿠시 방면의 출구로 나와 호텔을 찾기 시작했다. “저기야!” 이번에도 역시 아내가 단번에 찾았다. 이래저래 여행자인 나의 존재감은 점점 엷어지기 시작했다.

 

  하카타역 주위에는 음식점과 상가들이 즐비하여 늘 붐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더운 여름날에 별 탈 없이 호텔에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감사했다. 호텔을 접수하고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일본말을 못해도 여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일행은 호텔을 빠져나와 하카타 시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세 명을 다 합쳐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본말은 ‘스미마셍’ 오직 하나뿐. 우리 가족의 좌충우돌 북규슈 5일간의 배낭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카타역 주위에는 음식점과 상가들이 즐비하여 늘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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