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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행

일본 성을 알려면 꼭 올라야 하는 구마모토 성 우토야구라

 

 

 

일본 성을 알려면 이곳을 올라야…구마모토 성 우토야구라

일본어 한마디 못하면서 무조건 떠난 배낭여행⑤-4, 구마모토 성

 

모든 게 그렇다. 처음의 열정은 절정에 이르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최고의 장면을 보고 나면 나머지 장면은 웬만해선 감동을 주지 않는 법. 게다가 절정에 대한 감정이 때론 짜인 각본 때문이란 걸 눈치 챈다면 감동은 이내 식고 만다. 그래서 여행자에게 필요한 건 감동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 감동을 지속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천수각에서 본 우토야구라

 

가장 감동 깊었던 우토야구라

구마모토 성을 찾는 대다수 관광객들은 천수각과 혼마루 어전을 둘러보고 발길을 돌린다. 특히 한국에서 가는 패키지 여행상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천수각 일대에서 북적대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면 그제야 여백으로 남은 공간 한편으로 우뚝 솟은 오랜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천수각에서 본 우토야구라

 

얼핏 보면 천수각과 같은 모양새지만 규모는 훨씬 작다. 그럼에도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 근래에 복원한 천수각에서는 볼 수 없는 뭔지 모를 중후한 멋이 있다는 건 조금의 눈썰미만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니노마루에서 본 소천수(좌), 우토야구라(중), 대천수(우). 우토야구라의 지붕기와만 4만6천 장에 달한다.

 

구마모토 성에서 가장 감동 깊었던 곳을 꼽으라면 혼마루 어전의 화려한 ‘쇼쿤노마’도, 숨이 멎을 듯한 긴 성벽 ‘나가베이’도, 쥐도 기어오를 수 없다는 높고 가파른 석벽 ‘니요노 이시가키’도, 지하통로인 ‘구라가리쓰로’도 아니다.

 

 니노마루 광장에서 본 우토야구라(왼쪽)와 소천수와 대천수.

 

바로 이곳 오토야구라와 니노마루 광장에서 바라본 구마모토 성의 풍경이다. 단체로 오는 관광객들은 시간에 쫓겨 거의 보지 못하는 이 두 곳을 보지 않고서는 구마모토 성을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옛 구마모토 성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상상하기에는 우토야구라만 한 곳이 없고 난공불락의 구마모토 성이라는 걸 실제 느끼려면 정문 격인 호아테고문을 나와 니시오테야구라몬 밖 니노마루 광장에서 바라보는 구마모토 성의 풍경을 빠뜨릴 수 없다. 숨이 멎을 정도로 은빛으로 빛나는 그 정갈한 아름다움에 누구든 넋을 잃고 말 것이다.

 

 성벽 위에 길쭉하게 들어선 건물인 다몬야구라 양 끝으로 우토야구라와 쓰즈키야구라가 있다. 우토야구라는 지상 5층 지하 1층이다.

 

 

제3의 천수각 우토야구라에 엵힌 사연

왁자지껄한 천수각 성문을 빠져나와 반대편에 있는 우토야구라로 향했다. 우토야구라(宇土櫓)는 성벽에 세워진 일종의 망루이다. 천수각 맞은편에 있는 우토야구라는 1877년 세이난 전쟁 때 천수각 등이 불탈 때에도, 그 후에도 파괴되지 않아 17세기 초의 원형 그대로 보존된 건축물이다. 구마모토 성의 원형, 아니 일본 성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구마모토 성에서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몇 안 되는 건물 중의 하나로 국가지정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어두컴컴한 우토야구라 내부

 

우토야구라는 제3의 천수각이라고도 불린다. 구마모토 성에는 5층 야구라가 총 다섯 개 있었는데, 그중 우토야구라가 가장 큰 야구라여서 제3의 천수각이라 불렸다. 우토야구라는 헤이자에몬마루(平左衛門丸)에 있다. 헤이자에몬마루는 예전 이곳에 헤이자에몬이라는 사람의 저택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벽 위에 길쭉하게 들어선 건물인 다몬야구라(多聞櫓) 양 끝으로 우토야구라와 쓰즈키야구라(續櫓)가 있다.

 

 반들반들해진 우토야구라를 오르는 나무계단

 

 우토야구라 내부 목재는 주로 소나무를 사용했다.

 

‘야구라(櫓)는 망루를 뜻하는데, 우토야구라는 이름대로 풀이하면 ‘우토 망루’가 된다. 여기에는 이야기 하나가 전해진다. 우토야구라는 원래 고니시 유키나가의 우토 성에 있었던 천수각이었다. 그런데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 소속이던 가토 기요마사가 승리하고 이시다 미쓰나리의 서군에 가담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패하여 처형되자, 가토 기요마사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천수각을 통째로 뜯어 옮겨 이곳 구마모토 성의 일개 망루로 썼다고 한다.

 

 

 우토야구라는 17세기 초의 원형 그대로 보존된 건축물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른팔과 왼팔이었지만 늘 앙숙이었던 두 사람은 주군이 죽고 나자 결국 적으로 갈라서고 말았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상징이었던 천수각이 주인의 운명처럼 일개 망루로 강등되어 구마모토 성으로 오게 되었다는 이 이야기는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우토야구라를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우토 망루가 아닌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 성에 맨 처음 세운 천수각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우토야구라는 1985년부터 보수공사를 시작해서 1989년 10월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상상의 공간 우토야구라

안은 컴컴했다. 삐꺽거리는 반들반들한 마룻바닥은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음을 침묵으로 말하고 있다. 수많은 방들이 들어서 있고 긴 복도를 따라 창호를 바른 창들이 나 있다. 창으로 비친 빛을 따라 어둠을 뚫고 나아간다. 천장 또한 낮아 허리를 굽히지 않고서는 도저히 지나갈 수 없다.

 

 

 

마루의 끝에 이르렀을 때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을 보는 순간 당혹감이 밀려왔다. 겨우 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폭도 난감했지만 수직에 가까운 계단은 보기에도 아슬아슬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꽉 쥐었든지 반들반들해진 난간은 원래의 두께보다 훨씬 줄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들 정도였다.

 

 우토야구라에서 본 니시데마루(앞)와 니노마루(성벽 뒤) 전경

 

 반들반들해진 우토야구라를 오르는 나무계단

 

행여나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를 염려하며 난간을 꽉 붙잡고 온 힘을 다해 계단을 올랐다. 간혹 열려진 창틈으로 햇살이 뿌옇게 비쳤을 뿐,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마치 저 컴컴한 구석에서 금방이라도 야수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오싹함과 층계를 다 오르고 나면 무엇이 나타날까 하는 기대감이 묘하게 뒤섞였다.

 

 

잠시 후 앞이 환해졌고 맞은편으로 천수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상상은 거기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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