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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행

이보다 더 화려할 순 없다! 구마모토 성 혼마루 어전

 

 

 

 

 

화려함의 극치, 구마모토성 혼마루 어전

일본어 한마디 못하면서 무조건 떠난 배낭여행⑤-3, 구마모토 성

 

 

혼마루 어전(혼마루고텐, 本丸御殿)은 일본의 성에서 가장 호화로운 건물이다. 그럼에도 하늘로 우뚝 솟은 천수각과는 달리 납작 엎드려 있어 얼핏 보면 웅장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서자마자 성의 중심이 혼마루 어전임을 금방 깨닫게 된다.

 

 천수각에서 내려다본 혼마루 어전

 

혼마루 어전은 성주가 일상생활을 하고 정무를 보는 공간으로 천수각이 성의 상징이라면 혼마루 어전은 성의 심장부로 볼 수 있다. 사실 처음부터 일본의 성에 천수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1573~1603)와 에도 시대(1603~1868)에 와서야 혼마루에 일본 성의 상징 건물인 천수각이 등장하게 된다.

 

                                   ▲  오모다이도코로에는 바닥을 네모지게 파고 그 위에 불을 피우던 일본 전통의 실내 화로인 이로리가 있다.

 

혼마루 어전, 그 장엄한 분위기

 

혼마루 어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신발을 담을 수 있는 비닐봉지를 한 장씩 받아서 혼마루 어전으로 들어간다. 지금의 혼마루 어전은 근래에 복원한 것으로 오미다이도코로(큰 주방), 오히로마(접객을 위한 큰 방), 스키야(다실) 등이 있다. 이런 시설들은 구마모토 성을 쌓은 가토 기요마사와 그의 아들 가토 다다히로에 이어 성주가 된 호소카와 다다토시가 1633년부터 1635년까지 오미다이도코로와 오히로마 북쪽의 거실 등을 증축하는 등 대규모 공사를 벌여 고쳐지었다고 한다.

 

 

현관처럼 사용되는 방인 시키다이노마를 지나면 오미다이도코로를 만나게 된다. 오모다이도코로에는 바닥을 네모지게 파고 그 위에 불을 피우던 일본 전통의 실내 화로인 이로리가 있다. 일본 영화에서 종종 봤던 것이지만 이곳의 이로리는 그 크기가 엄청나다. 오미다이도코로가 워낙 크다 보니 천장(오야구미)도 거대하다. 이곳은 발굴된 당시의 석재 일부를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큰 방, 오히로마

 

주방을 지나면 일순간 무서우리만치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큰 방이 나타난다. 오히로마이다. 산수화가 그려진 12폭의 병풍이 둘러쳐 있다. 이곳에서부터 그 묵직한 분위기에 관광객들도 모두 숨죽여 사뿐사뿐 마루를 걸어간다.

 

 

오히로마는 다다미 60장 크기의 쓰루노마, 35장 크기의 우메노마, 28장 크기의 사쿠라노마, 24장 크기의 기리노마로 이어진다. 쓰루노마와 각 방을 잇는 회랑은 오히로마 엔가와(툇마루)와 시키이타(마루청)로 불린다. 특히 길이가 31.5m, 폭이 5.5m인 엔가와는 와카마쓰노마, 쇼쿤노마까지 이어져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서화를 장식한 도코노마 

 

길게 이어지는 마루도 장대하지만 엄청난 크기의 방들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성주의 접객 장소로 쓰이는 방들은 격식 있게 꾸며져 있는데, 각 방마다 이름이 있다. 최고의 방은 쇼쿤노마로 장벽화가 있어 화려하기 이를 데 없고, 두 번째로 격식 높은 방 와가마쓰노마는 벽과 후스마(맹장지, 방과 방 혹은 방과 마루 사이의 문으로 종이 등을 바른 문)에 청정한 소나무 그림이 그려져 있고, 세 번째로 격식 높은 방으로 접객을 위한 대면소로 쓰인 기리노마에는 벽과 후스마에 오동나무 그림이 있다.

 

 문고리 등의 조각까지 완벽하게 복원한 혼마루 어전

 

 

그리고 성주의 어용 화가인 스키타니 유키나오(1790~1845)가 그렸다는 판자문 그림이 있는 가장 지위가 높은 가신의 대기실로 보이는 가로노마가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건물들이 근래에 복원된 것인데, 문고리 등의 조각까지 완벽하게 복원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복원 안내도를 보니 아직도 많은 부분이 복원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원래대로 혼마루고텐이 복원된다면 그 규모와 화려함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가장 지위가 높은 가신의 대기실로 보이는 가로노마의 판자문 그림.

 

 두 번째로 격식 높은 방 와가마쓰노마와 쇼쿤노마(안쪽)

 

화려함의 극치, 쇼쿤노마

 

장대하게 펼쳐진 마루의 끝에 이르자 문 사이로 화려한 방이 얼핏 보인다. 쇼쿤노마이다. 잠시 본 것이 후회되었지만 뇌리에 강렬하게 남았다. 나중의 감동을 위해 애써 외면하며 문지방을 넘었다. 모퉁이를 돌자 일제히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목이 없는 사람들이 열린 문에 빼곡히 들어서서 진풍경을 이루었다.

 

 

 

겨우 빈틈이 생겨 그 대열에 끼어들어 까치발로 섰다. 앞으로 화려한 쇼쿤노마가 황홀하게 펼쳐졌다. ‘쇼쿤노마(昭君之間)’에는 중국 후한 원제의 후궁으로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간 왕소군의 고사를 그린 그림이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 왕소군의 그림이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가토 기요마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인 히데요리를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방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화려한 쇼쿤노마

 

 

그래서일까. 이 방에는 밖으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고, 외부의 침입자가 밟으면 휘파람새 울음 같은 소리가 나는 특수하게 만든 마루인 우구이스바리가 있다고 하나 확인할 길은 없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었던 가토 기요마사는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에게 충성을 맹세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으로 여생을 보내는 등 이중적인 행보를 보인다. 보는 이에 따라 가토 기요마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다했으며, 표면적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예를 다했을 뿐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쇼쿤노마는 성주의 방인만큼 화려함의 극치이다. 최고의 격식을 갖춘 곳으로 중국의 궁궐 이야기를 다룬 그림 등의 장벽화가 있다. 붉은 기둥과 부재들, 하얀 벽면, 도코노마(서화와 꽂꽂이를 장식하는 공간), 치가이다나(다구나 장식품을 놓는 선반), 다다미, 천장까지 형형색색의 그림과 금빛의 장식들로 빛이 난다. 어느 한 곳 빠뜨리지 않고 최고의 기술로 화려하게 맘껏 치장했다.

 

 쇼쿤노마의 화려한 천장.

 

 

내가 보기에 이곳 쇼쿤노마의 절정은 화려한 천장이다. 이곳의 천장은 보통의 천장보다 높은 데, 우리식으로 보자면 반자틀 천장에 가깝다. 반자틀 천장은 서까래가 보이지 않도록 자재를 써서 가린 구조물인 반자로 천장을 꾸민 것이다.

 

 

 

특히 쇼쿤노마의 천장은 잘 다듬어진 나무를 사용하여 우물 정자 모양으로 천장을 꾸민 우물반자 모양인데, 구조 자체가 천장 구성 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구조인 데다가 금박 위로 갖은 꽃과 나무가 장식되어 최상의 천장이 된 것이다. 옻칠을 하고 보통 천장보다 높은 이 천장을 ‘오리아게고’라 한다.

 

 

혼마루 어전에서 나오는 길, 하오리를 걸친 중년의 사내가 길 가운데에 서서 나지막하지만 날선 목소리로 드나드는 사람들을 한쪽 방향으로 줄을 세운다. 사람들은 그의 지시대로 줄을 지어 좌측통행을 한다. 질서와 순응, 여기는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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