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사진, 기술보다는 발품이다.
- 여행의 기술 그 첫 번째 이야기
1. 발품은 여행의 기본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는 비단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지를 선택하는 자료 수집과 정보 파악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여행지에서 보다 멋진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사진을 얻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대개의 사진에서 여행지의 전체적인 것보다는 부분적인 것에 매몰되어 있는 사진을 흔히 볼 수 있다. 의도적인 표현이 아니라면 게으름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부끄러운 사진일 수 밖에 없다. 여행지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부지런함 만이 보는 이들뿐만 아니라 자신도 만족할 수 있는 여행 사진이 될 것이다.
요즈음 렌즈가 좋아짐으로 인해 멀리서도 대상을 가까이 잡을 수 있고, 가까이서도 건물 전체를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말라. 특히 초보자라면 평생 사진 기술이 늘지 않을 뿐더러 대상에 대한 이해와 애정 결핍으로 인해 매번 엇비슷한 특성없는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다. 물로 렌즈와 카메라가 좋으니 색감, 화각 등은 좋으리라. 먼저 눈으로 보라. 자신의 눈에 담긴 대상을 어떻게 카메라에 잘 담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 후 렌즈에 담아라.
진주 진양호의 물안개
3. 위치 선정은 어렵다. 그러나 끊임없이 뛰고 연습하자.
축구에서 공격수에게 제일 중요한 건 위치 선정이다. 프리메가리그나 프리미어리그의 세계적인 공격수들을 보라. 그들의 공통점은 문전에서의 탁월한 위치 선정이다. 물론 이들이 처음부터 골을 잘 넣을 수 있는 위치를 저절로 안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연습으로 인해 자신이 어디에 서야 득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터득하게 된 것이다. 여행·풍경 사진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위치와 각도에서 사진을 연습해 보고 자신 만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여행 사진의 출발점이다.
욕지도의 노적마을
4. 구도는 기본이나 이루기가 어렵다.
어떤 사진을 보면 느낌도 좋고 모든 게 만족스러운 데 어설픈 구도로 인해 사진이 불안정해 보일 때가 종종 있다. 바로 구도의 문제다. 특히 풍경사진은 구도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황홀한 일출과 일몰이더라도 구도가 불안정하면 사진이 주는 효과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구도는 축구의 프리킥과 같다. 즉 일정 위치에서 공간을 운용하는 것이다. 잘한다면 골을 넣을 것이고 아니라면 공이 골대를 넘어 갈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골대를 맞히는 경우다. 조금만 세심했다면 영락없이 골로 이어졌을 것이다. 사진에서의 구도도 마찬가지이다. 데이비드 베컴은 어떻게 해서 프리킥을 그렇게 잘하느냐의 기자에 질문에 단 한마디 하였다. "Practice and Practice"
설악산 울산바위의 운해
간혹 카메라도 손에 익지 않은 상황에서 풍경 사진에서 변형을 주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창조적인 표현'을 섣불리 얻을려는 무리한 욕심일 뿐이다. 우연히 쓸만한 사진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정말 우연일 뿐이다. 변형과 창조는 기본이 탄탄할 때 이루어지는 법이다. 기본 구도를 충분히 습득한 후 자기만의 창조적인 구도로 풍경을 담아 보자.
선운사 도솔천의 물그림자
5. 드러내고자 하는 대상의 주제와 특성을 면밀히 살펴라. 그런 후 무엇을 넣고 뺄지를 고민하라.
- 문화유산 답사 사진에서 흔히 이것을 간과하기가 쉽다. 물론 자료 사진을 위해 서원, 사찰, 성당 등의 모든 면을 사진에 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전에 중요한 건 스토리를 먼저 생각하라. 내가 글이나 사진을 올릴 때 무엇을 중심으로 서술할지를 염두에 두고 사진을 찍는다면 불필요한 샷과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후에 뒷날 필요한 자료 사진을 확보해 두는 것이 경제적이다.
- 다음으로 내가 간 장소를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자. 즉 내가 찍고자 하는 대상의 특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그런 고민의 흔적이 없는 글은 대개 수십 개의 사진이 무분별하게 올라와 있다. 옛집(고가)을 예로 들어 보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안방 내부, 특징없는 행랑채, 심지어 마네킹까지 올리는 사진이 있다. 다른 고가와는 차별화되는 이 가옥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하고,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사진은 과감히 빼는 용기가 필요하다. 글을 쓰는 데 꼭 필요한 사진,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사진, 여행지에서 나의 느낌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사진만 선택하여 글에 올리자.
지리산 영원사 보살님의 보시와 다람쥐
6. 시기와 날씨에 맞게 여행지를 택하라.
참 어려운 문제다. 단풍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면 초록색의 잎만 무성하다. 노을이 좋을 거라 기대했는 데, 먹구름이 꽉 끼여 있다. 여행과 사진에서 계절과 날씨만큼 인간의 의지를 벗어난 것은 없다. 일기예보도 중요하겠지만 여행자의 오랜 경험과 현지 주민들의 직감에 의존해야 할 때도 있다. 섬지방일수록 현지 주민들과 친해져야 한다. 그들은 바람의 냄새만으로도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매일 변하는 날씨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자신이 겪어 본 여행지의 계절에 알맞은 시기는 항상 메모하자.
부안 내소사 설경
7. 처음의 풍경에 빠지지 말고 동선을 염두에 두자.
간혹 여행을 갈 때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 함께 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이 사람이 사진에 그다지 관심이 없거나 기념 사진으로 만족하는 이라면 상관 없다. 그러나 만일 이 사람이 쓸만한 사진기와 사진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특히 풍광 좋은 곳에 갔을 때 이 사람은 처음 본 광경에 쉽게 빠져 든다. 그러다 보면 전체 일정과 소요시간, 동행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급기야 차를 놓치거나 시간이 지체되어 일행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종종 있다. 만약 당신이 이런 사람과 함께 한다면 몇 시간 뒤에 어디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일단 헤어져라. 그리고 설명하라. 당신이 지금 최고라고 생각하는 첫 풍광은 다음에 이어질 무수한 멋진 장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만일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먼저 유경험자에게 물어보거나 안내도를 보고 동선을 미리 파악하라. 대충의 소요시간과 동선을 파악한 후 갔던 길로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라면 촬영 포인트만 기억해 두었다 나중의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라. 그래야 다음에도 동행할 수 있다.
서산 개심사
8. 기다림에 익숙하라.
여행은 기다림이다. 누군가를 기다리기 보다는 무언가를 기다린다. 바람과 햇살, 구름과 비, 눈과 이슬을 제 때에 만나야 좋은 추억과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무작정 떠난다고 해서 최상의 조건을 만날 수는 없다.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전문사진작가가 아니더라도 여행지에서 보았던 것과 느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9. 장비에 연연하지 마라
사진에 있어 장비가 중요하다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지만 달리 보면 틀린 말이다. 흔히 '지름신'이라고 하는 장비병, 물론 고가의 카메라는 양질의 사진을 만들어낸다. 단 사진으로 대상을 잘 표현할 수 있는 훈련된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 찍어도 얼핏 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어설픈 구도와 적절치 않은 노출 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한다. 문제는 카메라의 기능조차 잘 모르면서 고가의 장비에 의존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카메라가 더 이상 나의 실력을 따라오지 못할 때 한 급 높은 카메라를 구입하자. 여행 사진에 고가의 장비와 고급 사진을 기대하지 말라. 그것은 사진 작가의 몫이다. 사진작가에게 있어 사진은 전부지만 여행자에게 있어 사진은 언제나 추억의 저장소일 뿐이다. 물론 사진 한 샷 한 샷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함양 거연정(6년 전 똑딱이 카메라로 찍었다.)
10. 여행자의 품위를 유지하자.
요즈음 누구나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여행지에 가면 사람 반, 카메라 반이다. 문제는 카메라를 소유해서가 아니다. 사진을 찍는 이들이 늘어남으로 인해 기본 예의를 망각한 채 행동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은 사진 초보자에서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사진작가들에게서도 보인다. 사진 좀 찍는다 하면 배낭 안에 톱을 넣어 다니는 사람이 있다. 앵글에 방해되는 나무를 자르기 위해서다. 야생화를 찍기 위해 다른 야생화를 짓밟는다. 자신의 사진을 위해 관람하는 이에게 비키라고 소리치는 이들도 있다. 한심한 지경이다. 이런 일로 인해 카메라만 가지고 있으면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담을 수 없다면 눈으로 보고 그마저도 아쉬우면 마음에 담으면 그만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상류층을 겨냥한 격언이지만 누구나 가슴 깊이 아로새겨야 할 말이다.
담양 소쇄원 이 사진은 10번 글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 찍는 모습만을 자료로 활용했을 뿐입니다.
이 글을 적은 나도 사진은 여전히 자신이 없다. 다만 여행기는 전문사진가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 뿐이다. 사진이 좋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여행과 풍경에 필요한 사진은 그 글과 그 느낌에 부합되면 그만이다. 사진 한 장에 내 모든 것을 바칠 것인지, 길 위의 여정에 나 자신을 버릴 것인지는 각자가 선택해야 할 몫이다. 여행자에게 있어 사진은 분명 전부가 아니라 여행의 일부이며 추억의 저장소일 뿐이라고 나는 늘 생각한다.
Daum 블로그 (http://blog.daum.net/jong5629)
'이야기가 있는 여행 > 여행의 기술,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로거가 후손에게 남기는 유언 10가지 (13) | 2009.06.22 |
---|---|
여행지 추천을 위한 몇 가지 조언 (11) | 2009.05.22 |
합천 영암사지-경남도민일보 (6) | 2009.05.18 |
보성녹차밭-시사 주간지 '시사IN' (6) | 2009.05.18 |
'1박2일', 내비게이션과 지도 어느 것이 좋을까 (7) | 2009.03.23 |
화장한 여자 VS 후보정한 사진 (7) | 2009.03.20 |
블로그와 술, 그 은밀한 유혹 (16) | 2008.12.22 |
여행블로거가 본 블로그의 명암 (42) | 2008.12.11 |
섬여행, 10가지만 알면 100배 즐겁다. (30) | 2008.11.21 |
메트로 기사-욕지도 최숙자 할머니 (0) | 2008.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