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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경

경북의 숨은 단풍 비경 '신성계곡'을 아세요.

경북의 숨은 단풍 비경 '신성계곡'
- 방호정에서 신성리까지 기암절벽따라 펼쳐지는 단풍길

방호정은 1619년 방호 조준도가 어머니를 사모하여 지은 정자이다.

가을은 사람을 한시라도 가만두지 않는다. 이 놈의 역마살은 타고난 병인지라 오늘도 길을 나섰다. 저번 강원도 여행에 동참을 하지 못한 벗이 이번에는 기어이 가겠다하여 함께 길을 나섰다. 이번 여행은 주왕산을 거쳐 경북 북부 일대를 둘러 볼 요량이다.

주왕산이 가까이 오자 서서히 머리가 복잡해진다. 주왕산의 가을 풍경을 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서  여기까지 왔지만 정작 주왕산을 앞두고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현실이 눈 앞에 그려지서일까. 분명 넘치는 단풍 인파로 주왕산은 미어터질 게 분명하다.


어떡하나. 친구에게 물어 본다. 사람이 붐비지 않는 인근 계곡으로 빠지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그게 사진 찍기에도 좋지 않을까. 예전 방호정 사진을 우연히 보았는데 그 앉은 자리가 예사롭지 않더라. 기암과 절벽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이니 단풍도 멋있을 게다.


온갖 이야기로 주왕산 가는 부당함을 이야기하자 친구가  대뜸 한 마디 한다. " 니 알아서 하세요."  무슨 말이 필요했겠는가. 가을을 호젓하게 느끼면 그만인 것을.....


청송을 흔히 오지라 한다. 그만큼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교통이 불편한 곳이었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인근을 지나고 주왕산 등의 명산이 있어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다.


신성계곡은 신성리 방호정에서 고와리 백석탄까지의 계곡으로 기암절벽의 비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청송의 산들은 둥글둥글한 육산이 아니라 주왕산에서 보듯 기기묘묘한 악산이다.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맑은 물이 휘감아 도니 곳곳이 선경이다. 기암절벽에는 소나무가 청청하고 단풍들이 비단을 두른 듯 온 산을 붉게 물들인다.


이곳은 7,00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지형이다. 이러한 지형은 주왕산, 내연산을 거쳐 청도 운문산을 지나 남해까지 이어진다. 화산재가 지면을 따라 빠르게 흘러내리다 굳은 것이 이곳의 회류응회암이다. 공중에서 떨어져 기포를 머금은 구멍 숭숭 뚫린 제주도의 응회암과는 다르다.


이 응회암은 침식에 약해 곳곳에서 수직 절벽이나 폭포 등의 걸작품을 만들어 낸다.
주왕산으로 대표되는 이런 암반은 청송 곳곳에 숨어 있다.



특히 현동면 도평리를 지나 안덕면 신성리에서 기암이 절정을 이루다 고와리까지 펼쳐지는 신성계곡은 아직 찾는 이들이 드물어 호젓하게 여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청송의 그 이름이 아깝지 않는 숨은 비경이다. 

근곡리에서

신성리 가는 길은 청송답게 온통 사과밭이다. 주렁주렁 열려 있는 사과는 청송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단풍보다 더 요염한 사과빛은 여행자의 눈을 뺏고 그향기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근곡리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해가 저물자 볕에 말리던  콩을 거두고 있엇다.

신성계곡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방호정이 눈에 띈다. 광해군 11년인 1619년에 조준도가 지은 정자로 낙동강 상류인 길안천 절벽 위에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무덤이 보이는 벼랑 위에 정자를 지었다. 너른 개울 건너에서 올려다보는 맛도 시원하지만, 방호정에서 맑은 길안천을 내려다보는 맛도 그윽하다.


방호정을 나와 아무 목적도 없이 신성계곡을 끝까지 가보기로 하였다. 나의 여행방식은 저인망이다. 대충 훑어보고 지나치지 못한다. 내 자신이 만족할 때 까지 그 지역을 샅샅이 훑어야 여행의 참맛을 느낀다.

지소리 못미처 만난 기암절벽 풍경

강변의 조용한 마을 근곡리에 도착하니 노부부와 중년의 아들이 볕에 말린 콩을 거두고 있었다. 잠시 인사를 건네고 사진을 찍었다. 고와리 가는 길을 물으니 자제 분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강변 모래톱이 단풍에 물들어 아름다운 굴곡을 물 위에 그려낸다.


근곡리에서 지소리 못미처 절벽이 장관이다. 물줄기가 절벽 아래를 휘감아 돌아 만든 멋진 풍광은 연신 탄성을 자아낸다.  벼랑 위에는 단풍이 울긋불긋 황홀지경을 만들어낸다. 쉬이 걸음을 옮기지 못하여 벗과 나는 몇번이고 왔던 길을 되돌아갸야 했다.


곳곳이 비경이라 차를 가지고 온  것이 후회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오거나 걸어서 왔다면 이 아름다운 경치에 넋을 잃으면서 완상했으리라. 속도가 주는 편리함은 언제나 영혼을 잠식하는 법이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세우기를 수 번, 어느 덧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 계곡에 대체 몇 시간이나 있었을까. 산그늘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하자 걸음을 재촉하였다. 고와리까지 쉼없이 가자고 벗과 나는 약속하엿다. 그러나 그 약속은 채 5분도 되지 않아 깨져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임을서로에게 주지시키며 고와리로 향했다.

고와리 백석탄에는 흰바위 돌이 온 계곡을 메우고 있다.

고와리는 경주사람 송탄 김한룡이 개척하여 시냇물이 맑고 아름다워 고계高溪라 했다가 선조 26년인 1593년에 고두곡이라는 장수가 왜군에게 패하여 부하를 잃고 이곳 백석탄을 지나다 경관이 아름다워 한동안 이곳에서 마음의 상처를 달랜 후 고와동이라 고쳐 불렀다.


고와리에서 빠뜨려서 안되는 곳이 백석탄이다. '하얀 돌이 반짝이는 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묘하게 깍인 바위들이 물 위로 솟아 있다. 멀리서 보면 흰 꽃이 무더기로 피어있는 게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든다. 흰 색과 푸른 소나무, 맑은 물, 붉은 단풍이 기막히게도 조화롭다.


해가 산 너머로 자취를 감추었다. 대사휴게소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였다. 냇가의 감나무는 주인이 없는지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주렁주렁 열려 있다. 이 가을이 지나고 신성계곡에 겨울이 찾아드면 감들도 누군가의 품으로 돌아 가겠지.


 

경북이나  대구 시민들의 피서지로 알려진 신성계곡에서

나는 여행 중 신성리 초입 방호정에서 몇몇 사람을 보았을 뿐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