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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경

용을 닮은 물도리동, 예천 회룡포

용을 닮은 물도리동, 예천 회룡포
- 스산한 가을 용이 울어 예놋다.


안동 하회마을을 가본 이는 알리라. 하회마을의 조붓한 골목을 누리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부용대에 오르지 않고서는 하회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벼랑 아래로 유장하게 물도리마을을 휘감아도는 낙동강은 하회에서 잊지 못할 기억이 된다는 것을......


해질 무렵 회룡포에 이르렀다. 회룡포의 가을은 깊어지고 신라시대의 오래된 절집 장안사에는 이미 산그늘이 졌다. 문득 고려 시대의 대문인 이규보가 장안사에 머물며 지은 시 한 수가 떠올랐다.


마을을 휘돌아 나가는 강은 용을 닮은 회룡포
산에 이르니 번뇌가 쉬어지는구나
.....중략.....
맑게 갠 절 북쪽에는 시내의 구름이 흩어지고
달이 지는 성 서쪽 대나무 숲에는 안개가 깊구려
병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졸음만 오고
옛 동산 소나무와 국화는 꿈 속에서 잦아드네.
                                              - 이규보, '장안사에서'


절창이다. 이규보가 보았던 회룡포의 풍경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겠다. 회룡포 가는 길에 있는 장안사의 북쪽은 오늘도 구름이 시내에 흩어져 있다. 달이 지는 원산성에서 회룡포를 감도는 새벽 물안개를 본다면 여기서 모든 것을 보았다 말할 수 있으리라.


장안사를 지나 안내도가 있는 고갯마루를 지나면 회룡포로 가는 오름길이다. 이마에 땀이 맺히는가 싶더니 물도리동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벼랑 끝 회룡대에 다다랐다. 정자 위에 서니 회룡마을을 굽어 도는 내성천이 장관이다. 사실 정자 위에 올라서면 소나무가 시야를 조금 가린다. 정자 아래를 내려가 벼랑 끝 난간에 기대어 보는 맛이 더욱 좋다.


회룡포回龍浦.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용이 비상하는 것처럼 물을 휘감아 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의성포'였다. 풍광 좋은 절도가 그러하듯 이곳도 조선시대에는 유배지였다. 그후 구한말 고종 때 의성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면서 의성포란 지명을 얻었다. 혹은 개울이 성처럼 쌓여 있다고 하여 재, 개울를 써서 의성포라 불리었다는 설과 한 때 큰 홍수가 나 의성에서 소금 실은 배가 이곳에 와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 중 가장 신빙성 있는 설은 아무래도 전자이다.


이처럼 의성포로 불리던 회룡포를 찾는 외지 사람들이 의성에 있는 마을인 줄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예천군이 주도하여 '회룡포'라 부르게 되었다. 즉 물도리동 안에 있는 회룡마을과 강 건너 용포마을의 이름을 따 지었다고 한다. 대대로 경주 김씨 집안 사람들만 살고 있는 집성촌인 회룡마을은 지금도 아홉 가구가 모두 경주 김씨다.


원산성에 서면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합쳐지는 삼강이 멀리 보인다. 낙동강의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도 거기에 있다. 해는 이미 산 뒤로 숨어 버렸다. 쌀쌀한 초저녁 공기를 맡으며 산을 내려 왔다.


아쉬움을 달랠 길 없어 회룡포마을 가는 하얀 모래밭으로 향했다. 일명 뽕뽕다리라 불리는 철판다리가 마을을 잇는 통로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다리가 없어 나룻배로 사람들이 오갔다 하니 옛 풍경이 그립다. 수심이 얕아 급한 경우에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고무 대야에 실어 강을 건넜다고 한다.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이곳의 강빛 노을은 황홀하였다. 마을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어둠이 내려 끝내 강을 건너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