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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경

가을 단풍의 대명사 구룡령 단풍

가을 단풍의 대명사 구룡령 단풍
- 산천은 아름다운 데 사람들이 어째......

오후가 되어서야 길을 나섰다. 전날 과음으로 인해 몸은 이미 마음을 떠나 있었다. 온누리 선생님과 한사 정덕수 선생님이 여행길을 동행하였다. 첫날 밤늦게 속초에 도착하여 온누리 선생님과 술 한 잔 기울이고 있으니 양양에서 한사 선생님이 먼 길을 마다않고 한걸음에 달려 오셨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 자리, 도저히 술기운을 못이겨 술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기어이 일이 터졌다. 두 분이 숙소까지 쫓아 왔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은 없고 다시 술판을 벌였다. 허, 징한 분들이다. 그래도 아침잠이 많은 내가 늦잠을 자는 조건으로 술자리를 이어 갔다. 마음 만은 넓은 분들이다.


다음날 욕 좀 먹었다. 어떻게 술자리에서 도망을 가냐고. 허기야 내가 내 자신을 생각해도 용납이 안되는 일이었길래 급히 사과를 하였다. 사람좋은 두 분은 허허 웃으며 물메기(곰취)로 해장을 하고 같이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한계령을 넘어 여주까지였다. 온누리 선생님이 아는 여주 도자공방의 촬영을 위해서였다. 한계령 방면으로 길을 나서니 도로는 이미 마비 상태다. 온누리 선생님이 구룡령으로 가자고 하였다. 당신이 본 강원도 단풍 중에서는 구룡령이 최고라고 하였다.


망설일 필요도 없이 차를 돌렸다. 얼마간 달리다 어느 고개에서 잠시 첫 쉼을 하였다.
 칡즙을 한 잔하고 첫 촬영에 들어갔다 전선줄과 시야의 부족으로 이내 철수하였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단풍이 절정을 치닫는다. 한사 선생님이 이곳에 심마니들이 제를 올리는 곳이 있다고 하여 차를 잠시 멈췄다. 한사선생님은 이곳 갈천 주위가 고향이란다. 내가 생각컨대 한계령 부근은 한사선생님이 두령 격이다.


고개를 넘기 직전의 단풍은 잎이 말라 있었다. 낮동안 붉음을 토하던 단풍이 밤의 추운 날씨를 이기지 못해 단풍이 들다 말라버린 것이다. 고개 능선의 나뭇가지가 잎 하나 없이 앙상하다.

계곡의 이끼가 푸르다. 여름날이면 계곡 바위에 온통 이끼뿐이란다. 고갯마루 못미처 제법 널찍한 공터가 있다.
구룡령 일대의 능선이 한 눈에 조망되는 지점이다.


가까이는 붉은 단풍이 눈을 즐겁게 하더니 멀리로는 굽이굽이 펼쳐지는 능선이 마음을 호방하게 한다.
" 우리나라 산천은 정말 아름다운데, 사람들은 더러운 이들이 왜 그리 많은지......"
"그러게요."
"사실 우리도 더럽지 않습니까?"
"아, 그런가요. 저는 빼 주시죠. 저는 이미지 관리해야 되거든요."
" 아, 천령님이 이미지 관리를 하는군요."
" 천령님은 엄청 합니다."
모두들 호탕하게 웃고 다시 길 위에 섰다.


구룡령의 단풍은 은은하다. 봄산의 정취를 자아내는 것은 화려한 봄꽃이 아니라 연둣빛 잎사귀이다. 가을 단풍이 붉은 빛만 있다면 감동이 반감된다. 연둣빛, 초록빛, 노란빛, 불그스레한 빛, 붉은빛,선홍빛 등 갖은 색이 조합될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애첩의 애교가 본처의 진득함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풍은 공기에 민감하다. 도심의 나무들이 제 빛도 발하기 전에 스러지는 이유가 예 있다. 고갯마루를 그냥  넘자니 아쉽다. 한사선생님이 이곳을 넘어 얼마간 가면 길가에 옥수수 막걸리를 파는 곳이 있다고 하였다. 동틀 무렵까지 술을 마셨는 데도 세 술꾼은 이내 침을 삼키기 시작한다.



허름한 초막에서 감자전을 안주삼아 술 한잔을 기울인 후 다시 길에 올랐다. 잠시 내려가는가 싶더니 다시 고갯길이 시작된다. 해발 650m 정도인 하뱃재는 의외로 경사와 길의 휨이 심하였다. 눈이 오면 통제되는 구룡령 험한 고갯길과 이어졌으니 그 성정이 같나 보다.


"내립시다."
누군가 한마디 던지면 망설임없이 내린다. "이러다가 이 고갯길에서 밤을 지새우겠구만." 오랜 여행과 촬영에 익숙해진 세 명이라 사진 찍기에 좋은 위치는 세 사람의 눈썰미가 비슷하다. 촬영 시간도 엇비슷하여 환상의 호흡이다.



단풍 촬영은 의외로 까다롭다. 단풍빛을 잘 드러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빛에 따라 색이 달라지므로 적정한 노출을 잡아내기가 힘이 든다. 정확한 노출을 잡았다 하더라도 창조적 표현까지 염두에 두면 사진은 어렵기만 하다.


하뱃재는 골이 깊어 이미 산그늘이 졌다. 그날 밤 세 사람은 여주의 남한강 어딘가에서 밤새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강원도 여행중에 찍은 사진은 이곳 구룡령 뿐이다. 포스팅을 고민하는 내게 한사선생님이 걱정말라며 강원도 사진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하였다. 온누리 선생님은 한 술 더 떠 동영상도 줄 터이니 포스팅할 때 같이 올리라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아직까지 파일은 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