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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경

알프스의 설산을 축소하여 옮긴 듯한 '백석탄'

알프스의 설산을 축소하여 옮긴 듯한 '백석탄'
- 수만년의 시간이 빚어낸 예술작품


끝날 것 같지 않던 신성계곡의 비경은 고와리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청송군 안덕면 고와리. 방호정이 신성계곡의 서막이라면 고와리는 클라이막스에 해당된다. 벼랑으로 둘러쳐진 계곡이 끝이 나는 곳에 고와리가 있다.


경주 김씨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고와리는 조선 인조 때 송탄 김한룡이 마을을 개척하였다. 시냇물이 너무나도 맑고 산세가 아름다워서 마을 이름을 '고계高溪'라 칭하였다.


고상한 뜻을 품고 세속을 초월하여 은거하며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는 사람, 즉 고와지사高臥之士가 사는 곳이라 하여 '고와리'라 하였다. 혹은 임진왜란 당시인 1593년에 고두곡이라는 장수가 왜군에게 부하를 잃고 백석탄을 지나다가 자연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워 한동안 이곳에 머물며 마음의 상처를 달랬다고 하여 '고와동'이라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설도 있다.


마을 어귀에는 고와리를 개척한 송탄 김한룡의 부친인 대양 김몽화의 비석이 있다. 30여 년 전 후손들이 세운 추원정이라는 비석이다. 김몽화는 병자호란 때 순절한 장수로 알려져 있다.


계곡으로 들어가면 흰 돌무더기들이 온 계곡을 메우고 있다. 백석탄白石灘. '하얀 돌이 반짝이는 여울'이라는 뜻인 백석탄은 마치 알프스 연봉의 설산을 축소하여 옮겨 놓은 듯 하다.


수만년의 시간이 만들어 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예술작품이 계곡에 무리지어 있다.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흰 바위들이 하냔 꽃처럼 피어나 선계가 따로 없다.


"마음을 씻고 갓끈을 씻는 운둔자의 풍류처" 라 했던가. 흰 반석 위에 누워 옥계수에 발을 담그고 붉게 물든 단풍을 바라 보며 흘러 내리는 물소리를 들으면 세속의 오염된 마음은 죄다 씻겨 가리라.


우리 강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기기묘묘한 흰 바위들, 바위를 감싸고 도는 맑은 물, 아늑히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산들은 신이 빚은 걸작품이다.


층암 절벽에 백학이 머물던 곳, 은자의 기상이 남아 있는 곳, 옛 시인들이 고기를 낚으며 산자수려함을 노래하던 이곳에서 나는 시간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