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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미치도록 푸른 날 쇠소깍에 가다

미치도록 푸른 날 쇠소깍에 가다
- 더 이상 숨은 비경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고요하다.


미치도록 푸른 날 쇠소깍을 갔다. 애초의 목적지는 난도와 새섬이었다. 조위표를 보고 물때를 맞추느라 신경썼지만 중간에 지체되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문주란섬으로 불리는 난도는 물이 빠지더라도 걸어서는 아예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 것도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전날까지 심하던 바람에 구름마저 떠나 버렸다. 맑다 못해 시리도록 푸른 날씨에 현기증마저 날 정도였다. 제주도를 몇 번이나 다녀 갔지만 이렇게 맑은 날씨는 손꼽을 정도였다. 한라산 백록담마저 구름에 둘러싸여 바로 지척에 있는 듯 하다.


쇠소깍은 이제 더 이상 숨은 비경이 아니었다. 입구부터 말끔히 정리되어 바다와 쇠소깍을 감상할 수 있도록 각종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도 제법 붐벼 제주도의 여느 관광지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다만 넓은 바다와 깊은 계곡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나른한 오후의 깊은 고요가 있었다.


사람이 많은데도 계곡이 워낙 깊고 앞에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어 소란스럽지 않다. 아니 오히려 가끔 소리치는 이들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릴 뿐이다. 나른한 봄날 대청에서 낮잠을 자다 멀리 뛰어노는 아이들의 아련한 소리에 잠을 깨는 듯하다.

신의바위 맞은 편 기원바위가 소원을 말하면 듣는다고 한다.

효돈천의 하류에 있는 쇠소깍은 깊운 소이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이곳은 하효마을의 본래 명칭인 '쇠둔의'의 쇠에다 연못 소자를 붙여 '쇠소'이고 맨 끝을 의미하는 제주어 '깍'을 붙여 '쇠소깍'이라 하였다.

쇠소깍의 테우 체험

이곳은 가뭄이 심해지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오고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기원바위 주인집 외동딸이 죽은 머슴이 물에 떠오르도록 백일동안 기도를 드린 바위

쇠소깍은 제주시의 용연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점은 같지만 이곳의 계곡이 훨씬 깊다. 다만 용연 상류의 기암괴석이 빼어난 반면 이곳의 바위벼랑은 평범하다. 용연이 제주 10경 중의 하나로 밤의 뱃놀이로 풍취를 자아낸다면 이곳은 제주도 전통 어선 중의 하나인 테우로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바닷가에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무릎까지도 차지 않는 앞바다는 아이들의 물놀이 장소로 더할 나위 없다. 주인집 딸과 머슴의 애틋한 사랑을 간직한 기원바위와 신의바위가 옛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수평선 너머로 멀리 지귀도가 보인다. 해발 5m 내의 작은 섬이 바다에 묻힐 듯 아스라이 보인다. 흰 등대가 섬의 위치를 가늠하게 할 뿐이다.

쇠소깍에서 본 지귀도

땅 아래로 푹 꺼진 계곡은 소리마저 묻어 버렸다. 아이들의 물장구 소리는 벼랑에 부딪혀 깊은 계곡과 바다로 흩어진다. 물 위에 솟은 바위 한 점이 떠다니는 테우와 더불어 고요한 그림을 그려낸다.


쇠소깍에 가다 본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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