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화의 땅, 제주도

한라산과 땅끝이 한 눈에 보이는 횡간도

한라산 땅끝 한 눈에 보이는 횡간도
- 아직 때묻지 않은 섬마을 풍습이 고스란히.....

횡간도 마을 전경

추자도 여행 삼일째, 풍랑에 발이 묶여 본의 아니게 추자도에서 3일을 머무르게 되었다.
전날, 추포도에서 횡간도로 곧장 가려던 계획은 높은 파도로 인해 뱃머리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다시 선장에게 부탁하여 횡간도에 가기를 주문하였다.

횡간도의 할머니들은 배가 올 때마다 나와 보신다.

전날보다 파도는 심하지 않았다. 그래도 흔들리는 배 위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힘이 든다.
수평을 맞추느라 두 다리에 힘을 잔뜩 준다. 마치 전투에 임하는 전사처럼 말이다.


횡간도.
섬이 동서로 길게 뻗어 엄동설한의 북풍을 막아준다는 뜻으로 '횡간도橫干島'라 하였다.
추자군도의 북쪽에 위치한 횡간도는 섬이 비껴서 길게 앉았다고 하여 일명 '빗갱이'라고도 한다.

제주 한국전력 직원분들. 횡간도를 간다는 나의 말에 민박집에 같이 투숙한 이분들이 동행하였다.

섬의 동서 양끝에 높은 봉우리가 있고 마을은 남쪽 해안 중앙에 있다.
정확치는 않지만 들은 이야기로는 300여 년 전 강씨 성을 가진 이가 처음 입도하였고
철종 2년인 1851년에 달성서씨가 섬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른쪽 끝 선명한 곳이 보길도이고 그 왼쪽이 땅끝이다.

뒤이어 김해김씨와 전주이씨가 들어 왔는데 특히 이봉춘이라는 인물이 특이하다.
뒤늦게 들어온 전주 이씨는 다른 성씨들이 섬 땅의 대부분을 차지해 버린 상황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이봉춘씨 대에 이르러 보리도 갈고 멸치잡이로 성공을 하여 추자도 제일의 갑부가 되었다고 한다.
귀신도 그에게 멸치젓 선불을 주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할 만큼 그의 일화는 유명하다.
1970년 이전까지 이곳을 비롯한 추자도 일대는 멸치잡이가 성행하였다.

검은가리(흑검도)와 상추자도 사이로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가운데 작은 섬이 '우두일출'로 유명한 소머리섬이다.

추자10경에는 '횡간추범橫干追帆'과 '추포어화秋浦漁火'가 있다.
제주도의 가장 북단에 있는 횡간도 앞바다에 흰 돛을 단 범선들이 떠다니는 풍경이 '횡간어범'이다.
제주도에 딸린 가장 작은 유인도로 멸치 떼가 많이 모이는 추포도의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며 멸치잡이 하는 것을 일러 '추포어화'라 하였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추포도, 상추자도, 다무래미, 수영섬, 직구도가 보인다.

섬에 도착하니 비탈진 암반 위에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섬주민들이 배로 운반한 생필품을 옮기기 위한 수단이다. 마을 쪽이 부산하다. 배가 오면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워낙 사람 구경하기가 힘든외진 섬인데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마을 어귀로 나왔다고 한다. 현재 횡간도에는 10여 가구 14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하였다.

횡간분교 교실

올해 일흔 셋인 최금순 할머니가 따뜻한 물이라도 한 잔 하라며 집으로 이끌었다.
"섬으로 시집와서 여태까지 살았는디, 이 섬에서 한 번 나가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것어."
탄식아닌 깊은 한숨이 섞인 말에는 섬생활의 외로움과 고단함이 묻어 났다.


강한 바람을 피해 높이 쌓은 돌담 사이를 걸어 한동안 오르니 옛 횡간분교 건물이 있었다.
1951년 8월에 설립된 이 작은 분교는 1991년 3월 문을 닫기까지
 26회에 걸쳐 총 161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횡간도의 돌담길. 강풍에 견디기 위해 성벽처럼 높이 견고하게 쌓았다.

마을 안에는 새로이 단장을 한 신식 집들이 몇 채 있다. 스산한 섬에는 다소 생뚱맞지만
맑은 날이면 푸른 바다의 색채와 잘 어울릴 법한 붉은 벽이 따스하다.


마을 여기저기를 구경하는 데 한 집이 유독 눈에 띄었다. 횡간도로 간다고 했을 때 나와 같이 민박을 했던 제주도 한전 직원 두 분이 동행을 하자고 하였다. 그 분 중  한 분이 나를 앞장서면서 일일히 안내하며 수고를 해주었다.

섬지방의 집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 횡간도 가옥

이 집은 강풍에 지붕이 날라가지 않도록 탄탄한 줄로 지붕을 둘러 큼직한 돌에 줄을 고정시켰다.
지금은 식수시설이 되어 있지만 물이 귀한 섬의 특성상 지붕으로 흘러 내리는 빗물을 모아두는 물통이 즐비하다. 오래된 돌절구와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똥돼지 뒷간도 눈에 띈다.
먹을 것이 부족한 이곳 횡간도는 옛날 인분이 돼지의 주요한 먹을거리였다.

똥돼지 뒷간

조그마한 마루 앞에는 나무널로 벽을 만들어 바람을 막았다.
이제 모습을 감춘 나무널판을 대어 만든 부엌문도 정감이 간다.

부엌문과 집안 모습

한 때는 섬 곳곳에 피땀으로 일구었던 밭들이 이제는 집 주위를 제외하고는 죄다 휴경 상태이다.
사람이 떠나니 밭이 묵는 것은 당연지사다.

횡간도의 텃밭과 가옥 풍경

육지에는 사라진 나무 전봇대가 신기하다.
마을 뒤 산죽숲을 얼마간 지나니 사방이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난다.
북으로는 보길도와 땅끝, 남으로는 멀리 한라산이 눈에 들어온다.

육지에서 사라진 나무전봇대가 횡간도에선 아직 소용되고 있다.

보길도가 이렇게 지척에서 보이리라고는 생각치 않았는데,
땅끝과 보길도, 남해안의 섬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문여 등대와 해안 절벽

제주항으로 가는 배시간이 다 되어 다시 배에 올랐다.
섬에 들어오면서 본 문여의 등대와 옆의 해안절벽 풍경이 장관이었다.
시간이 빠듯하지만 선장에게 이 절경을 둘러보고 오늘 일정을 마치자고 하였다.

문여와 등대. 흔들리는 배로 인해 수평을 맞추기가 힘이 들었다.

친절한 원용순선장은 흔쾌히 그러자고 하였다. 고마운 일이다.
3일 동안의 여행동안 사진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시고
섬의 이름, 유래 등을 설명해주는 등 안내자로서 더없이 좋은 분이었다.

추자도의 대표적인 낚시 포인트인 오동여

횡간도는 추포도와 마찬가지로 매주 월, 화, 목, 금 오후 2시에 추자도에서 행정선이 다닌다.
생필품 등을 내리는 등 잠시 머물다 가기 때문에 섬을 여행하는 데 이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추자도에서 어선을 빌려 횡간도에 들어가는 것이 섬여행을 넉넉하게 할 수 있다.

횡간도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