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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다무래미에서 본 추자십경, 직구낙조

다무래미에서 본 추자십경, 직구낙조
- 바람이 부니 해가 구름 뒤에 숨다


비가 그치자 바람이 분다. 민박집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어 섬일주를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직구도가 한 눈에 보이는 다무래미다. 추자십경 중의 하나인 직구낙조를 보기 위해서다. 바람이 부니 구름이 황홀하다. 멋진 낙조는 아니더라도 구름이 만들어내는 노을은 좋으리라.


추자항을 돌아 등대산공원으로 향했다. 카메라를 잡은 손이 바람에 휘청한다. 파도가 거세어 해안에서 떨어진 길까지 물방울이 튄다. 공원에서 다시 마을 안길로 접어 들었다. 올망졸망한 골목길은 섬지방 특유의 길이다. 초등학생들이 하교를 하는 학교를 지나니 최영장군사당이다. 사당 옆 오솔길로 접어들면 고사바위다.

고사바위에서

수령섬이 보이는 이 바위에서 해마다 풍어제를 올린다. 바위 이름도 여기에서 연유되었다.
너머의 고사바위는 작은 들알, 큰 들알, 진새미골창 등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지명이 많다.


다무래미 가는 길

다무래미 가는 길은 바다를 끼고 간다. 하얗게 핀 억새가 바람에 이리저리 날린다. 길 위에 있는 자는 나 혼자 뿐이다. 억새 하나를 꺽어 바람에 날리우고 파도 소리를 벗 삼아 하염없이 걷는다.

봉굴레에서 본 추자항

거센 바람이 일시 잠잠해진다. 기갯(곗)산이라 불리는 바위산이 바람을 막고 있었다.
의지할 곳 없는 몸을 바위산에 잠시 기대어 다리쉼을 하였다.

수령섬과 악생이

이 해안 산책로가 흙길이라면 더 좋으련만.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무심한 길을 탓하기보다는 여행자의 푸념일 뿐이다. 왼쪽 소롯길이 보인다. 봉굴레라는 곳이다. 추자항과 인근 섬이 한 눈에 보이는 멋진 터이다.

다무래미 가는 길

멀리 다무래미가 보인다. 전날 민박집 주인의 안내로 차를 타고 왔었지만 오늘은 나의 발을 선택하였다. 전날 왔을 때에는 대서리 해녀들이 물질을 끝내고 갯바위에서 타고 갈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자도는 아직 대서리, 영흥리 등 마을마다 해녀들이 있다고 한다. 다무래미는 언뜻 육지로 보이지만 물이 차면 섬이 된다. 

다무래미와 직구도, 여기에서 길은 끝난다.

구름이 좋다. 거친 붓질로 그려낸 구름도 있고 섬세한 붓길로 그린 듯한 구름도 있다. 한 시간 여를 걸으니 다무래미 끝에 이르렀다. 바람이 거세어 섬의 끝에 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솔숲길 한 켠의 바위언덕에 몸을 뉘여 바람을 피하였다.


해의 방향을 보니 일몰을 보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다. 바람은 소리만 낼 뿐 더 이상 나를 내몰지는 않았다. 아직 노을이 질려면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바위에 누워 시시각각 바뀌는 구름을 바라 보았다. 내 언제 하늘을 이렇게 오래 본 적이 있었던가.


한참 하늘을 보다 몰려드는 추위에 몸을 세웠다. 해가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바람이 부니 구름이 두터워 해는 모습을 감추었다. 살짝살짝 한 번씩 고개만 반쯤 내밀다 이내 숨어 버리는 해가 야속할 뿐이었다. 둥근 해를 원했던 건 순전히 나의 욕심이었다. 해가 둥글다면 구름이 이처럼 아름답겠는가.


계절에 따라 해가 지는 방향이 조금씩 다를 터, 솔숲 사잇길로 해가 질 때가 가장 아름다우리라. 해가 바다밑으로 들어갈려고 할 즈음 하늘은 가장 푸른빛을 띄었다. 이 때부터 사진에 최상의 빛이 된다.


섬은 이미 어두워졌다. 구름이 점차 그 색을 바꾸기 시작한다.
하얀 구름에서 붉은 구름, 다시 보랏빛을 띄더니만 급기야 선홍빛으로 불타 오른다.




어둠이 완전히 내리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 한다. 주위에 공동묘지가 있어 겁많은 나의 걸음을 재촉하였다. 아직도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게 쑥스러우면서도 행복하다. 무서움을 알아야 그칠 줄도 알기 때문이다. 직구낙조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