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牛島). 섬의 형상이 소를 닮았다 하여 우도라 불리었다. 허나 나에게는 우도가 아니라 우도(雨島)이다. 우도를 다섯 번 갔음에도 비를 만나지 않은 건 딱 한 번 뿐이었다. 한 섬을 그렇게 자주 방문한 적도 없을 뿐더러 같은 장소에서 매번 비를 만난 적도 거의 없었다.
성산 일출봉 아래 선착장에 이르니 비바람이 심상치 않다.
아니 거의 폭풍우 수준이었다. 배가 뜰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을 정도로 비바람이 사나왔다.
우도봉으로 향했다. 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우도봉(132m)은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우도의 절경을 일컫는 지두청사(地頭靑莎)로 우도 팔경 중의 하나이다. 봉우리에 오르니 서 있기 조차 힘들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쳤다. 사진 몇 장만 간신히 찍고 내려와야 했다.
흔히 우도의 아름다움을 '우도 8경'으로 엮어 말하고 있다. 주간명월(晝間明月), 야항어범(夜
航魚帆), 천진관산(天津觀山), 지두청사(地頭靑莎), 전포망도(前浦望島), 후해석벽(後海石壁), 동안경굴(東岸鯨窟), 시빈백사(西濱白沙) 등이 우도 8경이다.
"아들 나민 엉뎅이 때리곡 똘은 나민 도새기 잡으라"
(아들 낳으면 엉덩이 때리고 딸 낳으면 돼지를 잡아라)
제주도의 여자가 많은 특성이 우도에도 딸을 더 선호하는 전통의 표현이다.
지금도 우도에서는 물질하는 해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제주 여성 특유의 강인함은 우도 해녀의 항일 운동에서도 드러난다. 일제가 어업조합, 해녀조합 등을 통해 약탈을 하자 1932년에 세화장터에 해녀 700여 명이 모여 "입찰 경매와 악덕상인 처벌" 등을 주장하며 항일 시위를 벌였다. 세화리 잠녀(해녀) 투쟁으로 불리는 이 투쟁은 제주도 전역으로 번져 나갔다. 이로 인해 잠녀 대표들과 많은 애국지사들이 체포되었다. 제주도의 아름다움은 그 속에 흐르는 제주인의 끈질긴 생명력과 저항을 알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검멀레해안 우도봉의 뒷 절벽으로 자연 동굴이 있다. 해안 절벽에 있는 동굴이 입구는 작지만 그 안은 고래가 살만큼 커다고 하여 동안경굴(東岸鯨窟)로 불린다. 우도 8경 중의 하나이다.
예전 우도는 국유방목장이었다. 가파도에는 소를, 우도에는 말을 방목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조선 헌종 8년인 1842년에 처음으로 사람이 살도록 인가를 받았다. 2년 뒤 진사 김석린이라는 사람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제주도에 딸린 섬이 모두 62개인데, 이 중 사람이 사는 섬은 8개 정도이다. 우도는 구좌면에 속해 있다가 1986년에 우도면으로 분리 승격되었다. 지금은 12개 마을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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