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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또 하나의 일상

무성의한 딸의 문자, 아빠의 소심한 복수

 

 

 

 

 

 

 

 

 

무성의한 딸의 문자, 소심한 아빠의 복수

 

 

 

 

 

아마 결혼하고 두 번째였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아내와 단둘이서 여행을 떠났지요. 열 살 딸애는 태권도 승급심사가 있어 운동하러 간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혼자 두고 떠나온 게 마음에 걸려 중간 중간 문자를 보냈는데 딸애의 답변이 짧아도 너무 짧습니다.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 물어봤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사진으로 보냈더군요.

  

"우와, 맛있겠다! 잘 먹고 나중에 봐. 사랑해."

"ㅇㅇ"

 

 

그러곤 한참 후에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문자를 넣었습니다. 태권도를 마치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한 모양입니다.

  

"딸, 뭐해."

"TV"

"재밌어?"

"ㅇ"

"샤워는?"

"ㅇ"

  

아, 짧아도 너무 짧습니다. 이런 버르장머리하곤...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원래 요즈음 애들은 다 이렇게 한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내가 보기엔 대수롭지 않았던 모양입니다만. 저만 괜히 구닥다리 취급당하는 것 같아 복수의 기회만 엿보고 있었습니다. 다시 딸애에게 문자를 보냈지요. 이번에는 딸애의 성의 있는 답변 유도를 위해 조금 모호하게 문자를 보냈지요.

  

"7시 50분쯤 도착 예정이니 준비하고 있어라."

"무슨 준비?"

  

허허, 딱 걸려들었습니다. "ㅇ"가 아니라 제법 긴 문장으로 답변이 온 게지요. 이제 초강수로 마무리 지을 차례입니다.

  

"밥 먹을 준비"

"나가서 먹을 거야?"

  

드디어 복수의 기회가 왔습니다.

  

"ㅇ"

 

문자를 보내놓고 '앗싸~'하며 쾌재를 부르고 있었더니 곁에 있던 아내가 이를 보고 혀를 끌끌 차더군요. 그러나 소심한 복수의 승리도 잠시였습니다.

딸이 다시 마지막 문자를 보낸 것이지요.

  

"ㅇ" (그렇군...)

  

방심하다 일격을 당했습니다. 완전 KO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딸애에게 다소 훈계조로 따졌습니다. 딸이 말하기를 "아빠, 그건 다 그렇게 하는 건데. 문자는 간단히 쓰는 게 아닌가. 내가 일부러 버릇없이 그런 게 아닌데... 기분 나빴다면 미안!" 이런, 오히려 민망하게 되었습니다. 글쎄요. 이해는 되면서도 마음으론 선뜻 수긍되지 않더군요.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건가요?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오른쪽 '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