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에서 초간편 대나무 포크 만들기
화진포 옆 암자에서 머물던 이튿날,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연탄난로에 오도카니 모여 앉아 차를 마시니 봄날도 빗속을 고요히 지나간다.
무료하고 심심한 시간이 꽤 흘렀을 때 장 화백이 어디선가 한 자 정도 자른 대나무 토막을 한 아름 가져왔다. 암자 계곡에 시누대가 많이 있다며 이걸로 포크로 만들어야겠다며...
어른 팔뚝만 한 길이로 잘라온 대나무를 다시 가위로 손바닥만 한 길이만큼 잘랐다. 손에 딱 잡기 좋을 만큼 자른 후에 음식을 꼭 찍을 수 있도록 대나무를 다듬고 쓰임에 맞게 모양을 내야 했다.
역시나 두 부부 화가는 죽이 잘 맞는다. 어느새 자연스레 역할 분담이 되어 남편인 김 화백은 적당한 크기로 대나무를 잘라내고 아내인 장 화백은 자른 대나무를 다듬어 모양을 내기 시작했다.
대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 김 화백이 이번에는 포크를 다듬기 시작한다.
과일이나 떡 따위의 음식을 한 번에 꼭 찍을 수 있도록 끝은 조금 뾰족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신에 너무 날카로워 다치거나 쉽게 부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딘 듯 예리해야 된다는 것이다.
대나무 마디가 있는 부분은 손잡이가 된다.
특별한 장식을 하지 않아도 가지가 갈라지는 모습이 마치 부러 그렇게 한 것처럼 하나의 멋들어진 장식이 된다. 마디가 있어 위아래가 구분도 될 뿐더러 손에 딱 잡히는 맛도 썩 괜찮다.
한갓진 시간에 잠시 짬을 내었을 뿐이데, 십여 개가 넘는 대나무 포크가 금세 만들어졌다.
이 대나무 포크는 그 소용이 다 되어도 걱정이 없다. 수명이 다 되면 자연으로 돌아갈 터, 원래 온 곳으로 돌아감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할 뿐이다.
플라스틱이나 금속으로 된 포크가 식탁에 꽂혀 있는 요즈음, 이런 소박한 대나무 포크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만든, 자연이 깃든 용구로 음식을 먹는다는 건 자연을 먹는 것과 진배없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오른쪽 '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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