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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일제의 본토 방어 최후 보루 '알뜨르비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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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2005년 1월 27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다. '평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제주도는 한국 근현대사의 풍랑속에 좌충우돌하였다. 조선 말기인 1862년에는 진주농민항쟁과 더불어 가장 치열했던 농민항쟁이 있었고, 과도한 조세에 대한 저항인 1898년 방성칠 항쟁, 천주교인들의 폭정에 저항한(이재수의 난으로 영화로 상영된) 1901년 농민항쟁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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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비행장과 격납고

제주도를 넘어 육지까지 떠들썩하게 했던 이들 항쟁들의 근원지가 모두 '대정고을'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그 이유는 예전에 이곳은 인접한 산간마을에서 관의 수탈을 피해 모여든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고 한다. '모슬포'라는 지명도 제주도를 통틀어 이곳의 바람이 가장 매서워 사람이 살기 어렵다는 의미인 '못살포'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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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과 격납고

일제시대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제주도가 일본 본토 사수의 최후 보루가 되었다. 성산 일출봉, 송악산 등의 해안절벽에는 어뢰함을 감추기 위해 동굴을 파는 등 섬전체를 요새화하였다. 그 대표적인 군사시설물이 이곳의 '알뜨르비행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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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는 아래를 뜻하는 '알'과 들을 뜻하는 '뜨르'가 합쳐진 제주말이다. 즉 일반적으로 산간마을은 위에 있다는 뜻의 '웃뜨르'라 하고 해안마을을 '알뜨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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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납고 내부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를 퍼부어 만들었다.

이곳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은 해군비행장으로 건설하여 1937년 중일전쟁 당시 폭격기지로 활용하였다. 그후 1944년 10월까지 두 차례 확장공사를 하였다. 1945년 해방 직전까지 일본군은 이곳에 격납고, 유도로, 폭탄고, 송수신소, 비행대지휘소, 숙소 및 부대시설 등 각종 군사시설을 완성하거나 건설 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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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격납고는 현재 19개 정도 남아 있다. 격납고는 1943년 11월부터 12월까지 두 달의 공사끝에 20개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격납고의 규모는 폭 20m, 높이 4m, 길이 10.5m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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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납고가 있는 이곳의 풍경은 전형적인 제주도 농촌의 모습이다. 처음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비옥한 농경지가 되었다. 바다끝까지 뻗어 있는 드넓은 농경지에는 각종 작물들이 심겨져 있고 일부는 수확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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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가 분주하게 밭을 갈고 농부들은 햇감자를 캐내기 바쁘다. 일제시대에 부역에 시달려야만 했던 과거의 암울암이 오늘은 보람된 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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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산과 산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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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판 가운데 서있자니 햇볕에 온 몸이 타는 것만 같다. 피할 곳이라고는 비행장 격납고 그늘 뿐이다. 농부들이 햇감자를 자루에 담는 걸 보고 섯알오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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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알오름 기슭에는 희생자 추모비가 있다. 제주 4.3항쟁 당시의 사건도 아니고 1950년 한국전쟁에 벌어진 학살사건이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내무부 치안국은 일제시대의 잔재인 예비검속법을 악용하여 불순분자 구금, 구금자 처형 등을 각 경찰서에 지시하였다. 모슬포 경찰서 관내에도 344명을 예비검속하여 관리해오다 7월 16일 63명이 군에 인계되어 그중 20명이 이곳에서 1차로 학살되었다. 2차로 8월 20일 새벽 2시에 한림수용자 60명을, 새벽 5시에 모슬포 수용자 130여 명 등 210여 명을 법적절차없이 집단학살하여 암매장하였다. 천인공노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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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후 유족들이 시신이라도 수습하려고 하였으나 경찰의 방해로 눈물 속에 세월을 보냈다. 1956년이 되어서야 유해발굴이 허용되어 암매장된 굴 속의 물을 양수기로 빼내고 유해를 발굴하였다. 이미 뒤엉켜 버린 유골을 대충 뼈를 맞추어 17구는 개인 묘지로, 132구는 한 묘역에 안장하였다. 같이 안장한 132명의 희생자를 한 조상으로 모시겠다는 의미로 '백할아버지 한무덤' 혹은 '백조일손묘역'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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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알오름 희생자 기념비

여행팁 대정에서 마라도 선착장이 있는 송악산방면으로 가다 보면 백조일손묘역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 두 갈래 길인데 오른쪽 길을 택하면 창고 건물이 있는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가면 비행기 격납고가 들판 곳곳에 보인다. 알뜨르비행장은 향후 제주 평화의 섬을 상징하는 메카로서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정비할 계획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