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바다 은밀한 섬의 유혹, 내도
거제도. 섬이면서도 육지와 이어져 있어 섬 특유의 맛은 덜한 편이다. 거가대교가 놓이면서 마치 대도시 인근의 휴양지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섬 전체는 이미 그물망처럼 도로망이 펼쳐져 있고 그마저도 부족한지 길 공사로 분주하기 이를 데 없다.
내도에서 본 구조라 일대
흔히 거제도의 섬 하면 화려한 외도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도 아니라면 최근에 널리 알려진 지심도를 꼽는데 주저하지 앉는다. 외도는 예전부터 늘 사람들로 붐볐지만 지심도가 붐비게 된 것은 아름드리 동백숲에 대한 입소문도 한몫했겠지만 아무래도 1박2일이라는 방송의 영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제도에 한적한 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섬이 바로 내도이다. 외도와 바로 곁에 있으면서도 전혀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고 낚시꾼들만 이따금 드나들던 이 섬이 사람들에게 조금씩 알려진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있는 공곶이와 서이말 등대가 여행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부터였다.
지난 여름 공곶이에서 본 내도 전경
내도는 외도(바깥섬)의 안에 있다 하여 ‘안섬’으로 불리었다. 여기에는 이야기 하나가 전해오고 있다. 옛날 대마도 가까이에 있던 외도(남자섬)가 구조라 마을 앞에 있는 내도(여자섬)를 향해 떠오는 것을 보고 놀란 동네 여인이 "섬이 떠 온다."고 고함을 치자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는 이야기이다.
외도와 더불어 거제8경에 속하는 내도는 서이말등대에서 내려다보면 거북이가 외도를 향해 떠가는 모습이라 하여 ‘거북섬’으로도 불린다. 거북이를 닮았다는 이 말은 몇 해 전 서이말등대를 찾았을 때 확인할 수 있었다.
내도를 가기 위해 구조라항을 찾았다. 포구 입구에 작은 내도선착장이 있다. 선착장에 서면 바로 앞에 내도가 보인다. 이곳에서 작은 배를 타고 10여분만 가면 된다. 요금은 왕복 1만원으로 다소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승객이라고는 여행자를 포함해 겨우 4명뿐이었다.
통통거리는 작은 배에 몸을 실고 잠시 바다에 한눈을 팔고 있는데 선장이 내리라고 했다. 해안을 따라 섬을 돌면 좋다는 친절까지 베풀면서. 십여 채의 집이 전부인 이 작은 섬은 한창 정비 중이었다. 섬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산책로도 정비하고 안내소도 들어섰다.
이처럼 빠른 변화는 간혹 여행자를 당혹하게 하지만 편리한 점도 있다. 안내소 옆 ‘내도 종합 안내도’에는 섬에 대한 설명과 함께 구간별 거리와 소요시간, 쉼터 등을 상세히 적어두었다. 지도에는 특별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QR코드’였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산책하는 길에서 보이는 공곶이, 서이말등대, 외도, 해금강, 바람의 언덕 등에 대한 안내로 바로 이어진다.
구조라에서 온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다
숲길로 들어서기 전에 해안길을 걷고 있는데 잠수복을 입은 이들이 보였다. 해녀였다. 얼굴을 내밀기는 잠시, 한참이나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늘은 영 글렀어요. 하나도 없어.” 해녀가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에 여행자가 잘 잡히느냐고 묻자 돌아온 말이었다. 구조라에서 왔다는 해녀들은 모두 세 명이었다. 이곳에는 전복, 성게, 미역이 좋다고 했다.
숲길로 들어섰다. 편백나무로 시작하는 숲길은 처음에는 오르막길이었다. 숨이 가플 새도 없이 조금 오르니 평평한 길로 이어졌다. 가지 사이로는 얼핏얼핏 바다가 보이고 짙은 상록수림의 매력에 이내 빠져들었다.
얼마나 숲이 울창한지 나뭇가지를 겨우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없었다면 한밤중으로 착각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인근 지심도의 동백과 견줄 만큼 섬 전체에 우거진 동백숲은 울창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동백
동백나무뿐만 아니라 후박나무, 참식나무 등 상록수림이 울창한 이곳은 마치 은밀한 섬 같았다. 그 유혹에 저도 모르게 숲으로 깊이깊이 들어가게 된다. 뭔지 모를 비밀스러운 이 숲의 유혹, 갑자기 푸덕거리며 날아가는 새가 아니었다면 끝내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내도 전망대에서는 맑은 날이면 일본 대마도가 또렷이 보인다
서이말등대
서이말등대가 바로 지척인 세심전망대에 이르니 일본 대마도가 희미하게 윤곽만 보인다. 맑은 날이면 또렷하게 보인다고 한다. 계속되는 숲길은 섬의 허리에 이르러 세 갈래로 갈라진다. 이곳에서 300여 미터만 가면 신선전망대이다.
녹나무과에 속하는 참식나무가 군락을 이루더니 다시 해송으로 불리는 곰솔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어른 두서넛이 둘러서야 겨우 안을 수 있는 아름드리 곰솔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고갯길을 넘어서니 절벽에 걸친 전망대가 보였다.
상록숲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외도가 보이고 그 너머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갈매기의 천국인 홍도가 봉긋 솟아 있다. 외도 너머의 해금강과 대소병대도는 은빛 물결에 회색의 섬이 되어 버렸다. 추운 겨울도 이곳만은 비켜가고 영원한 봄만 여기에 남았다.
신선전망대와 외도 해금강 일대
외도와 홍도(왼쪽 뒤 작은 섬), 해금강 갈도(오른쪽 뒤)
몇 겹 겹쳐 입었던 옷들을 제쳐 두고 한참을 머물렀다. 섬 사이를 오가는 배들, 멀리 수평선까지 펼쳐진 망망대해, 바람 한 점, 구름 한 점 없는 적막의 섬에서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멀리서 들리는 뱃고동 소리만 아니었다면 돌아갈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발길을 돌렸다. 아까와는 달리 육지 쪽의 해안을 따라 걸어야 했다. 양지바른 이 길에는 드문드문 동백이 피어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동백이 만개하면 섬 전체가 붉어지리라.
참식나무와 곰솔 군락
마을로 들어서기 전 마지막 전망대에서 멈춰 섰다. 희망전망대. 내도의 전망대 이름은 왠지 모르게 식상하거나 생뚱맞다. 관광객을 위해 최근에 급조된 느낌이 역력하다. 세심전망대, 신선전망대, 희망전망대....
참식나무와 곰솔 군락
마을로 내려오다 숲길에서 만났던 아주머니를 다시 만났다. “섬이 참 좋지요? 우리들은 매일 한 바퀴 돈다요. 그러면 딱 좋거든.” 다시 오고 싶다고 하니 다시 한 번 꼭 들르라고 한다.
조금의 여유가 있었다. 바닷가로 다가갔다. 내도는 기암절벽이 섬을 둘러싸고 있는데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 앞에는 작은 몽돌해변이 있다.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이용하기에 좋을 정도로 작지만 물이 아주 맑다.
“이거요. 밤송이라요. 밤송이. 할아버지가 하도 먹고 싶다 해서 따로 나왔는데 오늘은 영 시원치 않아.” 갯바위에서 무언가를 따던 할머니가 여행자에게 말했다. 성게 같은 것을 밤송이라 부른다고 했다.
대여섯 명의 낚시꾼을 실은 배가 선착장에 도착했다. 구조라에 도착하니 포구에 막 배를 댄 노부부가 부지런히 도다리를 퍼내고 있었다. 중년의 부부가 가격을 묻자 노부부는 제사에 쓸 것을 제외하고 어른 손바닥만 한 도다리 열대여섯 마리를 3만원에 내어주었다. 중년부부와 노부부 모두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봄이 오기는 오는가 보다.
2009년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찍은 거제도 내도 일대
☞여행팁 내도는 경남 거제시 일운면에 있다. 구조라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된다. 배편은 동절기에는 9시, 13시, 17시(여름에는 18시)에 있고 주말에는 11시, 15시에도 추가로 운영한다. 섬에서 나오는 배는 매회 30분 뒤에 출발한다.(☏ 055-681-1624) 요금은 왕복 기준 어른 10,000원, 어린이는 5,000원이다. 섬을 산책하는 데에는 두어 시간이면 충분하다. 숙박할 민박집도 더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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