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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섬

'수고한 나의 발이여, 쉬어라!' 거문도 어느 수병의 묘지에서

 

 

 

'수고한 나의 발이여, 쉬어라!' 거문도 어느 수병의 묘지에서

 

여수에서 배를 타고 남쪽 끝까지 달려 도착한 섬, 거문도. 거문도에는 고도, 서도, 동도 세 섬이 있다. 서도가 먼저 긴 날갯짓으로 바다를 둘러싸면 동도가 반대편에서 갈무리하고 맨 나중에 고도가 느지막이 길목을 막아서 바다는 마치 호수처럼 잔잔해진다.

 

 

거문도에서 가장 번화한 고도에는 영국군묘지가 있다. 면사무소 옆 골목길을 따라 가면 거문도초등학교가 나온다. 섬에서 가장 넓은 이 초등학교는 사실 백 년 전 이곳을 점령한 영국군 막사가 있던 곳이다.

 

 

영국군은 1885년 4월부터 1887년 3월까지 약 2년간 불법으로 거문도를 점령하여 주둔했다. 흔히들 고 있는 '거문도사건'이 그것이다.

 

 

여행자가 영국군 묘지를 찾았을 때는, 동백꽃도 이미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3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다.

 

 

나른한 봄 햇살에 발걸음마저 지쳐가는 그런 봄날 오후였다. 뭍에는 아직 간간히 매서운 추위가 밀려오곤 했지만 이곳 먼 바다 섬에서까지야 그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섬에는 밭에서 쑥을 캐는 아낙네만 이따금 보일 뿐, 오가는 이 하나 없었다.

 

 

영국군 묘지에 다다르자 동백꽃이 붉은 몸뚱이 채 뚝뚝 떨어져 있었다. 겨우내 꽃 피우기는 어려웠을 터, 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시를 증명이라도 하듯 묘지 층계에서 꽃잎들이 나뒹굴었다.

 

 

바다는 잔잔했다. 동백 숲을 벗어나 언덕을 오르니 영국군묘지가 나왔다.

 

 

묘지는 소담했다. 강대국의 틈에서 외로웠던 백 년 전 우리 역사의 아픔이 새삼 떠오른다. 어쩌면 증오해야 할지도 모르는 강대국의 흔적 앞에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조선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그것도 뭍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외딴 섬에서 죽어간 외국 수병의 묘지 앞에 서니 역사라는 게 참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분노라는 것도, 증오라는 것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해지나 보다.

 

 

묘비에 적힌 그들의 이름은 토마스 올리버, 헨리 그린, 알렉스우드였다.

 

 

묘비 옆에는 당시의 사진이 있다. 영국군이 거문도를 무단 점령한 2년 동안 섬 주민들과는 별 마찰이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 사진으로 보아서는 친밀하기까지 하다. 하기야 제국주의도 그러하고 정치라는 것도 늘 가면을 쓰고 있지 않던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만났을 때조차 두터운 가면을 쓰고 있지는 않을 터, 어쩌면 그들도 이곳 섬에선 순간을 위해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묘지를 한 바퀴 돌고 의자에 앉았다. 흔들리는 의자에 자연히 몸을 맡겨 따라 흔들렸다.

 

 

'수고한 나의 발이여, 쉬어라!'

 

지그시 눈을 감으니 따스한 봄바람이 볼을 스쳤다. 문득 발에게 미안했다. 매번 그랬고 이번에도 이틀 내내 섬 구석구석을 도느라 제일 고생했던 나의 발. 발가락 사이로 넘나드는 봄바람에 금방 행복해졌다.

 

 

두 달이 흐른 지금 이곳에서도 파도소리 희미하게 들리는 듯하고 동박새가 지저귀는 거문도의 나른한 봄날이 느껴지는 듯하다.

한참을 호수 같은 바다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데 정적을 깨는 사람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둘이서, 혹은 셋이서 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묘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 나른하고 적막한 묘지를 맡겨두고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쑥을 산다는 사람들이 어디로 간 겨?"

 

마치 여행자에게 들으라는 듯 할머니 한 분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외지에 살다가 느지막이 남편을 따라 거문도에 들어왔다는 문춘자(74) 할머니는 큰 비닐포대에 쑥을 가득 채운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가던 이들이 쑥을 사기로 한 모양인데, 감감무소식.... 나중에 마을에서 다시 만났을 때 할머니는 여전히 큰 포대 가득 쑥을 실은 채 골목길을 힘겹게 헤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이곳 거문도 쑥은 약쑥으로 이미 많이 알려져 있어 경매를 통해 뭍으로 팔려간다. 해풍을 맞은 이곳의 쑥은 인기가 좋아 섬 전체가 봄이면 쑥을 캔다고 가게 문도 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쑥을 많이 파는 집은 천만 원 넘게도 한다고 한다.

 

"다음에 섬에 오면 우리 집에 꼭 묵으시오. 동백여관이요. 이천수 할아버지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소."

 

 

거문도를 여행한지 석 달이 지나서야 잠시 짬을 내어 아무렇게나 끄적거려본다. 억지로 거문도 여행을 마무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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