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 최고의 경관, 기와집몰랑

거문도 최고의 경관 기와집몰랑

제주도와 여수의 중간에 있는 섬, 거문도는 동도, 서도, 고도, 삼부도, 백도 군도를 말한다. 거문도의 본섬인 동도, 서도, 고도의 3개 섬은 바다를 병풍처럼 둘러쳐 호수 같은 바다를 만들었다. 이 잔잔한 호수바다는 천혜의 항구 구실을 하였다. 이 바다를 일러 ‘삼호’라 부르는 게 새삼스럽지만은 않다.

거문도항

면소재지가 자리한 거문리에서 등대로 향했다. 거문도 등대는 팔미도 등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운 등대로 남해안에서는 제일 오래된 등대로 알려져 있다.

안노루섬, 밖노루섬, 오리섬

민박집 주인이 아니었다면 여행자도 남들처럼 포장길을 따라 등대를 갔을 것이다. 지도를 꺼내 꼬치꼬치 캐묻는 여행자가 의아했는지, 아니면 여행자의 카메라를 보고 그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민박집 사내는 ‘기와집몰랑’으로 가라고 했다.

의병장 임병찬 순지비

“거문도서는 그 길이 최고지요. 아마 사진 찍기에는 그만한 길이 없을 것이오. 거문도 등대가 워낙 경치가 좋지만 그 길을 빼고는 별로지요. 별로 힘들지도 않아요. 부지런히 걸으면 1시간 30분이면 충분할 게요.”

민박집 주인이 말한 대로 삼호교를 건너 서도로 갔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길을 잡았다. 날씨는 잔뜩 찌푸렸지만 바다는 잔잔했다. 젠장, 등대의 멋진 노을도 쪽빛 바다도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바로 앞 안노루섬은 이미 갈매기 차지였다. 오리를 닮은 오리섬 뒤로 밖노루섬이 바다로 가지 못하고 수평선에 걸려 있었다. 듬성듬성 핀 유채꽃이 노란 봄을 알렸을 뿐, 어디서도 봄은 아직 이었다. 한말 의병장이었던 임병찬 순지비에서 여행자는 잠시 머물렀다.

보로봉 소원탑

고요하기만 하던 바다가 소리를 낸 건 뭍으로 쑥 들어온 유림해변에서였다. 의외였다. 섬 아낙이 머리에 톳을 이고 해안을 느릿느릿 걸어왔다. 그녀의 남편인 듯한 중년의 사내가 마중을 나왔다. 기와집몰랑 가는 산길을 물으니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그러곤 길만 잘 보고 따라가면 된다고 짧게 말했다.

새로 생긴 거제도 관광호텔 옆의 다도해해상국립공원분소 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길을 꺾으니 산길이 나왔다. 조금은 가팔랐지만 허리를 굽힐 정도는 아니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즈음 여행자는 짙은 상록수림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온통 푸른 잎들에 비해 벌거벗은 줄기들, 그 사이로 붉게 꽃을 피운 동백이 간간이 보였다.

두어 번 쉬었을까. 오랜만에 타보는 산길에 지쳤을 무렵 푸른 숲은 사라지고 마른 억새 군락이 나타났다. 몇 발자국 나아가자 아래는 천길 벼랑 끝이었다. 돌담을 두른 무덤이 보였고 이 일대가 ‘기와집몰랑’이라는 걸 알았다.

기와집몰랑에서 본 거문도, 동도, 서도, 고도의 세 섬에 둘러싸인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하다.

‘몰랑’은 산마루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로, ‘기와집몰랑(기와지붕몰랑)’은 바다에서 보면 이능선이 기와집 영마루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을 오르면서 보았던 완만한 숲의 풍경과는 달리 기와집몰랑의 바다 쪽은 직벽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길은 벼랑 위로 이어진다. 기암절벽 위를 걷는 것은 아찔한 일이기도 하지만 먼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걷는 맛은 비할 데 없이 장쾌하다. 벼랑과 바다가 서로 옥신각신 다투는 사이, 거문도 등대가 벼랑을 비집고 바다 쪽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거문도등대. 1905년에 세운 등대로 남해안 최초의 등대이다.

아! 나도 모르게 짧은 소리를 질렀다. 날씨가 흐려 멋진 풍광은 이미 마음에 접어두었는데.... 구불구불 능선을 따라 바다 쪽으로 스멀스멀 밀고 나온 섬, 그 끝에 하얀 등대가 아스라이 서 있었다. 조물주가 만들어낸 피조물과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 이렇듯 잘 어우러지는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과연 거문도 최고의 풍광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렌즈로 당겨보아도, 눈으로 멀리 보아도 바다와 섬이 만들어낸 황홀한 풍경에 여행자는 호사 아닌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누군가 쌓은 돌탑이 꿋꿋하다. 벼랑 끝에서 숱한 바람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견고하게 서 있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신선이 내려와 매일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바위와 아차바위를 지나니 다시 길은 상록수림으로 이어졌다.

어둡고 긴 숲길은 중간에 두어 번 잠시 바다를 보여준 게 전부, 다시 터널 같은 짙은 동백숲길로 이어지나 싶더니 갑자기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365계단길이었다. 해발 157m 정도인 기와집몰랑과 170m인 보로봉으로 이어지는 산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지만 도로와 바로 만나는 이 길의 경사는 의외로 심했다.

365계단

처음에 하나둘 세기 시작했던 계단의 수가 가물가물해질 즈음, 눈앞에 반듯한 시멘트길이 나타났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1박2일에서 거문도의 차마고도(?)로 표현했던 잘록한 ‘목넘어’를 건너 거문도 등대로 향했다.

☞ 여행팁 기와집몰랑(기와지붕몰랑)을 거쳐 거문도 등대로 가는 길은 거문도 최고의 풍광을 자랑한다. 거문도 소재지가 있는 고도에서 삼호교를 건너 유림해변 방향으로 가면 거제도 관광호텔이 있다. 호텔 앞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거문도분소 앞을 지나자마자 나오는 두 갈래 길에서 오른쪽을 보면 산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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