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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날개가 달린 옛집을 보셨나요



날개가 달린 옛집을 보셨나요?
-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천전댁

영덕의 중심지인 영해는 동해안에서 보기 드문 너른 들을 가진 영해평야가 있다. 그러다보니 예부터 사족이 많고 그를 중심으로 한 동족마을이 많이 형성되어 있어 영해 일대를 안동에 버금가는 ‘작은 안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마을 중의 하나가 영해면 괴시리의 영양 남씨 집성촌이다.

괴시리의 흙담길

문화재 지정 고택만 10채가 넘는 괴시리

괴시리. 마을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이 이곳의 지형이 중국의 괴시마을과 비슷하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목은의 외가가 괴시이고, 그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너른 평야를 앞에 두고 야트막한 야산을 등진 괴시마을은 멀리서 봐도 기와집이 즐비하다. 괴시마을의 안내문을 보다 저도 모르게 입이 딱 벌어진다.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만 해도 10채가 훌쩍 넘는다.

오래된 마을 당산나무를 둘러보고 곧장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마을은 안동의 하회처럼 전형적인 흙담이 집과 집의 경계가 되고 있었다. 여행자가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천전댁이다. 우리말로 하면 내앞 정도가 되겠다.

실용적인 천전댁의 안채

집에 날개가 달렸다고?

입구의 높은 솟을대문과는 달리 집의 전체 규모는 소담한 편이다. 사랑채 앞마당은 제법 널찍하다. 안채로 이어지는 중문의 우측에 자리하고 있는 사랑채는 중문채보다 높이 짓고 별도로 팔작지붕으로 꾸며 독립된 건물처럼 보이도록 했다. 중문을 지나면 바로 안채로 이어진다.

중문채와 사랑채. 집의 평면이 다만 只자를 닮아 속칭 ‘날개집’이라 불린다
 

넓은 터에 비해 안채는 ㅁ자 형으로 아주 좁은 편이다. 시렁, 선반, 다락과 같은 실용적인 구조들이 집안 구석구석에서 보인다. 안채와 사랑채가 이어져 있는 이 집의 평면은 다만 只자를 닮아 속칭 ‘날개집’이라 불린다. ㅁ자 형의 안채에 중문채와 사랑채가 날개처럼 매달린 형상이다.


성주신을 모신 옛집

주인은 상중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집 구경을 하고 있는데, 황송하게도 커피까지 직접 권하더니 천천히 보고 가라고 했다. 참으로 고맙고 인정 넘치는 일이다.


할머니 한 분이 방문을 열고 가만히 내다보신다. 집안에 상을 당해 조카네 집에 잠시 머문다고 했다. 서까래가 훤히 드러난 들보에는 겹겹이 싼 한지에 생선 한 마리가 매달려 있다. 성주신이다. 성주신은 집 건물에서 제일 중요한 대들보에 산다고 전해진다. 이 대들보가 있는 공간이 마루인데, 마루는 제사 등의 가장 신성한 의례가 벌어지는 곳이다. 그곳에 집의 가장을 수호하고 집안의 평안과 부귀를 관장하는 최고의 신을 모신 것이다.

성주신

이건 뭘까?

안채 마루를 보다 특이한 구조물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선반을 고정하는 기둥인가 생각했는데 맞은편에는 그런 구조물이 없었다. 그 용도가 궁금하여 할머니에게 여쭈었다. “아, 그거요. 계단이라요. 나무계단.” 그러고 보니 위에 다락이 있었다.

                                다락을 오르는 층계가 마치 기둥처럼 자연스럽다

층계는 벽체에 기둥처럼 자연스럽게 서 있어 특별히 튀지도 않았다. 너무나 천연덕스러운 층계를 안채에 둔 셈이다. 다락에 물건을 올리거나 내릴 때마다 사다리를 가져와야 하는 불편도 없애고, 안채 마루 공간을 차지하는 큰 사다리도 아닌, 딱 필요한 만큼만 만들어낸 생활의 지혜가 돋보인다.


사랑채의 특이한 쪽마루

이런 구조는 집안 구석구석에서 보인다. 이집에서 보이는 선반이나 시렁, 벽장, 다락 등은 조선 후기의 가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여행자가 주목한 것은 사랑채 뒷벽에 잇댄 동바리로 받친 쪽마루였다. 사실 걸터앉을 수가 없어 마루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높고 비좁은 편이다.


그 용도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집의 구조에서 추측할 수 있었다. 사랑채로 음식이나 물건이 드나들 때 잠시 내려두는 일종의 받침대로 보였다. 만약 이것이 없었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물건이나 음식은 바깥에 사람이 서서 들고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중문을 거쳐 사랑으로 가야하는 불편함과 내외를 할 수 없어 예의에 어긋나게 되었을 것이다.

상중인 집안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도 결례인 것 같아 집 구경 잘했다고 인사드린 후 대문을 나섰다. 문화재로 지정된 10여 채가 넘는 옛집들을 둘러보려면 조금은 서둘러야 했다. 19세기 초의 건물로 추정하고 있는 괴시리 천전댁은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37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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