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이렇게 쓸모가 있는 집이라니....
아름다움보다 실용성을 염두에 둔 옛집. 남사마을 최씨고가
옛집을 찾아 남사마을에 갔다. 이씨고가를 둘러보고 들른 곳은 최씨고가. 골목부터 남다르다.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높은 담장 아래로 골목길은 ㄱ자로 크게 휘어진다. 고가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오래된 고목 한 그루와 그 아래의 바위 하나가 이곳에 옛집이 있음을 말해준다.
고목의 손짓 따라 골목을 돌아가면 그 끝에 튼실한 고가 대문이 있다. 목련은 아직 활짝 피지 않았지만 돌담 아래로 가지를 늘어뜨려 길손을 맞는다. 대문에는 집주인 최재기 씨의 환영문이 있어 집 구경을 하기에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향나무에 살짝 얼굴을 가린 채 모습을 드러낸다. 넓은 마당이 다소 휑하다는 느낌을 준다. 마구간채도 다소 생뚱맞다. 사랑채는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로 앞뒤로 툇간을 두었다. 3겹이나 되는 사랑채도 그렇지만 이 고택의 안채 지붕도 높다보니 다소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남사마을의 중앙에 자리 잡은 최씨고가는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이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1920년 최재기 씨의 아버지가 건축을 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안채를 중심으로 아래채, 광채,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집은 특이하게 중문이 두 곳에 설치되어 있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드나드는 중문은 대개 한 곳에 있는데, 이 고택에는 동서 양쪽 두 곳에 있다. 동쪽의 중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안채가 눈에 들어오지만, 서쪽의 중문은 ㄱ자 형의 내외담을 두어 안채가 보이지 않도록 설치되어 있다.
동쪽에는 광채가 있어 별도의 내외담을 두지 않았지만, 서쪽은 안채와 아래채가 동시에 있다 보니 여자의 주요한 생활공간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외부인의 안채 출입은 내외담이 있는 서쪽의 문을 통해 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남녀 사용공간을 나누어 공간의 독립성을 부여한 뛰어난 배치로 사대부가의 유교적 전통을 엿볼 수 있는 구조이다.
불발기창과 바라지문 등을 단 앞면의 화려한 외관과는 달리 사랑채 뒷면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간 구성이 복잡하다. 툇간은 물론이고 머리벽장, 고미다락, 심지어 시렁까지 두어 공간의 실용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실용성은 안채와 건물 곳곳에서 드러난다.
안채는 앞면 6칸·옆면 3칸 규모로 역시 앞뒤로 툇간을 두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뒤쪽 툇마루의 폭이 커서 각 방 뒤편으로 물품을 보관하기 위한 벽장을 두었다. 부엌과 건넌방 뒤에는 따로 방을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큰 규모이며 공간 구성 또한 복잡한 겹집형식이다.
안채 옆면을 돌다 작은 쪽문을 발견했다. 무엇일까 싶어 문을 여니 장독대가 나왔다. 장독대는 마치 어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하겠다는 듯 보물처럼 안채 뒤에 숨겨져 있었다.
서쪽에 위치한 아래채는 유리문을 달고 있다. 우진각 지붕을 하고 있는 아래채도 독특한 공간구성이 돋보인다. 바깥에서 보면 다락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지만, 대개 방에서 드나들 수 있는 다락과는 달리 마루에서 층계를 두어 다락을 오르내리도록 설계되었다. 앞면 4칸, 옆면 2칸인 아래채에는 온돌방과 마루를 두었다.
동쪽의 광채도 역시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서쪽을 향하여 서 있다. 광 안에는 다딜방아와 멍석, 대나무로 만든 닭장, 키, 소쿠리 등이 있어 옛 사람들의 살림도구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광채 뒤를 돌아가면 이 집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이 나타난다. 비록 한쪽에 현대식 문을 달았지만 아직도 옛 건물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바로 뒷간이다.
이곳의 뒷간은 이층구조이다. 여느 뒷간과는 달리 2층으로 되어있어 계단을 올라가서야 일을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층구조의 뒷간은 대개 사찰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해우소 등이 있지만, 고택에 있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이 고택에 이층구조의 뒷간을 짓게 된 것은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 농업 위주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위생과 효과적인 인분 활용을 위해 뒷간을 올려 만들도록 권장한 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한다.
2층에서 볼일을 보고 1층에 자리한 흙이 담긴 상자에 인분이 담겨지면 그 위에 재를 덮어 냄새를 줄이고 발효를 시켰다고 한다. 또한 뒷간 남쪽으로 홈을 내어 소피를 본 후 자연스레 흘러나와 고이도록 둥글게 구덩이를 파 놓았다. 비료가 흔하지 않던 시절, 위생과 더불어 인분을 최대한 활용한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러한 2층 구조의 뒷간은 인근에 있는 사효재의 대문채에서도 볼 수 있다.
뒷간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텃밭이 있다.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한 옛집 안에 이렇게 넓은 밭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당시 이 집안의 재력을 알 수도 있거니와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여자들이 텃밭을 가꿀 수 있게 하였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최씨고가는 기존 사대부집을 모방하여 전체적으로 다소 과장되고 화려한 모양새다. 멋은 덜하지만 집안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는 실용적인 구조로 옛 선조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옛집으로 손색이 없다. 최씨고가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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