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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700년 감나무의 비밀, 사실은 뭘까?



700년 감나무의 비밀, 사실은 뭘까?
- 산청 남사마을 사양정사를 가다

옛집을 보다 보면 가끔 놀라울 때가 있다. 사양정사가 그런 경우다. 대개 한옥은 전체적인 공간이 시야에 맞게 구성된다. 그런데 사양정사는 시야를 벗어난다. 사랑채라고 하기에는 그 엄청난 규모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사양정사는 현판마저 아찔하다. 다행히도 과장된 큰 규모는 앞으로 넓은 마당을 두어 눈의 불편함을 달래준다.


마을 앞을 흐르는 사수천을 따라 골목길로 접어들면 반듯한 사랑채와 최근에 지은 안채가 있는 집이 있다. 이 사랑채 앞을 가로지르면 사양정사가 보인다. 굳이 이 집을 거치지 않고 사양정사에 가려면 도로에서 흙돌담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된다.


사양정사는 한말의 유학자 계제 정재용의 아들 정덕영과 장손 정종화가 남사로 이전한 후 선친을 추모하기 위해 1920년대에 지은 재실이다. 정재용은 포은 정몽주의 후손으로 한말의 유학자인 후산 허유와, 유림을 대표하여 파리장서를 작성한 면우 곽종석의 문인이다. 정사를 짓고 난 후 이 건물은 정덕영이 자식들을 교육하거나 손님들을 맞이하는 장소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사양정사는 ‘사수
泗水 남쪽의 학문을 연마하는 집’이라는 의미이다. ‘사수’는 공자의 고향인 산동성 곡부에 있는 강 이름이다. 공자를 흠모한다는 뜻으로 마을을 휘감아 도는 개천을 사수라 부른다. 정사가 개울 사수의 남쪽에 있어 사양정사라고 이름 하였다고 한다. 옛날 물의 남쪽은 양이요, 물의 북쪽은 음이라 했다.


단일 건물로는 엄청나게 큰 이 건물의 면적은 약 1,400㎡이다. 구성은 본채와 대문채로 간략하게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이 7칸, 옆면이 2칸이다. 천장이 높으니 지붕도 높다. 가운데에 두 칸의 대청을 두고 양끝으로 각기 1칸의 마루를 두어 계자난간을 둘렀다. 원기둥을 쓴 외진주와 네모난 기둥인 내진주도 집의 규모에 걸맞게 튼실하다.


큰 규모도 그러하거니와 다락이나 벽장 등의 수납공간이 풍부한 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또한 당시로서는 새로운 건축 재료인 유리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한옥이 근대로 오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 수 있는 건물이다.


대문채는 7칸 규모이며 그 중 4칸이 광으로 이용되고 솟을대문이 달려 있다. 충절을 상징하는 홍살을 넣은 솟을대문도 사양정사의 규모에 걸맞게 크게 지었다.



사양정사 앞에는 세종 때 황희의 뒤를 이어 영의정을 지낸 원정공 하집(즙)의 증손자 문효공 하연이 일곱 살 때 심었다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감나무 앞에 있는 비석에는 ‘문효공경재선생수식시목
文孝公敬齋先生手植柿木’이라고 적혀 있다. 문효공 경재선생은 하연이다.

안내문에는 고려말 원정공 하집의 손자가 심었다고 하는데 하집의 손자는 하연의 아버지인 하자종이다. 그런데 이 감나무는 손자인 하자종이 심은 것이 아니라 비석에 새겨진 대로 증손자인 하연이 심은 것으로 봐야 하는 게 맞다. 하집, 하윤원, 하자종, 하연으로 계보가 이어진다.


1376년생인 하연이 일곱 살 때는 1382년이다. 이 햇수로 계산하면 나무의 수령은 629년이 된다. 그런데 2010년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측정한 결과는 수령을 700년으로 보고 있다. 측정이 잘못된 것이거나, 나무의 수령이 700년이 맞다면 하연이 심은 것이 아니라 적어도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심었다고 봐야 되지 않을까. 어느 것이 사실인지 의문이다. 기록마다 수령이 580년, 600년, 700년으로 각기 다다르다.

나무학자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나무의 정확한 나이는 하늘과 나무 자신밖에 모른다고 한다. 이 말만 사실일 수 있다. 기록의 재검토와 정확한 수령 측정을 통해 하루 빨리 각종 안내문을 통일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높이 13m, 둘레 1.85m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이 감나무, 산청곶감의 원종이라고 하니 정확한 수령이 더욱 궁금하다.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감나무는 마을의 길흉화복을 함께했다고 한다. 날씨가 춥고 비바람이 치면 도깨비가 나와서 감나무를 보호하였고, 그럴 때마다 집안에는 경사스러운 일이 일어났었다고 한다.


감나무에서 담을 돌아가면 오래된 매화 한 그루가 있다. 단속사지 정당매와 산천재의 남명매와 더불어 ‘산청3매’로 불리는 원정매다. 원정매는 원정공 하집이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매화나무 앞에는 원정공이 매화를 심고 지었다는 ‘원정공영매시
元正公詠梅時’가 새겨져 있다.


사양정사에는 이외에도 국립산림과학원이 측정한 수령 220년의 단풍나무와 120년의 배롱나무가 있다. 단풍나무는 가을이 지나면 겨울채비를 걱정하는 종갓집 며느리 마음과 같이 붉게 물든 단풍을 보며 잠시나마 시름을 잊으라는 마음으로 심었다고 한다. 정사 옆의 배롱나무는 장마와 무더위를 견디며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처럼 항상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라는 의미에서 심었다고 한다.


사양정사는 2009년 1월 15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3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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