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세 종부의 살림 냄새 진하게 나는 고택, 김기응 가옥
괴산여행⑤ - 손꼽히는 자리의 상류주택, 김기응 가옥
성산마을은 괴산군 칠성면의 중앙에 있다. 성 모양의 뒷동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성미’ 혹은 ‘성뫼’라 불리다 일제시대에 한자로 표기하여 성산으로 되었다. 김기응 가옥은 나지막한 동산이 뒤를 두른 양지바른 곳에 남향을 하고 있다. 인근에서 손꼽히는 좋은 자리로 알려져 있는 이 고택은 조선 후기 사대부집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살림집이다.
일명 칠성고택이라고도 불리는 김기응 가옥은 조선 고종 때 공조참판을 지낸 김항묵이 지었다. 원래 18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안채만 있던 조별감의 집을 사들여 마름집으로 쓰다가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김항묵이 낙향하여 집을 증축하여 지금과 같은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길게 늘어선 바깥행랑채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니 너른 바깥마당과 곳간채가 눈에 들어온다. 사랑채는 다른 건물보다 기단을 한 벌 높직하게 쌓아 권위를 드러내었다. 중문이 잠겨 있어 사랑채로 들어섰다.
현재 종부할머니와 아들내외가 살고 있는 김기응 가옥은 현대식 문을 다는 등 많이 개조되어 있었다. 옛 모습 그대로 살기에는 생활이 불편했으리라. 바깥주인이 주로 기거하던 사랑채는 동쪽에 한 단 높게 누마루를 두어 화단으로 꾸며진 사랑정원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누마루는 일정 지위 이상의 상류주택에 주로 지어졌으므로 중류주택과 상류주택을 가르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사랑채 정원에는 원래 초당과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없다.
사랑마당
사랑채에서 안채로 가기 위해서는 중문마당을 거쳐야 한다. 안채로 향하는 시선을 차단하기 위하여 중문은 사랑채에서 꺾이어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바깥행랑채가 주로 남자 하인들이 거주했다면 중문간행랑은 여자 하인들이 생활하던 곳이다.
안주인이 생활하는 안채는 대문에서 문을 세 개나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남자와 여자의 생활공간을 엄격히 차단했던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안채는 ㄷ자 모양인데 앞이 트인 곳에는 곳간채가 있어 사랑채 뒤의 샛마당과 이어진다.
중문마당
부엌에서 인기척이 있어 가까이 나가서니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신다. 종부인 변숙규 할머니다. 올해 아흔 셋인 종부는 귀가 약간 어두울 뿐 아직 정정하셨다. 밥 한 공기를 너끈하게 드신다고 며느리는 할머니의 건강함을 말해 주었다.
안채
이 고택의 하이라이트는 샛마당이다. 사랑채 뒤와 안채 사이에 있는 샛마당은 이 집의 마당 중 가장 작지만 상징적인 곳이다. 샛마당에는 높이 솟은 굴뚝이 있어 이곳의 위계질서가 가장 높음을 상징하였고 수복무늬, 박쥐무늬, 겹곡무늬 등을 새겨 꽃담장을 꾸며 놓았다. 사랑채에서 뒷문을 열면 볼 수 있는 이 아담한 공간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홀로 아름다움을 완상하기에 제격이다.
대개의 고택이 사람이 살지 않아 박제화 된 아름다움에 그치는 반면 이곳 김기응 가옥은 다소 어수선하지만 살림 냄새가 진하게 묻어나는 곳이다. 특히 사랑채와 안채 등의 각 건물 사이에는 내담을 쌓아 크고 작은 공간들이 구분되고 여러 대문들과 연결되어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구성을 이루고 있다.
“집은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먹고 살 수가 없지요.” 여행자가 집을 참 잘 지었다고 하자 논에 일을 나가기 위해 바삐 서두르던 며느리가 무심코 건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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