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최고 일본식 정원의 황홀한 설경, 이훈동정원
“여행을 떠나기에 어디가 제일 좋을까요?”
여행자가 자주 받는 질문 중의 하나이다. 이럴 때는 솔직히 난감하다. 그 사람의 여행스타일도 모를뿐더러 동행인은 있는지 등의 사전정보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 누군가가 여행 일정을 부탁하면 더러 답을 해주기도 했지만 요즈음은 고약하게도 아예 모르쇠로 일관해버린다. 사실 시간도 없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개인에 꼭 맞는 여행지와 여행 일정을 짜주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였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의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광을 여행으로 통용하고 있어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여태까지 가본 곳 중에서 어디가 제일 좋던가요?”
여행자는 항상 되물어본다. 그러면 어디 어디가 좋았다고 대답을 한다. 여기에서부터 여행지와 여행 일정은 시작된다. 적어도 한 시간 이상 대화를 하고 나면 그 사람의 스타일과 거기에 알맞은 여행 일정, 동선 등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그때도 그랬었다. 연말 송연회모임에서였다. 산사 중에서 어디가 제일 좋으냐는 경남도민일보 김 기자의 물음에 여행자는 역시 되물었다. 그는 운주사를 꼽았고 여행자는 그런 스타일에 어울릴만한 여행지를 몇 곳 추천하였다. 아니 추천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여행지를 공감하고 교류했다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자연스레 정원이야기로 넘어갔다. 여행자가 몇 곳을 추천하면서 김 기자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정원이 어디냐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이훈동정원이라고 하였다. “ 가보셨지요?” 난감한 일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떠돌아다니는 여행자다 보니 자신이 다녀 온 곳은 여행자도 갔을 것이라 지레짐작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아니요.” 다음 일은 불을 보듯 번하게 진행되었다. 그에게 이훈동정원에 관해 캐묻기 시작하였다. 모든 이들은 여행자의 스승이다. 이훈동정원, 망설임 없이 여행자는 길을 떠났다.
14년 만에 다시 목포를 찾았다. 남도는 이미 하얀 눈세상이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어 목포에 도착하니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목포역을 돌아 얼마간 가니 유달산 아래 어느 골목길에 한눈에 보아도 예사스럽지 않은 건물이 나타났다.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유달산이 병풍이 되는 멋진 앉음새였다. 사뭇 높은 담장은 뭇사람들이 접근하기에 다소 위압적이었다.
낮은 층계를 따라 대문 앞에 섰다. 문은 잠겨 있었다. 초인종을 눌렀다. 반응이 없다. 외출 중이신가. 다시 한 번 눌렀다. 한참을 있으니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주인에게 인사를 건네려고 했으나 문만 열어줄 뿐이었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어 앞을 보다 여행자의 눈을 의심하였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화려한 일본식정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각종 빽빽한 나무들, 석탑과 석등, 작은 연못 등 구석구석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현관 앞에는 암수 한 쌍의 향나무가 눈을 머리에 인 채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향나무는 사람이 심은 것이 아니라 자생목이라고 한다. 일본의 화산 폭발 때 그 씨가 목포까지 날아와서 싹이 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신비한 나무이다.
현관 옆을 빠져 나가니 본격적으로 정원이 펼쳐진다. 물을 정원으로 끌어 들여 곳곳에 연못을 만들고 그 사이에 다리를 놓아 정원을 건너다니게 하였다. 그 엄청난 규모에 압도되었다. 개인정원으로는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정원은 약 3,000평으로 건물을 중심으로 크게 입구정원, 안뜰정원, 임천정원, 후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무의 종류만 해도 113종에 이르고 한국 야생종 37종, 일본 원산종 39종, 중국 원산종 25종, 기타 12종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상록수가 많아 한겨울임에도 정원은 푸른 색채를 띠고 있다. 상록수는 69종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정원은 1930년대에 일본인 우찌다니 만빼이(內谷萬平)가 만든 일본식 정원이다. 해방 후에는 해남 출신의 박기배씨가 소유하였던 것을 1950년대에 전남일보사를 설립한 이훈동씨가 사서 소유하고 있다. 60여년이 지나는 동안 원형이 일부 바뀌기는 했지만 일본식 정원의 특성을 전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건물 앞의 안마당을 널찍이 비운 안뜰정원은 임천정원과 연달아 있다. 연못을 흐르는 계류에 걸쳐진 다리를 건너면 임천정원이다. 이곳에 들어서니 깊은 수림에 갇힌 듯 사방이 고요하다. 울창한 숲 사이로 층계를 오르면 후원이다. 후원에는 이 집의 소유자인 이훈동회장의 흉상이 있다. 후원의 뜰에 서면 넓은 정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주위를 압도하는 건물과 울창한 수림으로 가득 찬 정원이 목포시의 원경과 함께 들어온다. 유달산 자락을 그대로 끌어안은 조경이 얼마나 빼어난지를 단박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잠시 주춤했던 눈이 이번에는 아예 폭설이 되어 퍼부었다. 눈을 피할 수 있는 우산조차 없어 서둘러 정원을 빠져 나와야 했다. 머리 위에 눈이 소복이 쌓일 정도였다. 못내 아쉬워 카메라로 막 샷을 해보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훈동정원은 현재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5호로 전라남도 목포시 유달동에 있다. 호남 땅 17개 농장을 거느렸던 일본인 우치다니 만빼이가 짓고 살았던 호화스러운 집이다. 먼저 열지 못하고 억지로 열린 우리 개항역사의 뼈저린 근대유산이기도 하다. 잊고 싶은 역사의 흔적이지만 잊지 않기 위해서는 더 잘 보존해야할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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