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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호수 옆, 걸출한 인물의 소박한 공간-다산 정약용 생가



호반의 정취, 거룩한 향기-다산 정약용 생가

 

“천하의 재사들이 문밖 제일 마재라 일컫던 고장이다. 어찌 경관뿐이랴.” 다산 정약용이 태어나고 숨을 거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의 비문에는 다산의 향기가 있는 이 고장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지금은 능내리이지만 예전에는 마현 혹은 마재로 불리던 곳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팔당호가 지척에서 넘실거리는 수려한 고장에 다산 정약용의 생가가 있다. 아름다운 고장에 위대한 사상을 남긴 한 인물의 자취가 구석구석 묻어나는 곳이다.

 

“맑은 선비의 돌아가는 행장은 모든 것을 벗어 던진 듯 조촐하여 낡은 수레 야윈 말인데도 그 산뜻한 바람이 사람들에게 스며든다.” 생가로 가는 거리에 새겨진 글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글이다.

 

다산 생가는 의외로 소박하다. 홍수로 떠내려가고 터만 남아 있었는데 1975년에 복원하였다. 전통 한옥에 뚜렷한 ㅁ자 20칸 집이다. 서재와 독서, 침잠하기에 알맞고 좋다하여 이름붙인 여유당 현판에서 한 시대를 고뇌했던 선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소박한 안뜰은 겨울바람이 몰아쳐 다소 서늘한 기운이 든다. 누군가 재어 놓은 장작더미만 이곳도 박제화 된 유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가임을 말해 줄 뿐이었다. 생가를 지나 낮은 야산을 오르면 그의 묘소가 있다.

 

다산, 그는 누구였던가. 23세의 나이에 <중용>을 펴들고 정조 임금에게 어진 강의를 하는 등 정조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걸출한 인물이었다. 수원성을 축조할 때 거중기 등을 발명해 국고와 시간을 대폭 줄였고 18년의 유배생활 동안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후세에 빛난 저서들을 남긴 분이었다.

 

묘지에 서면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18년의 긴 유배생활을 마감하고 그가 마지막 찾았던 곳도 이곳, 마현의 생가였다. 1819년 10월, 그의 나이 58세였다. 파란만장했던 삶을 산 그는 마지막 17년을 고향에서 못다한 학문을 조용히 갈무리하며 여생을 보냈다.

 

1836년 2월 22일 다산은 자신과 부인 풍산 홍씨의 회혼일을 맞아 깊은 잠에 빠졌다. 자손과 친지들이 모인 가운데 그는 드라마같은 그의 생을 마감하였다.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고 그 시대를 뛰어넘었던 걸출한 인물이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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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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