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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하회마을 버금가는 육지속의 섬마을, 무섬마을

 

하회마을 버금가는 육지속의 섬마을, 영주 무섬마을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줄기는 곳곳에 비경을 만들었다. 이 칠백리 강물이 산에 막혀 돌아나가는 특이한 지형을 만든 곳이 있으니 이른바 ‘물돌이동’이다. 한자로 하회河回라 이름 붙인 ‘물돌이동’은 특정 지역을 일컫는 고유명사이기도 하지만 물이 돌아나가는 마을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흔히 물돌이동하면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를 첫손에 꼽지만 영주의 무섬마을도 이에 당당히 속한다. 무섬마을은 익히 알려진 두 곳보다 유명세는 덜하지만 한갓진 여유로움은 둘에 비길 데가 아니다.

 

무섬마을은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다. 원래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이다. 태백산의 내성천과 소백산의 서천이 흐르는 무섬마을은 동쪽 일부를 제외한 3면이 강에 둘러싸여 있다.

<무섬마을 전경 : 사진제공-영주시>


 

마을은 강의 안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모래톱 위에 한 떨기 꽃잎처럼 앉아 있다. 풍수지리학에서는 이런 형국을 일러 ‘매화낙지형’ 혹은 ‘연화부수형’이라고 한다. 연화부수형의 지형에서는 큰 인물은 나지 않지만 학자나 선비가 난다고 하니 무섬마을이 문향 짙은 고장임을 알겠다.

 해우당수도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집이다. 선성 김씨 입향조인 김대의 손자 영각이 1856년에 건립하였고, 고종 때의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이 1879년 중수하였다. 해우당의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2호)

이곳에 마을이 처음 생긴 건 17세기 중반 조선 현종 때였다. 반남 박 씨인 박수가 처음 터를 잡은 후 영조 대에 선성김씨 입향조인 김대가 박 씨 문중과 혼인을 하면서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

김뢰진 가옥. 강원도와 경북에서 볼 수 있는 까치구멍집을 볼 수 있다.(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18호)

 

당시만 해도 200여 채의 가옥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40여 남짓한 가구가 살고 있다. 그중 마을에서 최초로 지어진 만죽재 등 고택 9채는 경상북도 민속자료 및 문화재자료로 등록되어 있다.

만죽재는 무섬마을의 입향시조인 박수가 이곳에 들어와 최초로 지은 집이다. 원래 당호는 '섬계초당'이었으나 8대손인 승훈이 중수하고 당호를 '만죽재'라 하였다.(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3호)

 

마을 뒤편이 육지와 연결된 것을 제외하면 이곳은 ‘육지속의 섬’이다. 지금은 1972년에 놓은 시멘트다리가 있어 쉽게 마을을 드나들 수 있지만 예전에는 마을을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가 외나무 다리였다.


 

예전 이 외나무다리는 마을사람들의 삶이 시작되고 세상을 떠나는 통로이기도 했다. 결혼식이 있으면 외나무다리를 통해 신부의 가마가 들어오고 신랑이 말을 타고 강을 건너왔다. 마을사람이 죽으면 상여도 외나무다리를 건너 마을을 떠나게 된다.


 

외나무다리는 가을에 만들어 장마철이 시작되기 전인 이듬해 봄이면 사라졌다. 강물이라도 불어나면 헤엄을 쳐서 건너거나 소꼬리를 붙들고 건너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도 아니면 마을 뒤의 산길을 넘어 외부로 나가기도 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외나무다리는 30년 전인 1970년대 초 사라진 것을 2005년 복원하였다. 길이 130m의 외나무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대나무장대가 필수다. 어른 손 한 뼘 정도밖에 되지 않는 다리에서 균형을 잡기는 여간 힘들지 않다. 누구나 처음에는 쉽게 생각하지만 강 가운데로 나아가면 빠르게 흘러내리는 물살 때문에 다리가 흔들리는 듯한 착시를 겪게 되어 균형 잡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가을이 깊어가는 마을은 한갓진 아름다움이 있다. 작은 구멍가게조차 보이지 않는 무섬마을은 하회마을의 번잡함을 전혀 볼 수 없다. 회룡포의 완벽한 물돌이도 아름답지만 이곳은 그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길과 넓은 백사장을 따라 무한정 걷기에 좋다.



 

이 아름다운 마을도 한때 훼손될 뻔하였다. 1970년대 이곳의 물길을 직선으로 연결하려는 공사 때문이었다. 물길을 마을 뒤로 내고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강물이 만든 백사장을 농경지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마을주민들이 중장비에 드러눕는 등 격렬한 항의를 하고나서야 공사는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예나 지금이나 답답하고 쓸쓸한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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